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것이 좋다고?

발행일 2020-11-30 14:46:52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천영애

시인

진실스러움이라는 말이 있다. 얼핏 들으면 진실과 비슷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진실이 아닌데 진실처럼 느껴지는 말이다. 일종의 거짓된 말과 행위를 가리킨다.

사회가 점점 복잡해지는 것처럼 말도 점점 복잡해져서 얼핏 들으면 진실인지 거짓인지 헷갈리는 말들이 많다. 거기에다 명료하게 진실과 거짓을 분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의 성향 덕분에 이 진실스러움은 진실의 가면을 쓰고 있을 때가 대부분이다.

우리는 자라면서 논리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를 하는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논리적이고 비판적인 성향의 사람들은 따지기를 좋아한다는 억울한 소리를 들어야 했다. 명확하게 의사를 밝히지 않고 에둘러서 발언하는 외교적 언사처럼 두리뭉실한 말을 선호하는 사람이 많다. 모든 일상생활에서 자기 의사를 따박따박 밝히는 것은, 앞에서 ‘따박따박’이라는 말을 쓴 것처럼 대부분 부정적으로 읽힌다. 당돌하다라거나, 되바라졌다라는 말로 이런 성향의 사람들을 표현하는데 세상 모든 사람이 모두 두리뭉실한 말만 한다면 정확한 대화조차도 불가능해진다. 해석의 여지가 많기 때문에 각자 자기 입맛에 맞게 해석할 것이고, 따라서 그 말을 두고 설왕설래 또 다른 말들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나는 이 진실스러움의 가면을 쓰고 있는 몇몇 사람들을 알고 있는데 이들의 특징은 말이나 글의 논리성이 결여돼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기 생각대로 말을 하지만 그 말을 뒷받침할 정확한 사실보다는 자기 생각을 주장만 하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나 그들이 타인에 대해 좋지 않은 말을 할 때는 그 폐해가 심각하다. 사실확인이나 논리도 없이 그냥 자기 주장을 늘어놓는데 역시 논리적이고 비판적인 사유가 부족한 사람들은 그 말을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스의 소피스트들은 거리에서 현학적인 말로 연설을 하며 대중들을 속였다. 그들의 현란한 말재주에 대중들은 속기 마련이고, 그들이 사회를 혼란으로 몰아가기도 했다. 소피스트들의 현학적인 말을 궤변이라고 하는데, 궤변이란 상대편을 혼란스럽게 하거나 감정을 격앙시켜 거짓을 참인 것처럼 몰아가는 것을 말하며 이런 자들을 궤변론자라고 하기도 한다. 이들의 특징은 자기가 목표로 하는 지점이 반드시 있다는 것이다. 요즘 애들 말로 하면 ‘답정너’이다. 이미 답을 정해놓고 말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말이 귀에 들어올리도 없으며, 자기와 다른 생각도 전혀 받아 들이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는 이런 궤변론자들이 의외로 많으며, 귀 막고 눈 막은 답정너들도 많다. 쇠귀에 경 읽기인 셈이다.

그런데 이런 자들이 불화를 일으키면 대부분의 사람은 좋은 것이 좋다고 입조차 막으려 한다. 좋은 것이 좋다고? 좋은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 옳은 것이 좋은 것이다. 평소에 좋은 것이 좋다는 식으로 공자 행세를 하는 사람들은 타인의 피해에 대해서는 너그러운 태도를 취하지만 자신이 피해자가 되면 더 날카로운 날을 세운다. 그때는 좋은 것이 좋은 것이 되지 못한다. 그렇다면 왜 타인의 피해에 대해서는 눈을 감는가? 분쟁을 싫어하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 탓이다. 분쟁을 피하는 사람은 잠깐은 너그러운 태도로 존중을 받을 수 있지만 그 태도가 지속되면 아무도 그 사람을 신뢰하지 않게 된다. 그 사람에게서 나올 답은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평소에 옳은 것이 좋은 것이라는 태도를 가지는 사람은 위급한 일이 생기면 찾는 사람이 많아진다. 옳은 답을 구하려 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 궤변론자들이 많은 것은 이 좋은 것이 좋다는 태도가 한 몫을 한다고 생각한다. 논리적이고 비판적인 태도로 크고 작은 일에 잘잘못을 가린다면 궤변론자들이 대중을 현혹할 일은 줄어든다. 물론 하나하나 전부 옳고 그름을 가리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꼭 가려야 하는 일조차 좋은 것이 좋다고 넘어가면 그 일은 언젠가는 반드시 썩은 무덤이 돼 스스로를 무너지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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