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일보 2020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장려상-정양자 ‘백산가에 뜬달’

발행일 2020-10-18 15:32:43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장려상 수상자 정양자
굴뚝에서 피어난 연기가 하늘로 치솟는 듯하더니 주흘산을 향해 허리를 굽힌다. 낯익은 냄새가 코끝에 스며든다. 달덩이가 망댕이가마 속에서 떠오를 채비를 하는 걸까. 열기와 사투를 벌이는 것은 아닐까. 입술 앙다물고 어금니를 질끈 깨물며 각기삭골(刻肌削骨)의 시간을 견디느라 밤잠을 설쳤으리라.

문경 초입에 들어서니 조령천변 운무가 화들짝 가슴에 안긴다. 계곡에 부는 산바람과 더불어 닿은 곳은 국가 무형문화재 전수관이다. ‘중요 무형문화재 105호 사기장’이라고 쓴 석조 조형물이 눈앞에 들어온다. 조선 영조 이래 300년 맥을 이어온 사기장인 백산 김정옥 도예 명장의 전수관이다. 어디선가 발물레 돌아가는 소리가 바쁘게 들린다.

작업장에 들어서니 수비를 거친 흙덩이를 치대는 도공의 숨소리가 거칠다. 꼬박밀기에 여념이 없다. 흙과 흙 사이에 한 점의 공기도 남기지 않기 위해 발뒤꿈치에 온 힘을 쏟는다. 전통을 이어온 세월의 마디가 보이는 듯하다. 손으로 치대고 발로 밀기를 반복한 꼬박을 발물레 위에 올린다. 이제부터는 뜨거운 가마 속에서 산통을 잘 견디고 옥동자를 출산하기 위한 기도의 시간이 아닐까.

명장의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한쪽 발로 물레를 차면서 혼을 불어넣는 아버지가 달의 반쪽을 빚었다. 다른 반쪽은 아들이 만든다. 수천 번의 손놀림으로 부자의 반쪽이 완벽하게 만들어졌을 때 하나의 달항아리가 된다. 선선한 바람과 그늘에서 여러 날을 지새우고서야 단단하게 밀착되어 한 몸을 이룬다. 1,300도를 오르내리는 불가마 속에서 온전한 달로 탄생하기 위한 숙려의 시간이 될 게다.

불 흐름이 좋아야 훌륭한 도자가 나온다 했던가. 명장은 봉통 앞에서 1차 소성을 위해 적송으로 피움불을 지핀다. 인간의 힘으로 해독하지 못하는 불의 세계가 아닌가. 나무가 귀한 시절엔 등가죽에 붙은 배를 안고, 지게에 소나무 한 짐을 지고 산에서 내려오려면 몇 고개를 넘어야 했을까. 장작을 던지고 삭이며, 붉고 푸르다가 투명하고 맑은 불이 되기까지 도공은 불보기로 날이 밝는다. 가마 속에는 불과의 사투에 살아남기 위한 도자의 묵언 수행이 진행 중일 것이다.

돼지머리와 곡주로 가마 성주님께 경배를 올린다. 도자가문에 이어온 전통의식일 게다. 망댕이가마 속에서 잘 견뎌주기를 바라는 나약한 인간이 신에게 의지하는 마음이 아닐까. 오묘한 불의 세계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는 방편인지도 모른다. 인간과 자연이 만들어낸 생명의 신비에 숙연해진다.

흙과 불이 빚은 도자는 거짓이 없다 했던가. 초벌구이를 마치고 달달한 유약으로 옷을 입힌다. 불과 마지막 사투를 벌일 채비에 분주하다. 욕심과 집착을 멀리하고 다시 기다림의 시간이다. 올곧고 소박한 주인의 심성을 닮은 달항아리의 출산이 눈앞이다.

고통은 극복하는 것이 아니고 그냥 견디는 것이라 했던가. 어려웠던 시절을 떠올리는 명장의 눈가가 촉촉해진다. 혹독한 시련을 이겨내야 비로소 빛을 보고 생명을 얻을 수 있을 것이리라. 뜨거운 가마 속에서 사투를 벌이면서 잘 버텨야 훌륭한 작품이 탄생하듯 도공의 삶 또한 그렇지 않은가.

오래전 겪었던 악몽이 되살아난다. 어느 해 스산한 봄날, 아들이 사고를 당했다는 비보와 맞닥뜨렸다. 걷기는커녕 몸을 가누지도 못한다. 의료진은 환자 상태가 척추 신경 다발 손상 없이 수술하는 것은 장담할 수 없단다. 웬 날벼락인가. 하반신 마비가 올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반나절 내내 수술실 문 앞에서 간절하게 기원했다. 아들이 걸을 수만 있다면 더는 욕심을 부리지 않겠노라고.

“수술 잘 됐습니다. 걸을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집도의의 표정이 환하다. 발을 디딜 수 있는 것이 어딘가. 당연했던 일상의 소중함을 이제야 깨닫는다. 온몸에 두르고 있던 집착과 욕망의 그물을 벗어 던지는 순간이다.

사람의 표정은 마음이라 했던가. 나이가 들면서 더욱 확연하다. 짐의 무게에 따라 깊고 얕은 자국을 만드는 수레바퀴처럼 지나온 흔적은 감출 수 없는 것 같다. 독경으로 하루를 시작한 것이 어언 이십여 년이다. 합장하고 마음을 내려놓는 기도가 자신의 일부분이 될 수 있도록 쉼 없이 정진한다. 거울에 비친 나의 낯빛이 점점 투명해지고 있는 것 같다.

끊임없이 미를 추구하던 우리의 선조들이 아닌가. 보름달처럼 둥글고 눈과 같은 순백의 백자 달항아리는 조선 시대 사대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 게다. 간결하면서도 기품이 넘치고, 안기고 싶은 후덕한 자태가 예나 지금이나 보는 이들을 열광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망댕이가마 속에서 휘영청 둥근달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 무아의 경지에 이른 도공만이 빚을 수 있는 달이다. 생의 기쁨을 맛보기 전에는 한 줌의 흙이 아니던가. 소박한 우리의 삶을 담아 낸 듯하다. 수백 년 시간을 건너온 명장의 혼은 지칠 줄 모르고 오늘도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도공의 넋이 문경에서 익어가고 있다.

하안거를 마친 수도승의 얼굴이 달항아리에 어린다. 불가마 속에서 방하착(放下著)하며 견딘 시간이 헛되지 않았던가 보다. 초벌에서 비우고 재벌에서 비우고 항아리 속에는 남은 게 없다. 명장의 투명한 낯빛이 땅 위에 훤하다. 주흘산 너머에서 보름달이 둥실 떠오른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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