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석순
▲ 정석순
붕딤이산(부엉이산) 아래 가실마을은 단아하다. 아치형의 나무 터널을 벗어나자 고요하고 평화로운 풍경이 다가온다. 널찍한 주차장을 지나면 신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붉은 벽돌 성당이 고풍스럽게 서 있다. 백 년 성상이 서린 가실성당이다.

가실성당 정문 앞에 있는 작은 녹원이 눈을 끌어당긴다. 내 마음을 사로잡는다. 잔디밭이며 잘 가꾼 수목이며 여느 집 뜨락처럼 단정하게 꾸며진 정원이다. 한티재로 안내하는 표지판, 방문을 확인하는 스탬프를 담은 작은 집, 하얀 조각상을 중심으로 둘러쳐진 작은 나무들. 모든 권위를 내려놓은 주인장처럼 친절하게 나를 맞는다.

성당 앞 정원의 배롱나무 가지마다 붉은 꽃이 가득하다. 내가 찾는 배롱나무다. 오래도록 가실성당의 역사를 목도한 나무로 다섯 그루이다. 오랜 연륜을 품고 있어 길가 여느 배롱나무와 자태부터 다르다. 땅으로부터 솟아오른 다섯 개의 가지는 차라리 기둥이라고 해야 할까? 이렇게 불러야 연륜에 대한 예의인 것 같다.

한여름 뜨거운 태양 아래 더욱 붉게 피운 꽃송이들이 버섯모양의 지붕을 만들어 지주를 감싸고 있다. 허리를 숙이고 꽃그늘 아래로 들어가 보았다. 오랜 세월을 한 개의 지주에 담기에는 너무나 부족하였던지 다섯 개의 지주에 세월을 담아왔다. 껍질조차 터져버려 속살이 겉이 되었다. 기둥을 손바닥으로 쓰다듬자 감춰진 아픔이 저려온다.

1784년 이 땅에 실학자들에 의해 천주교가 들어왔다. 하지만 서양귀신이라는 이름으로 박해를 받아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창녕성씨 성섭이라는 학자가 천주교 진리를 받아들이고 복음을 전하였는데 1789년 돌아가시고 증손자 성순교가 열심히 신앙을 믿고 실천하다가 1860년 경신박해 때 상주에서 순교하였다.

박해는 그치지 않았다. 한티재에 숨어서 숯과 독을 구워 겨우 목숨을 이어갔다. 자신들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곧이어 추수할 누런 곡식 들판을 버리고 포졸들을 피해 한티재로 숨은 사람들. 아이들을 등에 업고 팔에 끼고 도망치다가 깊은 도랑물에 떠내려 보내는 가슴 쓰라린 부모들. 그러나 다시 붙잡혀 와서 결박당한 채 참수대 위에 꿇어앉고 말았다.

망나니들이 목을 자르자 핏줄기가 솟아올랐다. 칼끝에 맺힌 핏방울이 땅에 뚝뚝 떨어졌다. 그 붉은 넋들이 땅속에서 잠자다가 다시 피었을까? 뜨거운 8월의 햇볕 속에 핀 배롱나무꽃이 더욱 붉게 타오른다.

신앙의 자유를 얻은 기쁨도 잠시였다. 동족끼리 총칼을 겨누는 부끄러운 한국전쟁을 치러야 했다. 부모를 잃은 숱한 아이들이 고아가 되어 전장에 버려졌다. 너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기에 피비린내가 고지마다 감돌았다. 융단폭격으로 숱한 목숨이 왜 죽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산화했다.

한 자리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해서 바깥세상을 모르랴. 배롱나무는 바람이 전하는 소리도 들었을 것이다. 미국 제1기병 사단장 로버트 게이는 북한군이 낙동강을 넘어오는 것을 막아야 했다. 어쩔 수 없이 민간인의 희생을 안고 왜관철교를 포함한 낙동강의 다리를 폭파하라고 명령했다. 배롱나무는 그 괴로운 자백도 바람으로 들었다.

순교자의 아픔도, 남하하는 적을 막기 위해 몸을 던져야 하는 아픔도 배롱나무는 모두 끌어안고 살아왔다. 역겨운 피비린내와 밤낮 울려 퍼지는 총성, 인도교를 건너기 위해 철교에 매달린 사람, 견디지 못해 강물에 떨어지는 사람들의 비명소리, 그 아비규환이 여린 잠결에 들려왔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전세를 역전시키고 반격의 기틀을 마련한 국군과 유엔군의 노랫소리에 무슨 의미를 두었을까만 어느 누구의 승리도 아닌 서로의 가슴에 총질만 했던 비극의 현장을 바라보면서 가장 분명한 진실을 담고 살아왔을 것이다.

낙동강 전투 중에 가실성당은 남, 북한군의 야전 병원으로 사용되었다. 그리하여 피아군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기에 원형을 보전할 수 있었다. 기둥 한쪽에는 피투성이가 된 젊은 군인들과 학도병들의 주검도 각인되었겠지. 그들의 원혼이 폭염이 되어 내리는 배롱나무 붉은 꽃이 상여가 되어 한을 바람에 추슬렀겠지.

배롱나무는 많은 사람의 한과 아픔을 기록한 지주들을 붉은 꽃으로 덮었다. 드러내기에는 너무 많이 아프고 다 말하기에는 너무 깊이 사무쳐서 그럴까. 단지 붉은 꽃으로만 말하는 배롱나무가 나에게 다른 삶의 방식을 가르쳐준다. 지금은 잊은 채 살아가며 그것들은 과거의 일이라며 가슴 한편으로 밀어내기에는 배롱나무에게 너무 미안하다.

배롱나무의 붉은 꽃송이들은 순교자의 피와 한국전쟁에서 흘린 군인들의 피를 묵묵히 받아들여 아름답게 승화시키고 있다. 아무 말 없이 지난 세월을 지니고 있는 배롱나무 앞에서 할 말을 잊은 듯 나는 그저 바라볼 뿐이다.

배롱나무는 주인인 성당의 높이에 비해 한없이 낮게 전지하였다. 가지마다 예쁘게 단장을 하고 있는 모습은 스스로 순교자가 된 듯하다. 온갖 풍상을 거쳐 오늘까지 100년을 피워온 배롱나무의 붉은 꽃잎들은 이제 순례객을 맞이한다. 이 땅의 비극을 아는 순례객들은 배롱나무 동산에서 잠시 묵상한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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