이명/ 이익주

발행일 2020-10-08 09:17:16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밟고 오른 시간의 늪 서서히 파헤치며/ 철철이 읊어댄다 자진모리 흥에 맞춰/ 헝클린 오선 위에다 곡을 붙여 떼창이다// 누구냐 분란의 주범 호작질로 딴지 걸며/ 가파르게 올랐다 잽싸게 내리닫는/ 맴도는 세월의 원성 골이 깊은 해금 소리

「대구시조」(2019, 제23호)

이익주 시인은 경북 칠곡에서 출생해 198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달빛 환상」 「금강송을 읽다」와 시조선집으로 「향목의 노래」(고요아침, 우리시대 현대시조선 135)가 있다.

‘이명’에서 이명은 바깥세계에 소리가 없는 데도 귀에 잡음이 들리는 현상이다. 특정한 질환이라기보다 귀에서 들리는 소음에 대한 주관적 느낌인 셈이다. 즉 외부로부터 청각적인 자극이 없는 상황에서 소리가 들린다고 느끼는 상태여서 의학적으로는 자신을 괴롭히는 정도의 잡음이 들리는 경우를 두고 이명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명’에서 화자는 밟고 오른 시간의 늪 서서히 파헤치면서 철철이 읊어대는 것을 듣고 있다. 그것도 자진모리 흥에 맞춘 것이다. 자진모리장단은 잦은몰이 또는 덩더궁이라고도 부른다. 잦은몰이는 빠르게 몰아간다는 뜻이다. 자진모리는 중중모리보다는 빠르고 휘모리보다는 느린 장단이다. 판소리에서 어떤 일을 길게 나열하여 서술하거나 극적이고 긴박한 장면에서 쓰인다. 그런데 화자는 이명에서 자진모리 흥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 소리는 헝클린 오선지 위에다 곡까지 붙여서 떼창으로 연주 중이다.

그래서 누구냐, 하고 도발적으로 물으면서 분란의 주범이 호작질로 딴지를 걸며 가파르게 올랐다 잽싸게 내리닫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토로한다. 그것은 곧 맴도는 세월의 원성이면서 골이 깊은 해금 소리로 화자에게 몰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해금은 속칭 깽깽이라고도 한다. 고려사에는 당악과 향악에 고루 쓰인다고 하나 악학궤범에서는 향악에만 쓴다고 기록했다. 현을 잡는 위치와 당기는 강약으로 음높이를 조절한다. 해금은 주로 대나무로 만들며, 활시위는 말총을 이용한다. 두 줄로 된 한국의 전통 찰현악기로서 소리는 청아하지만 연주하기에 상당히 까다로운 악기다. 화자가 하고 많은 악기 중에 이명을 해금 소리로 끝맺고 있는 점에 주시할 필요가 있다. 깽깽이가 품고 있는 무언가 슬프고도 아름다운 선율에 대한 기억 때문일 것이다.

나이 들면서 생각이 많아지면서 혼자 있다가 보면 이명 현상과 맞닥뜨리게 되는 때가 흔하다. 그래서 온갖 일들이 클로즈업 되어 눈앞에 어른거릴 때 때로 이명에 시달리면서 또 때로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남모를 추억에 잠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또 ‘북소리’에서 희망가를 부른다. 북소리는 전쟁터에서는 진군을 재촉하는 사기충천의 소리로, 경기장에서는 힘찬 응원의 소리를 낸다. 이 작품에서는 시선이 좀 다르다. 술렁이는 지평선 출발선상에 올라 봄볕이 보낸 낭보 두근대며 펼쳐들게 되는 그때 바람벌 말발굽 소리 양수처럼 터지는 상황을 시의 화자는 직시한다. 봄볕이 보낸 낭보가 바람벌 말발굽 소리와 결합하여 묘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북소리는 마침내 달빛도 떨려오는 아득한 마지노선 불길처럼 휘감겨 기둥으로 솟았다가 이내 묵묵히 바람의 함성을 울림으로 잠재운다. 각자 자존과 위의를 지키기 위한 방도로 북소리를 마음 속 깊이 압축파일로 저장해 놓았다가 삶속에 조금씩 풀어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해금소리, 북소리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고 있는 시인의 눈길이 따사롭다. 이정환(시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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