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식품의 명인이 만드는 쌀엿과 전통조청||대한민국 전통식품 명인이 만든 합격 엿으로 수능

▲ 최송자 명인이 완성된 엿을 보여주고 있다. 포장작업을 마치면 판매제품으로 완성 된다.
▲ 최송자 명인이 완성된 엿을 보여주고 있다. 포장작업을 마치면 판매제품으로 완성 된다.
수학능력시험이 다가오면 응시생을 둔 어머니들은 몸을 사리지 않는다.

자식이 좋은 성적으로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은 그 어느 것보다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머니들이 해 줄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새벽 찬바람을 맞으면서도 교회와 성당에서 새벽기도를 드리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1천365계단을 올라야 만날 수 있는 갓바위 부처님을 찾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자식을 위해서는 이보다도 더한 고행의 길이라도 감수할 수 있다.

수험장까지도 따라간 어머니들은 쉽게 발길을 돌리지 못한다.

주머니 속에 넣어 온 엿을 입김으로 녹여 수험장 대문에 붙이기도 한다.

몇 번이나 망설이다가 돌아오지만 하루 종일 안절부절 한다.

조선시대에도 과거를 보러 떠나는 자식의 봇짐 속에는 항상 엿을 넣어 줬다고 한다.

엿처럼 ‘딱 붙으라’는 의미와 함께 엿의 주성분인 맥아당이 뇌의 기능을 활성화시키고 집중력을 높이는 효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엿에는 시험으로 인한 긴장과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효과도 있다.

아마 장원급제를 바라는 마음도 담았을 것이다.

엿은 합격의 상징이었다.

수능을 앞두고 울진군에서 전통식품품질인증을 받은 쌀엿과 전통조청을 만드는 대한민국식품명인 제83호인 최송자(65·여) 명인이 운영하는 매야전통식품을 찾았다.

최 명인은 명인전수자 교육을 받고 있는 아들인 윤영진(41) 실장과 함께 쌀엿과 조청을 만들어 연간 1억8천만 원의 매출을 올리는 강소농이다.

▲ 최송자 명인이 완성된 엿을 아들인 윤영진 실장에게 맛을 보여주고 있다. 매번 엿을 만들 때 마다 동일한 맛이 나는지를 점검하는 맛 테스트이다.
▲ 최송자 명인이 완성된 엿을 아들인 윤영진 실장에게 맛을 보여주고 있다. 매번 엿을 만들 때 마다 동일한 맛이 나는지를 점검하는 맛 테스트이다.
◆ 170여 년 전통 대한민국 식품명인

매화마을에서는 예전부터 쌀엿을 만들어 혼례나 회갑 등 잔칫날에는 반드시 만들어 먹었다.

폐백음식에도 빠지지 않았다.

언제부터 만들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기록으로 남은 것은 17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5대조 시할아버지가 필사한 피온심방 책자의 여백에 쌀엿을 만드는 방법이 기록돼 있다.

한지를 접어서 양면에 인쇄를 하하고 제본을 하면 접혀진 속 면은 여백으로 남는다.

종이가 귀하던 시절이라 접은 종이를 자르면 나타나는 여백에 엿과 조청의 제조법, 민간요법 등 다양한 내용들을 기록했다.

그 기록자는 최송자 명인의 5대조 시할아버지다.

최 명인은 5대조 시할아버지의 기록에 의해서 쌀엿과 조청을 만든다는 것이 인정돼 대한민국 식품명인으로 지정됐다.

해방 이후에는 대부분이 엿을 만들어 자녀들을 공부시켰으나 너무 힘들어 점차 줄어 들었다.

전통을 이어가자는 취지에서 1993년 23명의 부녀회원이 농촌여성일감사업으로 새롭게 시작했으나 그마저도 오래가지 못했다.

지금은 최 명인만이 유일하게 그 맥을 이어나가고 있다.

전국에는 쌀엿을 만드는 전통식품명인은 4명뿐이다.

▲ 최송자 명인이 초정의 점도를 확인하고 있다.
▲ 최송자 명인이 초정의 점도를 확인하고 있다.
◆ 명인이 만드는 전통 쌀엿

최 명인은 현재 쌀엿과 조청을 만들고 있다.

쌀엿과 쌀조청, 도라지조청, 생강조청 등 4가지 식품을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전통식품 품질인증을 받았다.

전통식품 품질인증은 까다롭다.

모든 재료를 국내산으로 사용해야 하고 전통방식에 의해 제조하는 것이 인정돼야 한다.

합성 첨가물을 사용하거나 위생상태가 조금만 나빠도 안 된다.

이처럼 조건이 까다롭다 인증을 받았다고 해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3년마다 재인증을 받아야 한다.

재인증 과정에서 미비한 점이 나오면 인증은 바로 취소된다.

쌀엿과 조청은 오직 쌀과 엿기름만으로 만들어 많이 달지 않고 담백한 맛을 낸다.

지역에서 생산된 쌀로 지은 고두밥에 보리를 싹틔운 엿기름과 물을 넣고 14시간의 당화과정을 거치면 식혜(감주)가 된다.

고운 천에 거른 맑은 액을 가마솥에서 오랫동안 졸이면 조청이 된다.

조청을 조금 더 달이면 진한 갈색의 강엿이 된다.

이 강엿을 늘리고 합치기를 반복하면서 공기를 주입하면 흰색의 쌀엿이 된다.

그 쌀엿을 손으로 당겨서 늘리고 가늘게 가락을 빼서 만든 것이 우리가 즐겨 먹는 가락엿이다.

엿기름에서부터 가락엿이 만들어지기까지는 긴 시간과 힘든 노동을 필요로 하는 힘든 작업이다.

수능을 앞두고 ‘합격엿’ 선물세트도 출시한다.

▲ 윤영진 실장이 살을 씻는 세미기를 세척하고 있다. 청결한 관리를 위하여 매질 세척작업을 실시한다.
▲ 윤영진 실장이 살을 씻는 세미기를 세척하고 있다. 청결한 관리를 위하여 매질 세척작업을 실시한다.
◆ 도라지와 생강으로 만든 기능성 조청

조청은 사람이 곡물을 이용해 만든 꿀이라는 뜻의 전통식품이다.

약이 귀하던 시절에는 조청을 약으로도 사용했다.

그냥 먹기도 하고, 단맛을 내는 요리에도 사용했다.

설탕이나 물엿보다 칼로리가 낮고, 천연발효식품이라 소화를 촉진시킨다.

최 명인은 전통식품인증을 받은 3가지의 조청을 만든다.

가장 기본인 쌀 조청부터 기능성을 첨가한 도라지조청과 생강조청이다.

도라지조청은 삶은 도라지와 그 물로 발효를 시키고, 다진 도라지를 추가로 넣어 도라지의 쌉쌀한 맛과 씹히는 맛을 느낄 수 있다.

쌀과 엿기름, 도라지, 물 이외에는 아무것도 첨가하지 않는다.

도라지의 사포닌성분이 포함돼 기관지나 호흡기 질환에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생강조청은 생강의 매콤한 맛과 조청의 달콤함이 어우러진 맛이다.

면역력을 높이고 살균과 해독작용이 탁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8년 MBC 대장금 장터에서 기침에 좋다는 음식과 한약, 양약을 수 없이 먹었으나 기침이 그치지 않는다고 푸념을 하는 특별한 고객을 만났다.

도라지 조청이 기침에 좋다고 설명하며 한 병을 드렸다.

3일 후 전화를 받았다.

신기하게 기침이 멈췄다면서 고맙다고 했다.

그 고객은 매달 정기적으로 도라지 조청을 구입하는 단골이 됐다.

▲ 포작작업 직전의 쌀엿.
▲ 포작작업 직전의 쌀엿.
◆ 대를 이어가는 명인 전수자

아들인 윤 실장은 울산에서 반도체 생산기업에서 12년 동안 근무 했었다.

자재의 입고에서부터 제품 출하까지 전 공정을 관리하는 일을 했다.

2016년 쌀엿 가공공장을 확장·이전하면서 어머니 혼자서 감당하기 어렵다는 말을 듣고 합류했다.

기업에서 생산라인을 관리하고 ISO인증 등 여러 분야의 인증업무를 추진했기 때문에 품질관리에서는 자신이 있었다.

윤 실장의 이런 경험은 어머니의 명인 선정과 전통식품 인증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명인 선정과정에 5대조 시할아버지가 남긴 쌀엿과 조청의 제조 공정에 관한 기록을 해석하고 공증을 받는 과정을 맡아서 했다.

현장실사 과정에 집안에서 보관 중이던 엿틀과 시루, 항아리, 멍석 등 각종 도구를 전시해 심사위원들에게 신뢰감을 심어 줬다.

심지어 15년째 사용 중인 실로 꿰맨 박 바가지까지 전시했다.

1993년부터 기록하고 있는 판매장부와 거래처내역, 포장지까지 찾아 자료로 활용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단 한 번의 신청으로 명인으로 선정돼 전통식품인증도 받았다.

그러나 일손을 줄이기 위한 시설 개선과정에는 어머니와 의견 차를 보이기도 했다.

전통방식을 고수하자는 어머니의 의견과 전통을 지키면서도 노동력을 줄일 수 있는 현대시설을 도입하자는 윤 실장의 의견이 대립한 한 것이다.

윤 실장은 현재 명인전수자과정 교육을 받으면서 2대 명인이 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명인의 길은 쉽지 않다.

전수교육을 5년 이상 받고 10년 이상 그 일에 종사해야 한다.

▲ 수능철을 맞아 선보인 합격엿.
▲ 수능철을 맞아 선보인 합격엿.
◆ 6차산업화와 전통식품 박물관 건립

최 명인은 새로운 길을 준비하고 있다.

윤 실장이 합류하면서 체험활동과 지역의 관광지를 연계한 6차산업화로 나가기로 한 것이다.

시설을 확대해 체험공간을 만들고 엿과 조청을 활용한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기로 했다.

체험활동을 통해 전통식품의 가치를 알린다는 계획도 있다.

강엿을 늘려서 가락엿을 만들고, 엿치기를 하면서 엿에 얽힌 많은 스토리를 들려줄 계획이다.

‘엿장수 마음대로’라는 말처럼 철컥철컥하는 엿가위 장단을 따라 자기 마음대로 뛰고 구르는 신나는 놀이 프로그램도 만들겠다고 한다.

더 큰 계획은 전통식품인 쌀엿과 조청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도구들을 전시하는 전통식품 박물관을 만들어 전통식품의 중요성을 알리는 것이라고 한다.

명인이 만드는 전통 쌀엿의 맛이 기대된다.



글·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



이동률 leedr@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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