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홑이불을 두르고 조심조심 빨랫줄을 타는 달/ 밤바람이 푸른 대숲을 밴다./ 달빛과 시대의 애환이 산안개에 접힌/ 달그르매의 푸른 수풀이다./ 生死路 한 켠에 핀 정은/ 이예 뎌에 떠닐 닙다이 떠나니./ 빨랫줄로 갈라지는 이승과 저승의 밝은 간격에/ 살아생전에 즐겁던 목소리./ 달빛은 시들어지면서 소리하고/ 이 밤에 울지 않는 것은 일체가 무상이리라./ 무상에 눈먼 월색의 두터운 귓밥 속으로/ 나는 가나다 말도 몯다 닐은 채…/ 달빛은 강으로 흐르고/ 푸른 강물에 자지러지는/ 허리 가늘은 생시의 풀꽃이다.// 2// 달은 푸른 즙을 반공에 풀면서/ 스스로의 신명을 벗지 못하는/ 셔블에 춤추는 처용/ 저만큼 不可解의 가시장 위에 밝게 뜬 달/ 밤바람에 무수히 일어서는 것은/ 시대의 주술이다./ 달빛은 속절없이 고인의 머리카락에 감기고/ 고인의 얼굴은 이슬처럼 풀숲에 밴다./ 수풀의 캄캄한 살 속으로/ 만리 밖 저승의 기침소리 들리나니/ 前世가 달빛 끝에 묻는 것은/ 오오 밤 깊은 처용의 춤이 끝없는 까닭일까./ 한밤의 달빛은 하릴없는 적막이고/ 한밤의 달빛은 가랑이 넷의 전설이다./ 가랑이 넷의 속 깊은 不可解다.

「수성문학」 (수성문인협회, 2020)

시인은 달빛을 즐기며 신라의 달밤에 젖는다. 서라벌의 향가 소리가 밤바람에 실려 온다. 피리소리에 ‘제망매가’가 묻어오고, 달빛아래 ‘처용가’가 들려온다. ‘제망매가’는 신라 경덕왕 때 월명사란 스님이 가을바람에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누이를 잃은 슬픔을 노래한 서정적인 시가다. 젊은 나이에 요절한 누이에 대한 그리움을 종교적인 승화를 통해 극복하려는 다짐이 두드러진다. 삶과 죽음의 절묘한 비유는 현대시의 메타포로도 손색이 없다. 달밤에 피리를 불면 달마저 넋을 잃고 운행을 멈췄던 까닭에 스님 시인은 월명사로 불렸다.

‘처용가’는 신라 헌강왕 때 처용이 아내의 외도 현장을 보고도 관용적 태도로 노래함으로써 역신을 감동시켰다는 시가다. 역신이 밤에 몰래 잠입해 처용의 아내와 잠자리를 같이 했다. 달 밝은 밤에 돌아온 처용은 두 사람이 함께 자는 현장을 보고도 ‘처용가’를 부르며 춤을 췄다. 그 광경을 본 역신이 감동해 처용 앞에 무릎을 꿇고 앞으로 그의 형상만 보아도 그 문안으로 들어가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역신을 쫓고 경사스러움을 맞아들이기 위해 처용의 형상을 문에 붙이는 풍습이 그때부터 생겨났다.

홑이불을 뒤집어 쓴 달이 빨랫줄에 걸리고 밤바람이 대숲을 울린다. 산안개가 달빛과 애환을 보듬고 달그림자가 수풀에 내린다. 월명스님이 피리를 불며 누이를 그리던 신라의 달밤이다. 남매의 정은 한 나무에 나서 이른 바람에 여기 저기 떨어지는 잎처럼 가는 곳 모른다. 이승과 저승의 갈림길은 빨랫줄로 갈리는 경계마냥 가까운 곳에 있으니 누이의 정겨운 목소리든 달빛의 시든 소리든, 세상만사가 무상하다. 간다는 말도 없이 달빛 속으로 떠나간 누이가 그립다. 달빛은 강물에 일렁이고 매끈한 물풀이 슬프도록 푸르다.

푸른 달빛 아래 처용이 신명나게 춤추는 서라벌의 달밤이 다가온다. 처용의 형상이 시대의 주술로 살아있다. 달빛 젖은 풀숲에 고인의 얼굴이 어리고 수풀 그림자 속에선 저승의 기척이 느껴진다. 달빛과 함께 지난 세월이 소환되는 것은 밤 깊은 시간에도 끊이지 않는 신명과 너그러운 관용에 터 잡은 처용의 주술 때문만은 아니다. 적막한 한밤의 달빛은 불가해한 가랑이 넷에 대한 서라벌의 전설이다. 오철환(문인)



김지혜 기자 hellowis@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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