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가윗날만 같아라.’

옛 속담이 무색해지는 추석이었다. 코로나 사태로 거리두기와 비대면이 일상이 되면서 가족, 친지가 한데 모여 정을 나누던 보통의 명절 풍경을 오히려 경계해야 한 추석이었다. 대신 멀리서나마 안부 전화를 하며 별 탈 없음을 서로 감사해야 한 시간이기도 했다.

코로나 사태로 이래저래 심기 불편한 국민들에게 추석을 앞두고 전해진 북한군 총격에 의한 공무원 피살과 시신 훼손 사건은 심란함을 더했고 또 이를 두고 벌어지고 있는 진영 싸움은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보도된 것을 보면 사건 발생 당시 북한군은 그가 비무장 민간인 신분임을 안 듯하고, 또 그때 상황이 총을 쏠 정도로 혼란스럽지도 않았던 것이 분명해 보이는데 어떻게 총을 쏘고 시신에 불을 놓아 훼손까지 했는지 말문이 막힐 따름이다.

우리 정치권은 사건 이후 북한 규탄 결의안을 채택하고 김정은 정권의 책임을 경고했다. 대통령도 ‘국민이 분노할 일’이라고 하며 사실관계 파악을 관련 부처에 지시했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국민은 과연 이게 북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대응이겠냐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동안 북이 저질렀던 유사한 범죄가 어디 한둘이었던가, 그때마다 정부는 경고하고 적대 행위 중단을 촉구했지만 지금껏 달라진 거라고는 전혀 없으니 말이다. 오히려 확인할 수 있었던 건 총부리를 맞댄 남·북 사이에 언제든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음을 국민들에게 새삼 깨닫게 한 것이고 북의 온갖 범죄와 말도 안 되는 생떼에도 우리에겐 대응할 수단이 전혀 없다는 걸 확인한 것이 전부였다. 여기에는 진보 정권도, 보수 정권도 다를 게 없었다.

이번에도 정치권은 늘 하던 대로 이 사건을 빌미로 정치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진보라는 여당은 현 상황에서 동의를 구하기 어려울 게 뻔한 종전 선언과 북한 관광 카드를 꺼내 놓으며 공세를 피해 가는 데 급급한 모양새고, 보수 야권은 정권의 위기관리 능력을 문제 삼고, 굴종적 대북 관계를 비판하며 여론몰이에만 힘을 쏟는 모습이다.

이럴 일인가, 북의 존재로 인해 그동안 우리 국민이 받은 고통이 얼마인데, 또 이러는가. 적대적 대치로 한반도는 늘 긴장 상태이고, 주변 강대국은 우리의 이런 처지를 볼모 삼아 툭하면 내정 간섭이고, 또 이를 이용해 자기들 잇속 차리기에만 혈안이 돼 있다. 이런데도 남북문제를 정쟁의 수단으로만 이용하고 있는 게 우리 정치인들이고 지도자들이라니, 지켜보는 국민만 답답할 노릇이다.

올해 초부터 전 세계를 덮치고 있는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여전히 국내외에서 기세가 여전하다. 우려했던 개천절 집회는 큰 탈 없이 지나가 다행스럽지만, 또 한글날 집회가 예고된 데다 감염 경로가 확인되지 않는 확진자와 무증상 확진자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기에 국민은 아직 불안하다.

그러나 어려운 시국이지만 대구·경북에서는 지역의 백년대계를 결정할 중요한 사업들이 속속 추진되고 있다. 통합신공항은 추석 이후 본격적으로 속도를 낼 것 같고, 대구시와 경북도의 행정통합도 주민투표를 계획대로 마무리 지으려면 후속 절차 추진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출향인들에게 명절 때면 찾아오는 고향이 아픈 현실이 된 지는 이미 오래됐다. 젊은 사람이 다 떠나고 노인만 남아 있는 농촌 마을을 보자면 이렇게나마 찾아올 수 있는 날이 언제까지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리라.

사람과 기업이 서울로만 몰려간 게 벌써 수십 년 세월이고, 이를 그냥 먼 산 보듯 한 결과물이 현재 소멸을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된 지방이고 농촌이다. 추석 며칠 전에는 권영진 대구시장과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국민의힘 지도부와 간담회를 하고 행정통합에 대한 정치권의 지원을 요청했다니 기대가 더 커진다.

대구시와 경북도도 포부가 크다. 인구 500만 명이 넘는 자치단체를 만들어 몸집만큼 커질 역량을 바탕으로 수도권에 맞서고, 또 그 힘으로 재정, 행정의 분권까지 이뤄내 실질적인 지방자치 시대를 열겠다는 것이다. 시·도민들이 힘을 보태는 것도 결국 같은 이유일 것이다. 어느 해보다 심란한 추석을 보내고 이제 모두 일상으로 돌아왔다. 내년에는 평범하지만 소중한 일상 속에서 맞는 추석이 됐으면 좋겠다. 논설위원 겸 특집부장



박준우 기자 pj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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