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진

수성구립용학도서관 관장

‘대구사람’ 전태일이 이제야 대구에서 되살아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서울을 비롯한 전국적으로 인정받은 대구사람이 이때까지 대구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것이다. 전태일은 1948년 대구에서 태어나 어린 여공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몸부림치다가 1970년 11월13일 서울 평화시장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라”라고 외친 뒤 자신을 불사른 노동운동가다. 늦었지만 대구에서 그가 살았던 옛집을 사들여 ‘전태일 기념관’을 조성하는 초석이 마련됐으며, 문화예술계에서도 전태일을 조명하는 책과 작품을 내놓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럽다. 대구의 자존심이 살아있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12일, 대구시 중구 남산동의 한 옛집에 ‘전태일’이란 이름이 새겨진 문패를 다는 행사가 열렸다. 이 집은 전태일의 가족들이 1963년부터 1년 정도 셋방 2칸을 얻어 살았던 집이다. 현재 명덕초등학교 강당 자리에 있었던 야간학교인 청옥고등공민학교를 다녔던 그 시절을 두고, 그는 자신의 일기에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라고 회고하기도 했다. 이날 행사는 사단법인 ‘전태일의 친구들’이 2년간 시민들을 상대로 십시일반 모금운동을 벌여 남산동 옛집을 샀다고 알리기 위해 마련됐다.

대구시민들이 의기투합해 지난해 창립된 전태일의 친구들은 남산동 옛집 매입자금 5억 원을 모으기 위해 꾸준하게 노력했다. 지난해 일차적으로 1억3천만 원을 모금해 계약금을 치렀고, 코로나19 사태로 사정이 어려워진 올해도 중도금 1억 원을 지급한 뒤 50주기를 앞두고 매입을 마쳤다. 그 과정에서 미술가와 음악가들은 기부 전시회와 콘서트를 마련했으며, 지금도 기념관 건립비용을 모금하고 있다. 전태일의 친구들은 지난 13일 경북대 글로벌프라자에서 50주기를 기념하기 위해 ‘지금 여기 전태일’이란 주제로 학술대회를 열기도 했다.

전태일 열사를 조명하는 책의 출간도 올해 이어졌다. 전국 12개 출판사가 그를 조명하는 ‘전태일 열사 50주기 공동출판 프로젝트- 너는 나다’가 그것이다. 대구지역 출판사 한티재는 ‘태일과 함께 그늘을 걷다’를 펴냈다. 저자는 전태일이 살았던 시대와 현재의 노동현장과 사회의 뒷면을 들추면서 인간다운 삶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대구의 치과의사 송필경은 휴머니스트로서의 그를 재조명한 ‘왜 전태일인가’를 출간했다. 지난 9월에는 대구 출신 인권변호사 조영래가 쓴 ‘전태일 평전’ 개정판이 나왔다. 앞서 지난해 가을에는 대구문화재단이 ‘대구에서 전태일을 기억하기- 전태일로 본 대구 정체성’을 펴내기도 했다.

예술계의 움직임도 있다. 극단 초이스시어터가 24일부터 27일까지 대명공연거리 아트벙커에서 연극 ‘만나지 못한 친구’를 공연하고 있다. 이 작품은 전태일과 그의 삶을 처음 조명한 ‘전태일 평전’을 쓴 대구 출신 인권변호사 조영래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미 고인이 됐으며, 실제 만난 적이 없는 두 사람이 만났다면 어땠을까 하는 설정에서 제작된 작품이다.

대구와 달리, 서울을 비롯해 전국적으로는 ‘대구사람’ 전태일을 일찌감치 제대로 평가했다. 서울에서는 1981년 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가 발족된 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란 호칭을 부여하면서 청계천에 기념관과 동상을 만들어 그를 기리고 있다. 올해 들어서도 정부는 노동계 최초로 무궁화훈장을 추서했다. 무궁화훈장은 국민복지 향상과 국가 발전에 기여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국민훈장 1등급이다. 또 서울 도봉구는 도로명주소위원회를 열어 그가 살았던 옛 판자촌 집터 인근의 도로 이름을 앞으로 5년간 ‘전태일로(路)’로 부르기로 했다.

대구는 인물 평가에 인색하기 짝이 없는 도시로 알려져 있다. 수십 년 동안 대구에서 생활하면서 지역사회에 동참했던 한 교수의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역대학에서 정년퇴직을 해도 자신이 대구사람이 아니라, 외지인으로 취급된다는 언급이 바로 그것이다. 몹시 서운했을 것이 분명하다. 대구의 발전을 가로막는 지역 특유의 폐쇄성이 그대로 드러난 사례다. 다른 지역에서는 자그마한 연고만 있어도 자기 지역의 사람이라며 끌어안고 지역발전의 동력으로 삼아 힘을 모으고 있다. 현명한 판단이다.

하물며 대구에서 태어나고 대구에서 생활한 전태일을 이제야 대구사람으로 취급하려는 대구의 풍토가 그나마 다행스러우면서도 안타깝다. 그것도 지방자치단체는 외면한 채 시민들이 주도하는 전태일 50주기에 우리는 무엇을 느껴야 할까. 삼성그룹의 발상지가 대구이고,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이건희 회장의 출생지가 대구라면서 짝사랑을 퍼붓던 것과는 사뭇 다른 태도다. 전태일이 사회적·경제적 약자라서 그런지 의문이 생긴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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