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철환

객원논설위원

종전은 전쟁이 실질적으로 끝난 상태를 말한다. 6·25 정전협정 이후 67년쯤 평화가 지속되고 있지만 전쟁당사자 간의 종전협정이 없었으므로 현학적으로 따지자면 아직까지 전쟁 중이고 휴전상태인 것은 확실하다. 그래서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하고 전쟁을 끝내자는 주장이 나온다. 얼른 생각하면 그럴듯하긴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렇게 간단하게 볼 사안은 아니다.

지금 상황이 절차적으로 휴전 중이라 하나 현실적으로 전쟁은 끝난 상태다. 지금 다시 남북 간 전쟁이 발발한다면 그것은 종전선언을 하지 않아서라기 보단 새로운 현재적 갈등이 불거졌기 때문일 것이다. 전쟁은 종전 여부와 관계없이 항상 발발할 개연성이 있다. 지금 종전선언이 이뤄지지 않고 있음에도 오랫동안 평화가 지속되고 있는 이유는 한반도에 힘의 균형이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선 종전선언이 아니라 힘의 균형을 무너트리지 않아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정신적으로 결벽증이 있어 종전선언이란 형식적 절차에 집착한다하더라도 먼저 헌법부터 개정하는 게 바른 순서다. 헌법 제3조에 규정된 국토의 범위를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에서 ‘현재의 통치권이 미치는 점유부분’으로 조정해야 한다. 아울러 동 제4조에 규정된 통일 국시도 시비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다. 종전선언은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는 전제 위에서 선언하는 국제적 약속이다. 허나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가지는 조약이라고 하더라도 헌법에 우선할 순 없다. 종전선언에 앞서 헌법 개정 작업이 선행해야 하는 소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종전선언이 위헌 논란을 불러일으켜 또 다른 갈등과 분열의 단초가 될 수 있다. 종전선언은 정치적 선언일 뿐 아무런 법적 효력이 없다면서 굳이 어지러운 시기에 갈등과 반대를 무릅쓰고 이를 추진하는 진짜 속셈이 뭔지 궁금하다.

종전선언을 하려면 전쟁당사자 간 종전협정을 먼저 해야 한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참전해 엄청난 전사자를 낸 대한민국과 중국이 그 출발선을 가로막고 있다. 양국이 정전협정의 서명당사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종전협상을 막아서는 장애물이다. 전쟁책임과 배상문제, 국경분쟁 등도 언제 돌출될지 모르는 숨은 암초다. 어느 것 하나 쉽지 않다. 휴전이후 오랜 세월이 경과한데다 초강대국이 복잡하게 얽혀 전쟁의 승패를 가리지 못한 채 힘의 균형이 팽팽하게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종전선언은 현 균형상태를 깨트릴 소지가 다분하다. 유엔사와 미군의 존재는 누가 뭐래도 강력한 전쟁억지력을 갖는다. 유엔사가 이름뿐인 상태이긴 하지만 아직 전쟁당사자 지위를 벗어난 건 아니다. 전쟁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미군도 전쟁당사자 자격으로 계속 주둔하고 있다. 전쟁이 발발할 땐 유엔군과 미군은 특별한 절차 없이 자동 참전이다. 이러한 사실이 힘의 균형추 역할을 한다. 초강대국들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위치에 처한 한반도는 민감한 곳이다. 작은 변화가 힘의 균형을 깨트리는 트리거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예민한 상태에서 종전선언과 같은 불확실한 모험을 걸 필요가 있는지 잘 따져봐야 한다. 균형상태에서 변화는 일단 위험하다.

종전선언을 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했다고 반드시 평화가 오는 건 아니다. 평화협정이나 불가침협정을 맺고 아무 거리낌 없이 전쟁을 벌인 일이 비일비재하다. 체임벌린 수상의 예에서 봤듯이 전쟁 앞에 협정서는 한낱 휴지조각일 뿐이다. 전쟁은 승리하는 나라가 모든 걸 갖는 제로섬게임이다. 전쟁에서 패한 나라는 사라지고 승리한 국가만 살아남는다. 승리한 국가가 역사를 이어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명분 없는 부당한 전쟁을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지만 전쟁을 피할 수 없다면 이기는 것이 정의다.

전쟁은 왜 근절되지 않을까. 부담이 크긴 하지만 그 위험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승전국은 땅은 물론 패전국을 송두리 채 빼앗아간다. 설사 땅을 돌려준다 해도 천문학적인 배상금을 물리고 불평등협약을 강요한다. 수많은 인명을 살상해야하고 비난과 견제를 받지만 이를 감수하고 다른 나라를 호시탐탐 노리는 이유는 전쟁의 높은 가성비에 끌리기 때문이다. 북한이 허리띠 졸라매면서 무리하게 핵미사일을 개발하는 이유는 골목에서 막대기 들고 칼싸움하는 애들도 잘 안다. 국가가 부단히 군비경쟁에 매진하는 것도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다. 평화가 좋다며 무장해제를 한다 해도 봐줄 나라는 아무도 없다. 종전선언은 ‘긁어 부스럼’이다. 정신 줄을 놓아선 안 될 때다.



김지혜 기자 hellowis@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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