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의 역겨움 논쟁, 이젠 역겹다

발행일 2020-12-01 16:16:12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박운석
박운석

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

정치권에 난데없는 ‘역겨움’ 논쟁이 일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일반인들이 텔레비전을 틀어 놓고 추미애 장관 모습을 보면 너무너무 역겨워하는 게 일반적 현상”이라고 하자 더불어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이 맞받아쳤다. “국민의힘의 연이은 ‘막말 대잔치’를 TV 속에서 보시는 것이 국민 여러분께는 더 역겨울 것”이라고 한 것이다.

막말이야 정치권에서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다만, 갈수록 수위가 높아지고 험악해지고 있어 보기에도 안쓰러울 정도다. “고삐 풀린 미친 말”에 “고삐 풀린 미친 막말”로 대응하고 “지라시 만들 때 버릇”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이쯤이면 이런 ‘막말 대잔치’를 봐야만 하는 국민들의 역겨움이 더하지 않겠는가. 역겨운 논쟁에 품격은 실종되고 말았다. 말의 수준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사기’의 저자인 사마천은 말에는 네 가지 종류가 있다고 했다. 모언(貌言)과 지언(至言), 고언(苦言), 감언(甘言)이다. ‘모언’은 화려한 반면 실속이 없는 말인 반면 ‘지언’은 속이 꽉 찬 진실된 말이다. ‘고언’은 듣기에는 거북한 직언이지만 약이 되는 말을 의미하며 ‘감언’은 듣기에는 편하지만 그 말을 듣는 사람을 끝내 병들게 하는 말이라고 했다.

지금 감언보다 더 심각한 말들이 넘쳐나고 있다. 심지어는 절대로 해서는 안될 말까지 스스럼없이 하는 바람에 화를 자초하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 당나라 시대 때 풍도라는 재상이 있었다. 정치적 혼란기인 당나라 말부터 다섯 왕조 동안 여덟 개의 성을 가진 11명의 임금을 섬기며 벼슬을 할 정도로 처세의 달인이었다. 그의 처세관은 다음의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이요, 혀는 몸을 베는 칼이로다.’ 입이 화근이니 말을 아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그는 덧붙인다. ‘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감추면, 가는 곳마다 몸이 편안하리라.’

‘혀 아래 도끼 들었다’는 속담과 뜻이 통한다. 내가 휘두르는 혀 아래의 도끼는 결국은 나에게로 향한다. 말의 품격 저자 이기주는 그의 책에서 ‘말은 나름의 귀소본능을 지닌다’고 했다. 언어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태어난 곳으로 되돌아가려는 무의식적인 본능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그의 말이다. “사람의 입에서 태어난 말은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냥 흩어지지 않는다. 돌고 돌아 어느새 말을 내뱉은 사람의 귀와 몸으로 다시 스며든다.” 새겨 보면 무서운 말이다.

막말을 막말로 맞받아치다보니 수위는 갈수록 높아만 간다. 미국 오바마 전 대통령 부인 ‘미셸 오바마(Michelle Obama)’가 2016년 9월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한 말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당시 공화당 후보였던 트럼프(현 미국대통령)가 자신들을 무지막지하게 공격하자 했던 말이다. “그들은 저급하게 가도, 우리는 품위 있게 갑시다(When they go low, We go high).”

저급한 말에 대응해서 품위 있게 간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막말을 주고받는 것은 결국 똑같은 말그릇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말그릇의 저자 김윤나는 “당신의 말에 당신의 그릇이 보인다”고 했다. 그는 “사람들은 저마다 말을 담는 그릇을 하나씩 지니고 살아간다. 그런데 그 말그릇의 상태에 따라 말의 수준과 관계의 깊이가 천차만별로 달라진다”고 한다. ‘말솜씨’에만 집중하는 사람들은 이목을 끌기 위한 말하기를 사용하지만, ‘말그릇이 단단한 사람들’은 소통하는 말하기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막말을 하는 것도 그렇고 막말로 대응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소통은 아예 염두에 두지 않겠다는 뜻 아닌가.

콘서트장의 음악이나 농악의 꽹과리, 북소리는 엄청난 고음이다. 그럼에도 귀를 타고 들어온 소리는 온 몸으로 스며든다. 소리의 파장이 온 몸을 두드려도 즐겁다. 그렇지만 소음은 다르다. 높지는 않더라도 귀를 후벼 파는 불편함만 있을 뿐이다. 정치인들이야 때론 의도적으로 막말을 내뱉기는 하지만 나의 말이 국민들의 귀를 아프게 한다는 사실은 왜 외면하나.

말은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오지만 천 사람의 귀로 들어간다고 했다. 서로를 향해 “막말이 역겹다”고만 외쳐댈 뿐 천 명, 만 명 국민들의 역겨움은 왜 살피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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