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철환 객원논설위원
▲ 오철환 객원논설위원
오철환

객원논설위원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킨 선거가 조 바이든의 승리로 끝났다. 걸러지지 않은 거친 말로 원맨쇼를 하듯 세상을 뒤흔들어놓았던 희대의 괴짜 대통령도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갈 듯하다. 선거 결과에 불복해 소송을 냈다고 하지만 그 결과가 뒤집힐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그렇지만 트럼프가 남긴 미국 사회의 갈등은 쉽게 치유될 것 같진 않다. 선거 패배에 대처하는 모습도 과연 트럼프답다고 할 만큼 독특하다. 우리는 태평양 건너편에서 트럼프가 남긴 실패를 단단히 보고 타산지석의 교훈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트럼프는 개인적 선호와 판단에 의존한 정치를 구사했다. 재임기간 대변인은 설 자리가 없었다. 시도 때도 없이 기분 내키는 대로 트위터를 날리는 등 중요한 사안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시스템에 의한 필터링이나 제어장치도 없이 바로 세상에 내놓음으로써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다. 백악관과 정부 내의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았고 그 뒷수습으로 골머리를 앓는 모습이 빈번하게 외부로 노출됐다. 그 자신이 먼저 태연하게 말을 바꾸는 일도 벌어졌다. 거짓말을 하고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말을 바꾸고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절대강국 미국도 망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 점은 순전히 트럼프의 공이다.

선진국일수록 시스템과 조직이 탄탄하게 짜여있어 통치자의 실수나 잘못을 사전에 걸러주고 제어하고 바로잡는다. 통치자도 인간이기 때문에 불완전하다. 그 불완전성을 보완하고 그에 기인하는 잘못된 의사결정을 예방하는 역할을 하는 장치가 바로 시스템과 조직이다. 시스템과 조직이라 하여 완벽할 순 없지만 누적된 경험과 다수의 지혜를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불완전한 의사결정을 최소화시킬 수는 있다. 개인적 선호와 즉흥적 독단으로 인해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트럼프 스타일’은 제 아무리 통뼈라 하더라도 실패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트럼프는 견제와 균형을 자신을 얽어매는 사슬로 인식한 듯하다. 권력이 집중되고 견제 받지 않으면 반드시 독재로 흐르게 마련이다. 이는 역사가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권력을 삼권으로 분립하고 상호 견제하도록 하는 견제와 균형 원리는 그런 역사의 산물인 셈이다. 국가권력을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로 나눠 제각기 그 독립성을 인정하고 상호 감시하게 하는 시스템을 쓸데없는 낭비나 거추장스러운 비효율이라고 보는 시각은 민주주의와 어울리지 않는다. 트럼프의 4년을 돌이켜보면 권력분립과 견제를 대놓고 무시한 언행이 비일비재하게 존재한다. 미국시민이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를 제대로 하고 있다면 트럼프의 낙선은 예정된 절차일 뿐이다.

트럼프 최악의 과오는 배제와 차별이다. 자신을 지지하지 않거나 싫어하는 사람을 스스럼없이 배척하고 차별했다. 지지자에겐 포퓰리즘 밑밥을 뿌려 맹목적인 팬덤을 만들어냈다. 이는 반대한 사람을 제외한 지지자, 팬덤만의 대통령으로 남겠다는 뜻이다. 역으로 해석하면 선거로 선출된 경우라 하더라도 반대표를 던진 자는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반증이다. 결과적으로 트럼프는 국민을 증오와 분열로 이끌어 나라를 둘로 갈라놓았다. 선거판이 최악의 진흙탕 선거로 전락하고 양 후보의 팬덤이 거리로 몰려나와 충돌하게 된 것도 배제와 차별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대통령은 전 국민의 대통령이 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지지한 사람이든 지지하지 않은 사람이든 포용하고 관용해야 한다. 그래야만 지지하지 않은 사람도 같은 국민으로서 당선된 대통령을 받아들이고, 대통령은 전 국민의 대통령으로 바로 선다. 선거에서의 지지 여부와 무관하게 포용하고 관용하는 대통령이 돼야만 서로 타협하고 화합해 국민통합을 이뤄낼 수 있다. 트럼프는 이 부분을 놓치고 바람 잘날 없는 반쪽 대통령이 된 셈이다.

트럼프는 미국우선주의를 노골적으로 들고 나와 다자간협상과 국제협력관계의 프레임을 깨트렸다. 국제사회에서 자국우선주의는 기본이지만 전면에 드러내지 않고 협상하는 것이 상식이다. 유능한 협상가는 그 속내를 숨기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법이다. 대놓고 자국우선주의 깃발을 드는 순간, 모든 나라들이 똑같이 대응할 것이기 때문에 그 깃발을 감추고 물밑에서 협상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상호 윈·윈 하는 방법이다. 혼자 가면 빨리 갈 수 있겠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갈 수 있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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