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운석

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

어른이 없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우리 사회에 어른이 실종됐다는 이야기다. 이는 뒤집어보면 존경할 만한 어른이 없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단순히 나이만 들었다고 어른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어른이란 뭔가. 국어사전에선 ‘1)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2)나이나 지위나 항렬이 높은 윗사람. 3)결혼을 한 사람’으로 정의해두고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어른이라고 이야기할 경우엔 단순하게 성인을 의미하지만은 않는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 사회에서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어른은 어떤 사람일까. 나이, 지위, 신분이 높다고 해서 어른이 아닐 것이다. 경제적으로 부를 축적했다고 해서 어른이 되는 것도 아니다. 어른은 자기가 한 말, 자기가 하는 행동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다. 어른이라면 적어도 인생 선배로서 다음 세대들을 보다듬고 품어주고 때론 이끌어주는 사람이 아닐까. 그래야 마음속으로 우러나오는 존경을 받을 수 있을 터다.

어른의 정의에 대해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일본의 교육학자이자 사상가인 우치다 타츠루가 이야기하는 어른과 아이를 구분하는 명확한 방법이다. 그가 쓴 책 ‘어른 없는 사회’(김경옥 옮김, 민들레)에선 다음과 같이 ‘어른’과 ‘아이’를 나눈다.

“길에 떨어져 있는 빈 깡통을 줍는 일은 누구의 의무도 아닙니다. 자기가 버린 게 아니니까요. 버린 녀석이 주워야지 지나가는 사람이 책임질 필요는 없다고 한다면, 그것도 맞는 말입니다. 그런 일은 모두의 일이지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이’입니다. 어른은 다릅니다. ‘어른’이란 그럴 때 선뜻 깡통을 주워서는 주변에 쓰레기통이 없으면 자기 집으로 가져가 분리수거해서 재활용품 수거일에 내다 놓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어른입니다. 아이는 시스템 보전이 모두의 일이므로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른은 시스템 보전은 모두의 일이므로 곧 자기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일본엔 어른이 없다”고 한다. 그는 모두가 어른일 필요는 없지만 다섯 명 중에 한 명 정도만 그런 어른이면 사회제도는 어떻게든 유지될 수 있다고 말한다. 문제는 지금 일본은 그 ‘아이’의 수가 비정상적으로 늘어난 사회라는 것이다. 어른 비율은 5%에 불과해서 일본사회의 시스템이 여기저기서 무너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일본을 이야기한 것이지만 한국사회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한국사회를 잠시 돌아보자.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의 경제 선진국이라는 위상은 하강 국면의 벼랑 끝에 서있다. 거기에다 장기화 되고 있는 코로나19로 실물경제마저 직격탄을 맞고 있지 않은가. 정치판에서는 민생은 뒷전이고 권력투쟁만 보인다. 보수와 진보 극단의 양 진영으로 갈라서서 이념논쟁만 벌이고 있다. 자기들이 누리는 것이 원칙을 저버린 특혜인지도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특권의식에 젖어있기도 하다. 이런 사람들을 과연 어른이라 할 수 있을 것인가.

갈수록 커지는 불평등과 격차, 늘어나는 자살률, 줄어드는 출산율 등에 큰 그림을 그리는 어른이 없다. 삶에 찌들고 좌절감에 주저앉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줄 어른이 없다. 물론 말 한마디 했다간 상대 진영으로부터 여론몰이에 뭇매를 당할 수도 있는 터라 몸을 사릴 수도 있겠다 싶다. 그렇지만 침묵으로 뒷짐만 지고 모른 체 한다면 어른이라고 할 수 있을까.

100세 시대가 눈앞이다. 은퇴 후 어른으로 살아가야할 날들이 확 늘어났다. 자칫 권위적이거나 나의 생각 또는 나의 사고방식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기만 한다면 꼰대라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그렇지만 꼰대가 아닌 어른 소리를 들으려면 해야 할 말은 목소리 높여 할 줄 알아야 한다. 꼰대가 아닌 어른이라면 ‘인플루언서’가 되어 이 사회에 좋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어야 한다. 과거의 영광만 되뇌고 있으면 어른이 되지 못하고 꼰대로 남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더욱 10여 년 전 세상을 떠난 두 분의 어른이신 김수환 추기경과 법정 스님이 그리운 것이다.

사회가 어렵고 갈등이 심해질수록 세대 간의 공감이 중요해진다. 그 역할은 어른이 할 수밖에 없다. 지금 한국사회는 어른이 필요하다. 할 말을 제대로 하는 묵직한 어른 말이다.





김지혜 기자 hellowis@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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