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현

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

영국의 정치가이자 법률가인 토머스 모어(1478~1535)는 세상의 부조리를 역설과 유머, 냉소로 비판한 인문주의자였다. 그는 해학이 넘치는 재담가이자 신랄하고 통렬한 언어로 서민의 가슴을 시원하게 해 준 탁월한 문장가이기도 했다. “결혼하고자 하는 처녀와 총각은 상대방 앞에서 홀딱 발가벗고 선을 보여야 한다. 말 한 마리를 살 때도 꼼꼼히 관찰하고 확인하는데, 좋건 싫건 평생을 함께 살아야 할 사람을 고르면서 얼굴만 보고 판단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의 정치적 공상 소설 ‘유토피아’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젊은 날 친구들과 이 책을 읽고 토론할 때, 우리는 젊은이답게 이 대목을 꺾쇠로 표시해 두거나 밑줄을 치며 낄낄거리며 웃었다. ‘발가벗은 몸’이란 몸매만 뜻하는 것이 아니고 얼굴만으로는 판단하기 어려운 정신세계나 지적인 수준, 가치관 등도 의미한다는 사실을 물론 알고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을 뽑을 때는 언변과 외모만 봐서는 안 된다.

고전이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항상 현실적인 의미와 가치를 가지는 작품이다. 우리처럼 파란과 곡절이 많은 사회가 불후의 명작 ‘유토피아’를 주기적으로 다시 잡게 만든다. 토머스 모어는 1516년에 ‘유토피아’를 출간했다. ‘유토피아’는 어원상 ‘존재하지 않는 장소’를 의미한다. 이 책의 원제는 ‘최상의 공화국과 새로운 섬 유토피아에 관하여’이고 2부로 구성돼 있다. 1부에서는 당대 사회의 참상을 고발하고, 2부에서는 유토피아의 생활 방식과 사회제도에 관해 들려준다. 500년 전에 나온 이 책이 오늘에도 생생하게 와 닿는 이유는 지금 우리 사회의 공정과 정의, 평등의 문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부와 자본의 쏠림이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해 청년과 서민의 꿈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토머스 모어는 흉년은 기상재해이지만 그 참혹한 결과를 방지하지 못하는 것은 부자들의 탐욕 때문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그가 살던 시대나 지금이나 부자들의 곳간에는 그들이 다 못 먹고 썩히는 식량이 차고 넘친다. 그는 그런 사회를 바라보며 효율적인 분배 문제를 고심했다. 모어는 그가 생각하는 이상향을 ‘유토피아’를 통해 묘사하려고 했다. 그의 시대가 얼마나 불공정하고 불평등했으면 그런 이야기를 썼겠는가.

“10년마다 추첨을 통해 집을 바꾸며 산다.” 최근 ‘유토피아’를 다시 읽으며 오래 눈이 머문 구절이다. 민주당 미래주거추진단장 진선미 의원의 ‘아파트 환상’ 발언 때문이다. 진 의원은 공공 매입 다세대 임대주택을 방문해 “아파트에 대한 환상을 버리면 임대주택으로도 주거의 질을 마련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방도 3개가 있고 해서 내가 지금 사는 아파트와 비교해도 전혀 차이가 없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호텔 방 전세가 미래 주거라니 당신부터 호텔 방 전월 셋방에 들어가라” 등의 비난이 쏟아졌다. 국민의 힘 윤희숙 의원은 “국민 인식의 밑동이 무엇인지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고 방 개수만으로 섣부른 판단을 내리는 지적인 나태함”이라고 비판했다. 윤 의원은 “더 암울한 것은 오랜 세월 축적돼 온 국민의 인식을 아무런 근거 없이 ‘환상이나 편견’으로 치부하는 고압적인 태도”라고 혹평하며 “민주화 세대라는 이들이 누구보다도 전체주의적인 사고방식에 젖어 기본을 외면하는 것은 우리 현대사의 가장 큰 아이러니”라고 비판했다. 누구의 편도 들고 싶지 않다. 어느 쪽도 아파트 없는 서민의 고충과 설움을 해결해 줄 수 있다고 믿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발언과 논쟁을 보며 10년은 너무 길고 3년에 한 번씩 강남과 강북, 부자와 가난한 자가 서로 집을 바꿔 살아보면 어떨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 본다.

절대권력이 반드시 부패하듯이 극단적인 정의의 추구는 극단적인 불의를 낳는다. “완벽한 국가에서는 완벽한 법을 제정하는 일보다는 완벽한 법의 집행을 최상의 사람들에게 맡기는 일에 전력을 기울이지요”라는 구절에서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갈등과 대립을 떠올려 본다. 그 어느 때보다 전문가가 필요하지만 믿고 맡길 전문가를 찾기가 어렵다. 유토피아는 어디에도 없는 섬이지만 동시에 어디에나 있는 섬이다. 그래서 우리는 없는 줄 알면서도 끊임없이 유토피아를 갈망한다. ‘유토피아’의 구절이 절절히 와 닿는 오늘의 현실이 안타깝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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