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운석
▲ 박운석
이달 7일부터 시작한 21대 국회 첫 국정감사가 26일 끝났다. 문재인 정권 중간평가라는 의미는 결국, 역시나 여야의 정쟁의 장으로 번지면서 빛이 바랬다. 국감 기간 동안 정책 대안 마련은커녕 호통과 막말로 정치 공방만 벌였다. 그 공방 속에 라임·옵티머스 사태와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등 국민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민감한 사안은 묻혀버렸다.

이번 국감으로 문뜩 떠오른 한자어가 있다. 견강부회(牽强附會)와 후안무치(厚顔無恥)이다.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억지로 끌어붙여 자기 주장의 조건에 맞도록 함을 비유하는 한자어가 견강부회이다. 후안무치는 낯이 두꺼워 부끄러움이 없다라는 뜻으로 뻔뻔스러워 부끄러워 할 줄 모르는 것은 말한다.

똑같은 이슈를 두고, 똑같은 국감증인의 말을 두고 여야가 자기들 입장에 맞게 견강부회하고 있다. 그럴 정도로 부끄러움 없이 뻔뻔하다보니 갈수록 얼굴은 두꺼워지고 있다. 국회 상임위원장과 상임위원이 감사 도중에 주먹다짐 일보직전까지 가는 일까지 벌어졌다. 고성에 삿대질은 물론이고 의사봉까지 내동댕이치기까지 했다. 그러고 나서도 서로 사과하기는커녕 유감표명도 없었다. 낯 두꺼운 일은 그들이 했는데 왜 보고 있는 국민들이 부끄러워해야 하는지.

맹자는 인간의 본성을 네가지 마음씨로 설명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인 측은지심(惻隱之心), 부끄러워하는 마음인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할 줄 아는 마음인 사양지심(辭讓之心),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인 시비지심(是非之心)이다. 이 중 수오지심은 자신이 착하지 않음을 부끄러워하고 남이 착하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이다.

사실 인간이 짐승과 구분되는 점 중 하나가 부끄러워하는 마음이다. 부끄러움은 사람만이 가진 감정이다. 남우세스러운 일을 저지르고 나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이걸 국회가 나서서 보여줘서 안타까울 뿐이다. 욕설에 막말에 후안무치한건 그들인데 왜 보고 있는 국민들이 부끄러워해야 하나.

얼마 전에 나온 ‘사람이 염치가 있어야지’(이주연 저)라는 책에선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인 염치가 결정적인 순간마다 사회와 공동체가 최악으로 치닫지 않도록 지켜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사회를 지탱해온 염치마저 없어진 듯하다. 경제적으로는 갈수록 살만한 세상이 돼가고 있지만 부끄러움을 모르는 몰염치한 사람들은 오히려 늘어나고 있어서일 게다.

‘염치 불구하고’라고 흔히 쓰는 말은 ‘염치 불고(不顧)하고’의 잘못된 표현이다. 불고(不顧)는 돌아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즉, 염치를 돌아보지 않는다는 건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말이다. 돌아보면 염치 불고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이젠 뉴스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공식처럼 사용하는 말이 있다. 주로 권력을 가진 자들이 염치 불고하고 하는 말이다. 먼저 어떤 의혹이 제기되면 “가짜 뉴스”라고 주장한다. 의혹이 수사 과정에서 드러나면 “재판에서 밝히겠다”고 하고, 법원 판결이 난 후에는 “대법원의 판단을 구하겠다”고 한다. 대법원의 판단 후에도 할 말은 있다. “역사가 증명할 것”이라고 한다.

하긴 염치없는 정도를 넘어 후안무치한 이들에게 맹자의 수오지심을 이야기해봤자 쇠귀에 경 읽기이다. 벼룩도 낯짝이 있고 빈대도 콧등이 있고 미꾸라지도 백통이 있다고 했다. 아주 작은 벼룩에게도 양심은 있다는데 부끄러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이 너무 많다. 대부분 지도층 인사들이다. 이들에게 더욱 요구되는 게 염치고 부끄러움이다. 그런데 후안무치한 이들을 보고 부끄러워하는 건 오히려 일반 국민들이다. 이젠 국민들도 부끄러움에 대해 갈수록 무감각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마음 한 구석 수오지심은 붙들고 있어야 건강한 사회다.

욕망을 주체할 수 없는 사람일수록 부끄러움을 모른다. 권력, 재물, 명예에 대한 집착이 강해질수록 수오지심은 없어진다. 이들에게 맹자의 말을 들려주고 싶다. 무수오지심 비인야(無羞惡之心 非人也). 자신의 착하지 않고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 갈수록 낯짝 두꺼워지고 있는, 지도층이라고 폼 잡는 그들에게 물어본다. 너는 사람인가. 그러면서 돌아본다. 나는 어떤가.

박운석(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저작권자 © 대구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