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철의 빛살들을/뜨락 가득 쓸어 담아//생인손 앓듯 걸어오신 구순의 긴 여정을//이제는/내려놓으소서/벽오동 푸른 그늘에//무명베 오지랖에/빈 마음 채우시며//앞뒤 들 사래마다 피와 살 비벼 넣으신//가없는/모정의 세월/뼈에 새겨 아픕니다//어머니 불러보면 가슴 가득 메어 오고//앓아눕는 신열인 양 몸조차 가눌 길 없어//나 오늘/엄동의 설야/뜬눈으로 지샙니다

「대구시조 제23호(2019, 그루)」

이상진 시인은 전남 장흥에서 출생해 1990년 시조문학 추천완료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남도 가는 길」이 있다. 신앙인으로서 믿음을 고백하는 시편들을 적지 않게 썼다.

우리는 어릴 적에는 엄마라고 부르다가 성장하면서 어머니라고 부른다. 어머니라는 호칭은 백만 번을 불러도 그리운 이름이다. 살면서 한두 번씩 속으로 어머니를 부른다. 살아계실 때는 말할 것도 없고 돌아가시고 나면 더욱 간절히 어머니를 찾을 때가 있다. 외롭고 쓸쓸할 때도 그렇고 기쁜 일이 있을 때도 그러하다. 오래 전 어머니는 새벽에 일어나시면 머리를 감고 나서 빗으로 가운데 가르마를 탄 후 곱게 빗으시고는 했다. 잠결에 그런 장면을 엿보면서 또 하루가 어머니와 함께 시작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사모곡’은 그런 마음을 성심껏 담은 시조다. 그래서 화자는 사철의 빛살들을 뜨락 가득 쓸어 담아 생인손 앓듯 걸어오신 구순의 긴 여정을 이제는 내려놓으시기를 권한다. 벽오동 푸른 그늘이 넉넉하니 그곳에 다 내려놓기를 간절히 바란다. 무명베 오지랖에 빈 마음 채우시며 앞뒤 들 사래마다 피와 살 비벼 넣으신 가없는 모정의 세월이 뼈에 새겨 아프기 때문이다. 어머니, 하고 불러보면 가슴 가득 메어 오고 앓아눕는 신열인 양 몸조차 가눌 길 없기에 엄동의 설야를 뜬눈으로 지새우고 있다. 아들의 마음이 곡진하기 이를 데 없다.

그는 또 ‘토기장이’라는 시편에서 피조물로서 신앙고백을 하고 있다. 귀하고 천한 그릇이 쓰임새 각각 달라 큰 그릇 작은 그릇 모두 도공의 손에 달려 있음을 증언한다. 그것은 내 의지와는 전혀 관계없는 일이라는 점을 깊이 자각한 것이다. 온전히 토기장이의 뜻에 있다고 믿는다. 이쯤에서 토기장이가 누구인지를 짐작할 수 있겠다. 녹로를 발로 밟아 손으로 빚는 그릇은 빚을 때 목적에 따라 다른 모양이 나온다. 구운 뒤 등이 터진 토기는 깨뜨려서 버린다. 그러면서 내 길을 인도하시는 그분만이 붉게도 푸르게도 옷을 입히는 도공의 손을 아신다면서 나는 진흙이니 어찌 토기장이 마음을 다 헤아릴 수 있겠는가 하고 노래하고 있다.

그는 어머니를 그리는 마음을 노래한 ‘사모곡’을 통해 심금을 울리면서 우리 모두에게 어머니를 외쳐 부르게 한다. 돌아보면 어머니로부터 받은 가르침과 칭찬과 꾸지람이 생각나고 가슴이 뭉클해져서 어머니를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추억속의 어머니는 딸이라면 자신의 현재 모습을 통해 어머니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점점 원하든 원하지 아니 하든 아들은 아버지를, 딸은 어머니를 닮게 마련이다. 만추의 계절에 쓸쓸함을 이기기 위해서라도 더 자주 어머니를 불러볼 일이다. 낳으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오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없어라, 라는 양주동 작시 ‘어머니 마음’을 조용히 읊조려 본다.

‘사모곡’과 함께 또 하루를 힘차게 시작했으면 좋겠다. 이정환(시조 시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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