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하디흔한 잡초라고 나를 불러도 좋다/씨 뿌리지 않아도 가꾸지 않아도/허허한 땅들을 찾아 뿌리 잡고 살아왔다//자세히 들여다보라 나도 분명 꽃이다/너덜겅에 하얀 꽃수를 나 말고 누가 놓을까/들판과 산자락에 허연 별빛을 그 누가 뿌릴까//주머니 가득 채워 누리는 사람보다/못나고 부족해도 땀 흘리며 살으란다/나처럼 환한 웃음꽃을 피우며 살으란다

「대구시조 제24호」 (2020, 그루)

예병태 시인은 경북 청도 출생으로 2006년 ‘문예춘추’신인상 시조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곡예’, ‘바람의 얼굴’이 있다.

잡초는 어학사전에서 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나서 자라는 여러 가지 풀이라고 말하고 있다. 어떤 측면에서 생각하면 가꾸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나서 잘 자라니 칭찬받을 만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든다. 정성껏 가꾸어도 잘 자라지 못하는 식물도 있지 않는가? 그에 비하면 잡초는 자생력이 대단한 것이다. 그렇기에 잡초를 잡초라고만 단순히 명명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흔히 잡초 같은 인생, 잡초 같은 작품이니 하고 폄하하지만 잡초도 생태계에서 꼭 필요하다. 길을 가다 차이는 돌멩이 하나도 거저 된 것이 없는 세상이기에 우리는 ‘개망초의 귀띔’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흔하디흔한 잡초라고 나를 불러도 좋다, 라면서 씨 뿌리지 않아도 가꾸지 않아도 허허한 땅들을 찾아 뿌리 잡고 살아왔다, 라고 당당히 말하고 있다. 그러한 삶의 태도와 긍지는 높이 살만하다. 화자는 또 자세히 들여다보라 나도 분명 꽃이다, 라고 소리를 높여서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킨다. 그 까닭은 너덜겅에 하얀 꽃수를 나 말고 누가 놓을까와 들판과 산자락에 허연 별빛을 그 누가 뿌릴까, 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그래서 화자는 주머니 가득 채워 누리는 사람보다 못나고 부족해도 땀 흘리며 살겠다고 말한다. 나처럼 환한 웃음꽃을 피우며 살겠다는 말은 의지의 표현이다.

한때 시조문단에 잡초론이 있었다. 등단 지지가 부족하던 시절에 서울에서 계간으로 발간되던 시조전문지를 통해 나온 이들을 겨냥한 논리였다. 신인을 양산한다는 점에서 그러한 이야기가 능히 나올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당사자들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문제 제기였다. 잡초론을 주창한 이도 시조문학의 앞날을 걱정해서 그렇겠지만 들판에 여러 풀들이 자유롭게 자라고 있듯이 새로운 신인은 많이 나올수록 좋은 것이다. 한 무대에서 무한 경쟁을 통해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시조문단은 2000년대 이후로 역량 있는 신인들이 다수 배출 돼 전성기를 이루는데 견인차를 하고 있다. 좋은 시조 작품들이 이제 이들을 통해서 많이 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잡초 없는 들판은 죽은 들판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터다.

그는 ‘생의 꽃’이라는 시조에서 우리에게 반문한다. 풀꽃이 좋은 땅을 골라서 꽃 피우더냐, 나무가 평평한 땅 찾아서 자라더냐, 라면서 어디든 뿌리내린 곳에 목숨 걸고 사는 것이 진정한 삶인 것을 노래하고 있다. 생명 얻어 세상 빛을 본 것만도 기적인데 준령을 넘기도 하고 격랑을 두려워하지 않음을 힘주어 말한다. 모질게 살아남아서 꽃피워야 사람임을 만천하에 공포한다.

예병태 시인은 이렇듯 진솔한 시인이다. 순리를 사랑하면서 자연과 더불어 사는 길이 얼마나 흡족하고 기쁜 일인지 몸으로 실천하며 시업의 길을 걷고 있다. 잡초를 잡초라고 여기지 않는 넉넉한 품안으로 온갖 풀꽃들이 그들만의 향기를 풍성히 전해줄 것만 같다. 아마 개망초꽃이 맨 앞장을 설 것이다. 이정환(시조 시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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