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성관에서 外

어릴 때 읽은 한 권의 책이 그 사람의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 깊어가는 가을날 초등학교 고학년들이 관심을 가지고 읽을 만한 창작동화와 우리 역사에 관한 흥미로운 소설책이 새롭게 서점가를 채운다.

▲ 추성관에서
▲ 추성관에서
◇추성관에서/김옥애 지음/김옥재 그림/청개구리/168쪽/1만1천 원

어린이들에게 문학의 향기를 일깨워주는 창작동화시리즈 ‘청개구리문고’의 35번째 작품인 ‘추성관에서’가 출간됐다.

김옥애 작가가 야심차게 펴낸 신작 장편동화로 이미 송순문학상 대상을 받았을 정도로 작품성을 인정받은 작품이다.

역사적 소재를 동화로 재구성해온 작가가 임진왜란 당시 백성들이 스스로 나서서 왜적에 맞섰던 의병들의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게 들려준다.

임진왜란은 아동문학에서도 자주 다루어져 온 소재일 뿐 아니라 교과과정에도 포함돼 있어 아이들도 잘 알고 있는 내용이다.

그러나 당시 의병의 활동상에 대해서도 잘 이해하고 있을지는 의문이다. 아이들은 흔히 임진왜란 하면 이순신 장군과 거북선을 쉽게 떠올릴 것이다. 위인 중심의 역사 교육 탓도 있지만 아동서사에서는 단연 영웅의 활약상이 흥미를 자아내기에 적합해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사의 고비마다 두드러져 보이는 뛰어난 영웅들의 업적은 그 이면에 가려진 이름 없는 민초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추성관에서’는 담양 지역에서 일어난 의병들의 활동상을 다룬다. 창평현의 앵원 마을을 배경으로 대장장이 이노당과 그의 가족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는 펼쳐진다.

1592년 4월14일 부산을 침범한 왜군은 파죽지세로 한양을 점령했고, 선조는 허둥지둥 개성으로, 평양으로 피란을 다니기에 바빴다.

이에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났다는 소문이 전해지고 이노당의 가족들도 전쟁에 대한 걱정과 불안에 휩싸이게 된다.

결국 담양 관아의 객사인 추성관에서 의병들이 모여 결의를 다지게 되는데 이노당은 같은 마을에 사는 서영대 노인으로부터 의병들이 무기로 쓸 칼과 낫, 곡괭이를 만들어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노인 자신도 대나무를 베어 죽창을 만들어 힘을 보탠다.

이처럼 이 작품에서는 백성들이 나서서 무기를 만들고 사람들을 모으는 등 스스로 전쟁을 준비하고 나아가 의병으로 전장에 나서기까지의 과정을 세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 세상 가장 높은 곳의 정원
▲ 세상 가장 높은 곳의 정원
◇세상 가장 높은 곳의 정원/버지니아 아론슨 지음/김지애 옮김/라임/172쪽/1만 원

이 책은 미래 식량에 대한 강렬하고 섬뜩한 예측을 담고 있는 환경 소설이다.

지구 온난화로 여섯 차례에 걸쳐 해수면이 상승해 전 세계의 도시가 초토화되고 기후 난민이 속출한 2066년의 미래를 배경으로, 그린란드의 초고층에 사는 열여섯 살 조니가 시작한 ‘옥상 정원 프로젝트’의 전모를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비약적인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의 수명이 연장되고 비대면 서비스가 일상화된 세상에서 최첨단 기술을 누리는 한편, 심각한 실업 문제, 빈부 격차, 인권의 퇴보 등 암울한 상황에 맞닥뜨린 미래에서 보내 온 냉철한 보고서다.

우리에게 닥칠지도 모르는 미래를 한 발 앞서 보여 주면서 논쟁적인 주제를 균형 있게 다루고 있다. 또한 보잘것없이 작지만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품고 있는 씨앗처럼, 죽음과 같은 절망 앞에서도 기어이 삶을 일구어 나가는 인간의 회복력을 증명해 보이는 당찬 이야기이기도 하다.

미래 인류의 생활상을 예측하는 작품들은 많지만 식생활 문제를 이 책처럼 깊이 있게 파고든 작품은 찾기 어렵다.

특히 기후 변화에 따른 식량 위기, 3D 음식 프린터, 유전자 변형, 종자 특허권, 초국적 농업 기업의 이권 다툼과 권력, 토종 씨앗, 식량 주권 등의 문제를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게 이야기 한다.

기후 변화라는 환경 문제에 더해 자본의 논리와 힘에 의해 맛있는 진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권리조차 박탈당한 시대에 대한 예측은 개연성이 충분하다는 점에서 더욱 무시무시하게 읽힌다.

여기에 더해 재택근무, 온라인 수업, 비대면 서비스가 일상화된 시대에 대한 스케치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이한 우리에게 시사 하는바가 크다.

스크린을 통해 모든 정보를 얻고 세상 사람들과 언제든지 연결될 수도 있지만, 결국 모두와 차단된 채 혼자 혹은 소규모 그룹으로 단절된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시대상은 적막하고 쓸쓸하다.

▲ 나라를 구하러 나선 아이들
▲ 나라를 구하러 나선 아이들
◇나라를 구하러 나선 아이들/최은영 지음/홍선주 그림/마주별/164쪽/1만2천 원

이 책은 1907년 2월, 대구에서 시작돼 전국으로 퍼져 나간 국채보상운동을 다룬 역사동화다.

일제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구하기 위해 똘똘 뭉쳤던 우리 민족의 저력을 일깨우고, 순수한 동심으로 힘을 보탰던 대구 시장통 아이들의 아름다운 애국심을 기린 이야기다.

대구에서 포목전을 운영하는 집안의 맏딸 분이는 자상한 아버지와 살뜰한 어머니, 동생 홍이와 목이까지 다섯 식구가 화목하게 살았다. 그런데 일본인에게 포목전을 빼앗기고 집안 형편이 급격히 나빠지자,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고 아버지는 병으로 몸져눕게 된다.

졸지에 한 집안의 가장이 된 분이는 시장에서 나물을 팔아 네 식구의 생계를 근근이 이어 간다.

그러던 어느 날, 단짝 선애에게 담배를 끊어 일본에 진 나랏빚을 갚자고 나선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고, 억울하게 빼앗긴 점포를 되찾을 희망에 부푼다.

1900년대 초 일본은 갖은 술수와 계략으로 우리나라를 집어삼키려 했다.

일본으로부터 차관을 도입하게 하고, 이자를 불려 몇 배로 갚도록 압박해 경제권과 외교권을 예속시키려 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1907년 우리나라의 빚은 1천300만 원에 이르렀다.

당시 대한제국의 1년 예산과 맞먹는 금액이었다. 억지로 떠안은 빚이었지만 그것을 갚지 못하면 일본의 간섭과 지배가 더욱 노골화될 게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 위기의식을 느낀 국민들이 일어섰다. 바로 국채 보상 운동이다.

이 책은 우리나라의 난민 인권 문제를 깊이 있게 통찰한 최은영 작가의 신작이다. 코로나로 모두가 힘든 시기에 역사에서 자긍심을 찾고, 슬기롭게 국난을 극복하자는 취지에서 기획했다는 게 작가의 이야기다.

생생한 역사적 사실 위에 작가의 상상력을 더해 낯설고 멀게 느껴질 수 있는 역사를 친근하고 흥미롭게 이해하도록 이끄는 책이다. 또한 평범한 사람들이 만들어 낸 역사를 조명해 동질감을 느끼게 하고, 우리 모두가 역사의 주인임을 일깨우고 있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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