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일반

일본유학은 죄가 아니다

오철환

객원논설위원

일본유학을 갔다 온 사람은 친일파, 민족반역자이고 이들을 단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일본유학을 갔다 온 사람은 친일파이고 친일파는 민족반역자이며 민족반역자는 단죄해야 한다는 논리다. 논리학에서 어떤 명제가 참이라면 그 대우도 참이다. 일본유학을 다녀온 자는 반역죄인이라는 논리가 참이라면 그 대우도 참이다. 처벌받지 않으려면 민족반역자가 되지 말아야 하고 민족반역자가 되지 않으려면 일본유학을 가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가 참이란 의미다. 그런데 처벌받지 않으려면 일본유학을 가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는 상식적으로 참일 수 없다. 원명제의 대우가 거짓이라는 의미다. 대우가 거짓이라면 대우의 대우는 당연히 거짓이다. 대우의 대우는 원명제다. 즉 대우가 거짓이면 원명제도 거짓이다.

복잡한 논법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일본유학을 갔다 온 사람을 단죄해야 한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다. 우리나라가 이 정도라도 발전한 것은 뒤늦게나마 외국의 학문과 문물을 적극적으로 배우고 받아들인 성과다. 유럽의 중세가 가톨릭에 갇혀 살았던 암흑기였다면 중국만을 선진국으로 섬기고 성리학을 절대적 진리체계로 신봉하던 조선시대는 우리 역사의 암흑기였다. 두꺼운 벽을 허물고 빛을 비추어 미몽에서 깨어나게 한 사람은 새로운 학문에 눈 뜬 선각자였다. 최초의 유학생인 유길준과 같은 해외유학파와 선진문물을 전해준 선교사들이 개화의 횃불을 들었다.

외세를 업고 추태를 보였던 친일파, 친미파, 친러파 등도 방법론에 문제가 있었고 국제정세를 오판한 잘못은 인정되지만 기본적인 애국심은 가지고 있은 듯하다. 그 누가 자기 가족, 자기 민족, 자기 나라를 사랑하지 않겠는가. 19세기 구한말의 지배계층이 좀 더 빨리, 좀 더 적극적으로 해외의 선진학문과 문물을 배우고 수용했다면 그렇게 무기력하게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기진 않았을 터다. 해외유학은 단죄해야 할 죄악이 아니라 포상해야할 미덕이다.

유학 대상국은 제한이 없다. 꼭 선진국이어야 할 필요도 없고 과거의 원수라고 하여 안 될 이유도 없다. 보잘 것 없는 소국이라도 타산지석이 될 만한 유익한 문화는 존재하고, 나라를 가릴 것 없이 그 나라 사정에 정통한 전문가는 필요하다. 개인은 선악의 개성이 있을 수 있겠지만 국가는 그 선악을 특정할 수 없고 감정이 없는 공동체이기 때문에 불변적 성향의 개별성은 없다. 나쁜 나라는 나쁘고 좋은 나라는 좋다는 식의 가치판단이 국가의 경우엔 해당되지 않는다. 일본도 항상 나쁜 것은 아니다.

일본이라고 특별하진 않다. 현해탄을 끼고 이웃하는 일본은 고대부터 우리나라와 교류해오던 사이다. 사이좋게 지내다가도 수틀리면 주먹다짐도 마다않았다. 수시로 노략질을 일삼으며 민폐를 끼치기도 했다. 이웃나라와의 이러한 갈등관계는 영국과 프랑스, 덴마크와 스웨덴, 터키와 그리스 등 다른 나라에서도 어렵잖게 발견된다. 먼 나라는 접촉할 일이 드물고 영토분쟁이 거의 없으나 가까운 이웃나라는 늘 붙어있는 관계로 싸울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닐 터다. 이웃나라는 이해가 엇갈려 싸워야 할 운명을 타고나지만 상호 내왕하면서 협력해야 할 숙명도 아울러 지니고 있다. 개인 간에도 마찬가지다. 같은 공간에서 자주 마주치다 보면 형제간이라도 얼굴 붉힐 일이 남보다 많은 법이다.

강제 병합해 고통을 준 일제의 만행은 잊혀 질 수도 없고 잊혀 져서도 안 된다. 이제 일제의 지배에서 벗어난 지 75년이 지났다. 아직도 일본과 불행한 과거사에 발목 잡혀 수시로 충돌하고 한다. 이웃나라와의 위상은 시대에 따라 변한다. 이제 새 역사를 써야할 때다. 미래에도 일본과 이웃하고 살아야 한다면 윈·윈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일본과 친하다고 반역자라 해선 답이 없다. 국가 간 감정은 허상이다. 일본도 이젠 우방으로 수용할 필요가 있다. 영원한 적으로 고정된 나라는 없다. 서로 이해가 갈려 돌아설 땐 돌아서더라도 그렇지 않을 땐 친구다.

더구나 앞으로 다가올 시대는 지금과 달라질 개연성이 크다. 지금까진 개인이 수동적으로 국가의 일원이 되었지만 글로벌시대엔 민족이란 관념적 허구는 사라지고 국가는 대체재로 전락할 수 있다. 마음에 맞는 국가를 각자가 선택하는 세상이 올 수 있다는 말이다. 국가의 경계가 옅어지는 현상을 목도하노라면 그런 세상이 벌써 코앞에 와 있는지도 모른다. 하루가 다르게 격변하는 시대에 친일파 프레임을 씌워 국민을 갈라 치는 일은 시대착오다. 시대가 변해도 유학이 죄가 될 것 같진 않다. 일본유학은 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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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onoo*****2020-10-21 13:20:22

이런식의 논리라면 일본제품을 사용하고 사용해 본적이 있는 대부분의 대한민국 국민들도 다 죄인이 될 것 같네요. 도대체 이 나라가 어떻게 되려고 이러는지, 자라나는 아이들은 또 어떻게 되는지 걱정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