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철환 객원논설위원
▲ 오철환 객원논설위원
오철환

객원논설위원

민주당이 “당 소속 공직자의 중대 잘못으로 생긴 보궐선거에는 후보를 내지 않는다”는 당헌을 고치려고 한다. 성추행 사건으로 궐위된 부산시장과 서울시장의 보궐선거에 후보자를 공천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는 것으로 보인다. 정권 유지라는 편협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자기당의 당헌을 무시하고 국민과의 약속을 뒤집겠다는 뜻이다. 이는 국민의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다. 집권여당이 눈앞의 작은 이익에 눈이 멀어 정치를 포기하는 어리석음이다. 정치를 포기하는 것은 국민을 버리는 것이며 정당의 본업을 스스로 내려놓는 것이다.

공자는 정치란 국민을 먹이고 지키며 믿음을 주는 일이라고 설파했다. 그 세 가지 중에서 가장 중요한 요체는 바로 신뢰라고 했다. 신뢰를 잃으면 나머지 두 가지마저 달성할 수 없다. 무신불립(無信不立)이다.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면 나라가 서지 못하고 국민의 신뢰를 저버린 정권은 필히 망한다. 이러한 이치를 민주당인들 모를 리 없다. 그렇다면 정권을 스스로 내놓으려고 고의적으로 신뢰를 깨는 행태로 밖에 이해할 수 없다.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 힘에 부쳐 정권을 양보하려는 것이라면 좀 더 간단한 방법이 있다. 그냥 내려놓으면 된다.

정당이 당헌을 개정하려면 당헌에 규정된 절차에 따라야 합법적이다. 민주당 당헌에 ‘당헌 개정은 전국대의원대회 재적 대의원 과반수의 찬성 또는 중앙위원회 재적 중앙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고 돼있다. 그렇다면 전당원투표로 사실상 당헌 개정을 시도한 일은 당헌 위반이다. ‘3분의 1 투표에 과반수 찬성’이란 기준도 채우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당원투표에 따라 당헌을 개정하는 절차를 밟고 있는 작금의 사태는 의미도 없고 효력도 없다.

차후에 당헌의 규정대로 당헌개정 절차를 밟는다 하더라도 여전히 논란의 여지는 남는다. 현재의 개정안을 보면, ‘단, 전당원투표로 달리 정할 수 있다’는 문구를 추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당헌개정 후 다시 전당원투표를 해서 공천여부를 정해야 한다. 당헌개정 전의 전당원투표는 당헌개정 후의 사안에 대해 효력이 없다. 그렇다고 당헌개정 후에 동일 사안에 대해 다시 전당원투표를 실시하는 것은 ‘일사부재의 원칙’에 위배된다. 진퇴양난의 상황이다.

백보 양보해 당헌을 합법적으로 개정했다고 하더라도 공천을 하려면 또 무리를 할 수밖에 없다. ‘불소급의 원칙’을 위배하는데 대해 불가피한 사정이 존재해야 하나 그 사정이 전혀 불가피한 것 같지 않다. 특정 사안에 대한 판단은 그 사건이 발생한 당시의 법규를 적용해야 정상이다. 그렇지 않으면 사건이 발생한 이후 법을 임의로 유리하게 바꿈으로써 법망을 빠져나가는 일이 가능해지고 그 결과 법은 공허하고 무의미한 것이 되고 만다.

보궐선거에 귀책사유가 있는 당해 정당이 책임을 지고 공천을 하지 않으려는 취지라면 귀책사유가 발생한 시점의 당헌을 적용해 공천 여부를 결정해야 맞는다. 그렇게 해야 사후에 당헌을 개정해 당헌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전횡을 방지할 수 있고 현재의 당헌이 비로소 구속력을 가지고 그 추구하는 목적을 온전히 달성할 수 있다.

모든 논란은 국민을 무시하는 데서 발생한다. 국민을 두려워하고 국민의 판단을 신뢰한다면 보궐선거 공천논란 자체가 있을 수 없다. 공천 여부와 공천자 결정은 비록 특정 정당의 영역이지만 그 당선자를 결정하는 것은 유권자의 몫이다. 어떤 정당이 공천여부를 결정하고 공천자를 결정하는 과정을 유권자는 눈을 크게 뜨고 엄중히 지켜보고 있다. 합리적인 절차를 거쳐 적합한 인물을 공천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방법으로 엉뚱한 인물을 공천하는지, 잘 보고난 후에 자신의 현명한 선택을 이끌어낸다. 억지로 당헌을 개정하며 애를 써봐야 표를 더 잃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어느 누구도 감히 어리석은 모험을 하지 않을 것이다.

지난 추석에 가수 나훈아가 신곡 ‘테스 형’을 발표한 이후 ‘테스 형’에게 물어보는 것이 유행이다. 대세를 받아들여 민주당의 양대 보궐선거 공천 여부를 소크라테스에게 물어보고 싶다. 그라면 망설임 없이 악법도 법이라며 당헌대로 하라고 호통 칠 것이다. 옥문을 열어놓아도 도망을 거부하고 법에 따라 목숨을 내어놓았던 대철학자가 세월이 바뀌었다는 핑계로 다른 말을 하지는 않을 터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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