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릴 때 들었던 아버지의 망치 소리/손수 지은 뼈대 위에 그 간 세월 묻어두고/남몰래/들추어보는/감꽃 피는 그리움//고향 길 산자락에 하늘 한 채 들이셨다/백년 집은 다 살았고 천 년 집을 찾아왔네로/춤사위/장단에 맞춰/저승길을 물으시고//지나는 바람결에 그 목소리 들리려나/기러기 하늘 물고 낮게 저어 오는데/지금은/외출 중인지/빗장 굳게 거셨다

「대구시조 제24호」 (2020, 그루)

김봉근 시인은 경북 김천 출생으로 1995년 ‘시조문학’추천완료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시간의 흔적’이 있다.

우리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아들은 아버지를, 딸은 어머니를 점점 닮아가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중에 아들은 아버지와 같지 않으려고 하고, 딸 역시 어머니와 같지 않으려고 하는 마음이 있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부정하려고 한다기보다 더 잘 살아보아야 하겠다는 열망 때문일 것이다. 누구든지 아버지와 어머니의 그늘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오랜 세월 동안 양육 받았으므로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아버지의 집’에서 화자는 자신에게 특별했던 아버지를 그리고 있다. 애틋한 사부곡이다. 어릴 때 들었던 아버지의 망치 소리를 늘 기억하고 있다. 손수 지은 뼈대 위에 그 간 세월 묻어두고 남몰래 들추어보는 감꽃 피는 그리움은 화자에게는 아름다운 추억이다. 추억에는 힘이 있다. 추억은 한 사람의 삶을 추동하는 힘이 될 수 있어서 좋은 추억은 활력으로 작동한다. 아버지의 웃음소리와 기침소리까지도 추억의 장면으로 뇌리에 남아 있어서 애틋함을 더하게 된다.

그러던 아버지는 어느 날 고향 길 산자락에 하늘 한 채 들이셨다. 그날 백년 집은 다 살았고 천 년 집을 찾아왔네, 라면서 춤사위 장단에 맞춰 저승길을 물으셨다. 화자는 못내 그날을 잊지 못하고 있다. 창을 잘 하시던 아버지가 가족 납골당이 완성되던 날 납골당 문 앞에 앉아서 어깨춤을 추며 창을 하셨던 것이다. 그 몇 해 뒤에 세상을 떠나신 아버지. 그리하여 지나는 바람결에 그 목소리 들릴까, 하고 그리워하면서 기러기 하늘 물고 낮게 저어 오는 날 지금은 외출 중인지 빗장 굳게 거셨다, 라면서 다시는 뵐 수 없는 아버지를 애틋하게 그리워하고 있다.

회자정리라 했지만 이별은 언제나 아픈 것이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한 생각은 간절해진다. 철이 바뀌어 스산한 바람이 부는 때이면 더욱 그렇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겨울의 기나긴 밤 어머님하고 둘이 앉아 옛 이야기 들어라 나는 어쩌면 생겨나와 이 이야기 듣는가 묻지도 말아라 내일 날에 내가 부모 되어서 알아보리라, 라는 소월의 시가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어떻게 생겨났는지 모를 일이지만 다함없는 하늘의 은총 덕분인 것은 분명하다.

그는 이국땅 ‘그랜드캐니언’을 노래하면서 생명의 연원을 상고하고 있다. 어느 일면 사부곡과 맥을 같이 하는 일이다. 누가 그 무엇을 억겁이라 불렀는가 태초에 먼지 하나 이 땅의 시작이거늘, 이라고 외치며 장엄한 광야의 바람 그 끝을 묻고 있다. 또한 지평선의 아지랑이를 보면서 세상 끝이 아님을 자각하고 한순간 발 아래로 아찔한 현기증이 일어나 실핏줄 가는 길 따라 온몸이 저려오는 것을 느낀다. 물살에 닳은 등줄이 층층이 쌓여가고 시원의 강물 따라 미리내로 젖어들 때 깊은 저 강물 끝에 열리는 하늘 길 땅길 만 리를 이윽히 주시한다.

‘아버지의 집’을 생각하던 화자가 시공을 훌쩍 뛰어넘어 그랜드캐니언과 마주했다. 그러면서 생명의 근원을 떠올렸다. 광대무변의 우주 속에서 인간의 한계를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에 삶은 더욱 소중하지 않을까? 이정환(시조 시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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