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운석
▲ 박운석
박운석

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

지난 2월 말쯤이었을 게다.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되면서 경제활동이 거의 마비되다시피 했을 때였다. 강제로 주어진 집콕 생활에 조금 지쳐갈 무렵, 블로그 활동을 재개했다. 목표는 매일 하나의 게시 글을 올려 100일 동안 100개의 게시물을 올리는 것이었다. 주제는 평소 관심을 갖고 있던 맥주시음 후기였다. 맥주 후기를 쓴다는 건 100일 동안 다른 맥주를 마셔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결국은 하루를 빼먹고 99개의 후기를 등록했다. 물론 99종류 이상의 맥주를 마셨다.

세계 각국의 다양한 맥주를 마시다보니 자연스럽게 한국의 맥주, 대구·경북 지역의 맥주산업에도 관심을 가지게 됐다. 국내에도 소규모양조장이 곳곳에 들어서면서 지역마다 특색이 있으면서도 맛과 향이 뛰어난 수제맥주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중이다. 출시되자마자 판매가 완료되기도 하고 맥주의 본고장 독일로 수출까지 하고 있는 걸 보면 우리나라 맥주 양조 수준도 만만치 않다 할 만하다.

대구의 수제맥주 산업화에 참고할 만한 몇몇 좋은 사례들도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다른 산업과의 콜라보레이션이다. 콜라보레이션은 공동작업을 말한다. 협업이다. 맥주에서 콜라보레이션은 각기 다른 양조장에 속한 양조사들이 공동작업을 통해 새로운 맥주를 만들어내는 것을 말한다. 가끔 유명 연예인들과 콜라보하기도 하고, 유명카페의 커피를 넣은 맥주를 만들어내는 콜라보를 하기도 한다.

맥주업계에서 협업은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생소한 풍경은 아니다. 외국의 사례로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가 양조장끼리 혹은 맥주와 다른 산업과의 콜라보레이션이 가장 활발한 도시이다.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2013년 최고의 크래프트 맥주 여행지인 샌디에이고는 330만 명의 카운티 인구에 130개의 양조장이 있는 맥주 도시이다. 특히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익숙한 양조장들이 많다. 대형마트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맥주들을 생산하는 스톤 브루잉, 밸러스트 포인트, 벨칭 비버 브루어리와 에일 스미스, 칼 슈트라우스 브루잉 컴퍼니 등이 모두 샌디에이고에 있다.

이 지역 양조장들인 에일스미스와 피자포트는 협업으로 ‘로지컬 초이스’라는 알콜도수 높은 맥주를 만들었다. 벨칭비버의 ‘스워브 시티 IPA’는 미국 유명 록밴드인 데프톤즈(Deftones)와 협업한 맥주이다. 국내 대형마트에도 보이는 ‘팬텀 브라이드 IPA’ 역시 테프톤즈의 보컬 치노 모레노와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탄생했다. 이 맥주는 출시하자마자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왔다.

양조장과 커피업계의 협업으로 탄생한 맥주도 있다. 코로나도 브루잉은 이 지역의 ‘버드락 커피 로스터스’에서 볶아낸 커피를 양조 과정에서 넣어 ‘어얼리 버드 콜드 브루 밀크 스타우트(Early Bird Cold brew Milk Stout)’라는 맥주를 생산해냈다. 잘 볶은 커피 향이 가득한 흑맥주다. 아침식사와 함께 마시라는 안내처럼 맥주라기보다 커피라는 느낌이 더 강하다.

양조장 에일 스미스는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간판타자였던 토니 그윈을 기리는 맥주 ‘샌디에고 페일에일 3할9푼4리’를 만들었다. 3할9푼4리는 토니 그윈이 1994년 달성한 타율이다.

우리나라에도 수입됐던 이들 맥주 모두 소비자들이 흥미를 가질만한 이야기들을 품고 있다. 맥주와 록밴드, 맥주와 지역 커피업체, 맥주와 지역 연고의 야구스타를 엮어낸 것이 놀랍다. 대구도 가능한 이야기다. 대구지역 커피 프랜차이즈가 전국적으로 확산돼 있고 대구 출신 야구스타도 즐비하지 않은가.

다행히 대구도 수제맥주산업활성화를 위해 애쓰고 있는 중이다. 지난해 7월 수제맥주산업발전협의회를 창립한 이후 올해는 대구의 양조장 두곳에서 대구를 대표하는 수제맥주 3종을 개발해 출시를 앞두고 있다. 또 수제맥주 인구의 저변확대를 위해 홈브루잉 아카데미를 개설하기도 했다.

그러나 수제맥주산업 활성화를 위한 선결과제는 양조장 숫자이다. 현재 대구의 2개 양조장으로 산업화를 일궈낸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최소한 10여 개 정도의 수제맥주 양조장이 들어서야 양조장끼리의 협업은 물론이고 맥주와 커피, 맥주와 야구를 융합하는 그림이 나올 수 있어서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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