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운석
▲ 박운석
박운석

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

자칫 사자성어인 줄 착각하는 말이 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내로남불’이다. 언제부터 이 말이 이렇게 흔하게 들을 수 있는 말이 됐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너무 자주 뉴스에 등장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인사청문회 때마다, 정치 현안마다 단골로 나오는 말이기도 하거니와 요즘은 사회 지도급 인사들의 언행 불일치가 너무 흔하다보니 최고의 유행어가 돼버렸다.

이달 들어서 다시 ‘내로남불’이 회자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내년 4월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민주당 소속 후보를 사실상 공천하기로 확정한 이후다.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등 중대한 잘못으로 직위를 상실해 재보궐 선거를 하는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는다’는 당헌을 고쳐가면서 까지다. 5년전 당시 새정치민주연합(현 민주당) 문재인 대표는 새누리당(현 국민의 힘) 소속 군수의 당선무효형 선고로 치러진 경남 고성군수 재선거에서 새누리당이 책임지려면 후보를 내지 말아야한다고 주장했었다.

뉴스의 초점은 민주당 당헌 개정 찬반투표에서 86.6%가 찬성했으니 서울과 부산시장 후보를 낸다느니, 전체 당원 3분의 1 미만이 참여해 당헌상 유효 투표율에 미치지 못한 것 아니냐는 투표 효력 논란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보다 더 중요한 걸 간과하고 있는 듯하다. 내로남불에 대한 무감각이다. 초기 내로남불 사례가 나올 땐 너나 할 것 없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분개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사례에 이젠 “이번에도 역시” 하고 만다.

이런 내로남불은 ‘행위자-관찰자 편향’으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남이 할 때는 비난하던 행위를 자신이 할 때는 합리화하는 이중잣대라는 점에서 비슷하다. 똑같은 상황에서 자신이 한 행동(행위자의 입장)과 다른 사람이 한 행동(관찰자의 입장)을 평가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에게 유리한 잣대를 사용한다. 때론 상대에 대해선 더 엄격한 도덕적 기준을 들이대고 나에 대해선 너그러운 잣대를 대기도 한다.

황색 신호일 때 네거리를 통과하는 운전자를 보면 바로 ‘준법정신이 없는 사람’으로 치부해버린다. 하지만 자신이 그럴 경우엔 ‘급정거할 경우 사고우려가 있어 통과해야만 하는 불가피한 상황’으로 인식한다. 내가 하는 행위와 다른 사람이 하는 행위에 대한 잣대가 달라지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행위자-관찰자 편향’이 갈수록 극심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나와 우리 편만 로맨스라는 내로남불의 프레임에 갇혀 빠져나오지를 못하고 있다. 나와 내 편은 언제나 옳고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반면 너와 네 편은 늘 틀렸고 불륜이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독선과 오만이다. 심지어 내가 옳다며 정당한 이유를 대며 이야기해오던 행위마저도 상대가 하면 절대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 돼버린다. 이중의 잣대다.

‘행위자-관찰자 편향’이 고착화되면서 갈등은 커질 수밖에 없다. 나아가 상대가 무엇을 하든 믿을 수 없는 불신사회로 변하게 된다. 더 큰 문제는 내로남불에 무덤덤해지면서 도덕불감증마저 도진다는 사실이다.

원칙적인 말이긴 하지만 내로남불이라는 ‘행위자-관찰자 편향’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역지사지다. 상대방의 관점에서 모든 일을 바라보는 것이다. 관찰자인 내가 한순간에 행위자가 될 수 있고 또 행위자였던 내가 어느 순간 관찰자가 될 수 있어서다. 정권이 바뀌면서 행위자와 관찰자가 바뀐 경우를 수도 없이 봐오고 있지 않은가.

다시 현재의 정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정치는 명분과 실리를 놓고 다투는 싸움이다. 하나의 현안에 대해 명분과 실리 모두 챙기는 경우는 없다. 이번엔 명분을 선택했으면 다른 사안에 대해선 실리를 택하는 게 정치다. 다만, 대의명분을 선택했는데 나중에 실리가 따라오는 경우는 더러 있다. 그래도 눈앞의 실리 때문에 명분을 완전히 버리는 것은 매우 드문 경우다.

내년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당헌을 바꿔가면서까지 후보를 내겠다는 민주당은 명분과 실리 중 무엇을 얻으려 하는 것일까. 아니면 둘 다 챙기려는 것일까. 둘 다 잃으려는 건 아닐 테니 말이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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