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우

논설위원 겸 특집부장



코스피 지수가 역대 최고치 기록을 잇달아 갈아치우는 등 주식시장이 지난달부터 상승세를 타는 모습이다. 그러나 이를 보는 시각에는 다소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코로나 사태 이후 실물경제가 여전히 맥을 못 추고 있다는 점에서 일시적 현상으로 보는 평가가 있는 반면, 내년에 펼쳐질 경기회복 전망이 선반영되고 있다는 긍정적 평가도 있다.

부동산시장에서는 정부가 지난달 19일 대구 수성구를 비롯해 전국 몇몇 지역을 조정대상지역으로 추가 지정했다. 현 정부는 치솟는 집값을 잡기 위해 그동안 크고 작은 걸 합쳐 모두 스무 차례가 넘는 부동산정책을 내놨지만, 시장은 여전히 정부 의도와는 다르게 제멋대로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근래 자주 인용되는 표현 중에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서양 속담이 있다. 문제점이나 중요한 요소가 세부 사항 속에 숨어 있음을 강조할 때 흔히 쓰이는데, 요즘 정부의 정책을 보면서 이 말을 종종 떠올리게 된다. 이번에 국토부의 조정대상지역 지정을 두고 수성구에서는 여기저기서 불만의 소리가 나온다고 한다.

수성구는 부동산시장에서는 이미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핫플레이스다. 2017년 9월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된 데 이어 이번에 조정대상지역에 지정되면서 수성구는 사실상 겹규제를 받게 됐다.

이걸로도 불만이 적잖을 텐데, 문제는 수성구 전역을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한 탓에 집값 급등과는 아무 상관 없는 동네까지 각종 규제를 일괄적으로 적용받게 된 것이다. 주민들은 ‘정부에서 현장 상황을 제대로 꼼꼼하게 파악하지 않고 정책을 시행한 탓에 주민들만 애꿎게 피해를 보게 됐다’는 불만이다. 게다가 수성구 규제 발표가 있자 포항, 구미, 경산 등지에서는 풍선효과도 나타나고 있다는 게 부동산업계 관계자들의 말이다.

부동산시장과는 결이 좀 다르지만, 최근 주식시장의 상승세를 보면서 마냥 웃을 수 없는 데는 이유가 여럿 있다. 증권가에서는 미국 대선 리스크 해소와 코로나 백신 개발 기대감을 상승장의 주요인으로 설명하면서, 또 같은 이유로 내년 시장도 긍정적 전망을 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실물경제 상황은 사정이 전혀 다르다.

한국갤럽이 거리두기 시행 초기였던 4월 초에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 이후 가계소득이 줄었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54%가 ‘그렇다’고 답했고, 또 이들의 직업은 자영업자가 90%, 기능·노무·서비스업이 58%, 무직·은퇴자가 53%로 나타났다.

소득 감소로 어려워진 가구들이 어떻게 살림을 꾸려가는지 짐작해 볼 수 있는 통계도 있다. 한국은행의 3분기 말 통계를 보면 가계신용 잔액이 1천682조1천억 원으로, 2002년 통계 작성 이래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특히 신용대출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기타대출이 이 기간 22조1천억 원 늘어난 695조2천억 원으로 집계됐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이에 대해 ‘3분기에는 매매·전세 관련 주택자금 수요도 많았지만, 주식자금 수요에다 생활자금 수요까지 더해져 기타대출이 역대 최대 폭으로 증가했다’고 배경을 분석한다. 더 걱정스러운 점은 최근 국내 코로나19 상황이 다시 악화하는 조짐이고, 장기화 우려마저 나온다는 사실이다.

최근 들어 하루 확진자 수가 정점이었던 3, 4월과 비슷하게 400~500명대를 연일 기록하면서 전국적으로 거리두기를 다시 강화하고 있고, 또 백신 개발 소식이 들리긴 하지만 상용화 시기는 여전히 불확실해 불안감이 계속되는 상황이다. 이렇다면 서민들이 살림살이를 지금보다 더 졸라매야 하는 일이 언제든 생길 수 있고, 더 나빠지면 이미 쓴 대출금에 더해 빚을 또 내야 하는 상황까지도 없으리라 할 수 없다.

현 정부는 서민 가계의 주름을 펴주기 위해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이른바 소득주도성장을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예상치 못했던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지금 이 소득주도성장정책은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 빠진 듯하고, 그 사이 서민들의 주름은 더 깊어지고 있다.

정책이란 아무리 그 명분과 방향성이 맞고 옳더라도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아니 한 만 못할 것이다. 뭐든지 하려면 제대로 하든가, 그러지 못할 거면 다른 길을 찾아가야 하는 것 역시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박준우 기자 pj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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