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 통합과 공무원

발행일 2020-10-15 09:24:30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대구시와 경북도의 통합 이야기를 하면서 지방공무원들의 자세를 빠뜨릴 수 없다. 대구 인근 지역에서 귀촌인들이 모여 단체장에게 건의사항을 만들었다. 귀촌인들의 모임을 자치단체의 홍보 수단으로 만들려던 지역 공무원이 귀촌인들과 단체장의 간담회 자리를 마련한 것이었다.

일단 건의 및 질문사항을 모아 단체장에게 건네고 그 답을 듣는 자리로 만들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그 건의사항을 전달받은 담당 공무원이 답변서를 만들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런 질문지는 처음 받아 본다는 것이다. 시정 홍보와 단체장의 치적이나 자랑 일변도의 인터뷰 자료를 만지다가 문제성 있는 질문지를 받아들고는 고민에 빠진 것이다. 그는 역제안을 했다. 질문 중 5개만 하고 나머지 질문은 자신들이 만들겠다는 것이다. 귀촌인들은 그렇게라도 하겠다고 동의했다.

그런데도 도저히 단체장에게 그 질문을 할 수도, 대신 답변서를 만들 수도 없게 된 공무원은 다시 수정 제안했다. 자치단체에서 만든 질문만 하고 간담회 시간도 절반으로 줄이자는 것이었다. 귀촌인들은 그렇게는 단체장과 만날 필요도, 간담회를 할 필요도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귀촌인들과 단체장과의 간담회는 없던 일이 됐다.

그랬더니 또 다른 지역의 단체장 이야기가 나왔다. 단체장 인터뷰를 하기 전에 사전 질문지를 단체장실에 넣었는데 도무지 답이 없더라는 것이다. 자치단체의 공식 답변 기구가 있고 단체장의 비서실이 있는데 기관 내에서 서로 축구공 차듯 미루더라는 거였다. 문제는 질문지에 있었다. 그들은 일방적 홍보나 자랑거리보다 해결이 어렵고 답변하기 곤란한 문제가 있어 답변할 수 없었던 것이다.

몇 차례 논의 끝에 자치단체에서 질문하고 답변하는 식으로 절충했다고 한다. 그리고서야 서면답변을 받아낼 수 있었다. 문제는 직접 대면인터뷰를 할 때 다시 발생했다. 무슨 금기사항이라도 터뜨릴까 배석자들이 전전긍긍하더라는 것이다.

해당 자치단체의 단체장은 중앙에서 경력을 쌓은 실력자로 알려졌다. 그는 어떤 질문이든 받아내고 소화할 능력이 있는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었다. 그렇다면 정작 그를 모시는(?) 직원들이 과잉 충성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일종의 심기경호일 수 있겠다. 아니면 자신들이 착각하고 있을 뿐 어쩌면 단체장은 그런 걸 지시했을지도 모른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많은 지방자치단체들이 인구 감소로 위기에 처해 있는데도 공무원들은 전혀 그런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는 것 같다. 윗사람 심기만 챙기면 된다는 식이다. 지역의 인구나 수입 등 위상과는 걸맞지 않은 호화판 사무실에서 도대체 하루에 몇 명의 민원인을 상대하고 얼마나 중요한 일들을 처리하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듯.

그러면서 민원인에게 마치 엄청난 시혜라도 베푸는 듯 대하고 자기가 아니면 안 되는 듯 큰소리치는 지방 공무원들의 자세는 정말 시대착오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직접 마주치고 보면 서비스 정신이라고는 아예 없는 그들의 자세에 절망하게 된다고 입을 모은다. 그런 공무원들에게 대구·경북의 통합은 자신들의 신분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그것만이 관심사일 것이다.

작은 자치단체의 공무원들이 이런 판이고 보니 탄핵당한 전 대통령의 측근에서 심기를 챙겼다던 ‘청와대 얼라들’이 생겨났을 법도 하다. 그렇다면 지금 청와대는 달라졌을까. 지방의 중소도시 단체장들도 인의 장막에 싸여 있는데 국민과 야당의 소리는 귓등으로 흘리고 나홀로 독주하는 지금 청와대는 또 어떤가. 지난해 10월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 사퇴를 촉구하는 국민들의 함성이 지금 그 후임자인 추미애 법무부장관에게로 향하고 있음을 듣기는 하는가.

그들은 왜 자기가 모시는 상전의 심기만 중요하고 그들이 말로만 내세우는 실제 주인이라는 국민은 왜 그렇게 무시하거나 또는 피하는가. 혹시 단체장은 그런 것을 즐기지는 않는가.

대구시와 경북도의 행정 통합을 이야기하기 전에 공직자들의 자세부터 바로 세워야 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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