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경희 청송군수
▲ 윤경희 청송군수
윤경희

청송군수

전쟁은 인간의 탐욕이 만들어낸 결과물이자 가장 참혹한 방법으로 스스로와 주변의 모든 것을 파괴하는 선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 역사 속에는 수많은 전쟁이 존재했다.

21세기의 한낮을 살고 있는 요즘, 과연 전쟁은 사라졌을까? 필자는 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총칼만 들지 않았을 뿐 우리는 코로나라는 전쟁터에서 바이러스와 맞서 싸우고 있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사망자는 100만 명을 넘었고, 장기전에 돌입한 국민들은 몸도 마음도 지쳐만 간다.

이 전쟁은 도대체 언제쯤 끝나는 것일까? 그런데 우리의 역사를 살펴보면 전쟁으로부터 백성과 땅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은 바로 민초들이었다.

2년 전 종영된 ‘미스터션샤인’은 넷플릭스 드라마 전성기의 시작을 알린 극인데, 항일의병의 이야기를 다룬 그 드라마 속 대사에 이런 말이 나온다.

“임진년에 의병이었던 자의 자식들은 을미년에 의병이 되지요. 을미년에 의병이었던 자의 자식들은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요?”

요컨대 우리의 역사는 민초들의 화합으로 이어졌다. 뼈아픈 근대사를 지켜온 장본인은 바로 풀뿌리처럼 여기저기 흩어져 있지만 연결된 뿌리의 힘으로 위기에 맞서서 똘똘 뭉친 우리 백성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무명의 “아무개”로 불렸다.

필자가 이렇듯 서두를 장황하게 밝힌 이유는 그 풀뿌리를 말하고자 함이다. 우리는 예로부터 두레, 계와 같은 공동조직을 기반으로 공동체 차원에서 서로 논의하고 협력하기를 좋아하는 민족이었다.

현대의 풀뿌리민주주의 또한 거기에서 비롯해 사회 곳곳에서 반향을 일으키며 성장했는데, 언제부턴가 그 말이 무색하게도 지방소멸시대에 직면해 있다.

지역 이기주의는 팽배해져 가고, 코로나로 지방의 사막화 현상은 가속화 돼가고 있다. 풍전등화 같은 분열은 결국 풀뿌리민주주의를 이끌어가는 지방자치단체가 풀어야 할 어렵고 힘든 숙제로 남겨졌다.

특히 최근에는 SNS가 활성화 되면서 온라인상에서도 분열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소위 말하는 댓글 등을 통해 서로 편을 나눠 헐뜯으며 싸움을 부추긴다.

협력하고 조력하기보다는 무조건적으로 반대를 한다.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셈이다.

건전한 비판은 당연히 있을 수 있고 수용 할 수 있지만, 머리를 맞대고 곤두박질칠 궁리만 하고 있다면 이는 명명백백 잘못된 처사이다. 단합과 단결이 시급히 필요한 때다.

그렇다면 지방자치단체가 앞으로 나가가야 할 올바른 방향은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소통을 근간으로 한 사회적 화합’이다.

강조하건대, 지자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느 한쪽의 일방적 고집이 아닌 소통과 화합으로 지역의 상생·발전을 이끌어내는 길 뿐이다.

일례로 우리 지역의 소노벨 청송(구. 대명리조트)은 코로나를 극복하기 위해 대승적 차원의 결정을 한 바 있다. 지난 3월 코로나19 경증환자 생활치료센터로 운영한 것이다.

당시만 해도 대구·경북에서 감염자가 쏟아지면서 치료시설이 부족해 확진자들이 자가에 대기하고 있던 절박한 상황이었다.

이때 소노벨 측이 방역당국의 요청을 기꺼이 수용해 생활치료센터 운영에 들어갔으며, 청송군과 군민들도 이를 응원하고 지지했다. 그 결과 경증환자들이 완치 후 무사히 귀가할 수 있었다.

이 사례는 코로나19라는 국가적 비상사태를 마주한 상황에서 지자체와 민간이 합심해 최상의 치료환경을 제공한 성공적인 모델로 평가됐다.

이런 사례는 타지자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포항시 공무원들이 직접 운영해 수산업 종사자들에게 도움을 준 ‘드라이브 스루 횟집’, 차 1대당 10분 정도 방역을 하며 순환하는 방식의 ‘울산 방역정류장’ 등도 시민과 지자체가 합심해 성공한 마케팅이자 소통의 장이었다.

앞으로 도래할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이런 식의 소통과 화합을 기초로 한 희망적인 청사진이 필요하다. 이기주의를 내세워 자기 눈앞의 이익만 챙기려 든다면 결국은 모두가 파멸의 길로 향해 갈 것이다.

우리의 역사는 질기고도 질긴 민초들의 끈질긴 항쟁의 역사이자, 애달픈 생존의 역사였다. 그 역사를 지켜낸 아무개와 아무개. 우리는 그 아무개의 후손들이다. 비록 바이러스로 인해 생존이 위협받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하나에서 하나로 연결된 뿌리의 힘을 믿는다.

을미년 의병이었던 자의 자식들은 지금 무얼 하고 있느냐고? 필자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소통과 화합의 뿌리에서 피워 올린 푸르고 싱그러운 역사 속을 여전히 걸어가고 있다고.



임경성 기자 ds5ykc@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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