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일반

교육기부 공모전 최우수 김순남…특수교육실무가 세상 나눔으로 이어지다

북동중 김순남 특수교육실무원
2013년 45세에 특수교육실무원이라는 생소한 일을 처음 시작하면서 두려움도 있었지만 어떤 일인지에 대한 호기심도 가득했다.

그 일을 지금까지 하다 보니 힘든 일도 있었지만 해가 거듭될수록 아이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예쁜 모습으로 제 가슴 속에 남아 있다.

내가 아이들에게 다가가서 주는 사랑보다 더 큰 보람과 행복을 가져다주기에 이 아이들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내가 힘들어 보이는 날엔 색종이를 접어 가위로 잘라 손에 쥐어주고 가던 남*이~, 머리가 아프다고 하니 버물리를 자기 손에 발라서 내 이마에 발라주던 정*이~, 예쁘게 머리를 땋아서 묶어주는 걸 좋아해서 늘 머리 방울을 챙겨오던 지*~ 하루 종일 윙크와 하트를 날려주는 윤*~

그 아이들과 한 몸이 되어 1년을 지내다 보면 눈빛 하나 행동하나에 어떤 의미가 있음도 다 알 수 있다.

그래서 해마다 3월이 되면 어떤 아이를 만나게 될지 늘 설렘으로 시작했다.

이런 특수반 아이들의 교육을 지원하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나누고 싶어서 주말에 급식 봉사를 시작했다.

달성공원의 급식 봉사를 통해 매번 식사하러 오시는 어르신과 즐겁게 급식 준비를 하는 봉사자들과 새로운 인연이 생겼다.

그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맡은 분야에서 파 다듬고 무 깎아서 썰고 한우 소고기 듬뿍 넣어 커다란 솥에 푹 끓여 드렸다.

어르신들은 고맙다며 뜨끈뜨끈한 국 한 그릇에 따뜻한 밥 한 그릇 말아 드시며 잘 먹었다고 인사를 하시며 돌아가신다.

그러면 흘린 땀방울과 아픈 팔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내 가슴이 뿌듯해지고 따뜻해짐을 느끼곤 했다.

그럼 더 신나서 그 많은 설거지를 순식간에 해결해버린다.

올해는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간단한 대체 급식으로 바뀌면서 봉사자들이 많이 필요치 않아 자주 가질 못해 어르신들의 안부도 궁금해졌다.

급식 봉사를 하면서 다른 봉사를 찾던 중에 1365자원봉사포털사이트를 통해 시민 구조 봉사단을 만났다.

2017년부터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는 시민 구조봉사단은 여러 분야의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다.

심폐소생술 교육을 해마다 학교에서 배우긴 했지만 우리 봉사단은 시민을 구조하기 위해 단장님은 회원들에게 심폐소생술교육과 응급처치 교육을 해주시며 전문적인 봉사자의 자질을 갖추게 하셨다.

그래서 나도 자격증을 취득하고 철인3종경기, 대구국제마라톤대회, 수성페스티벌, 신천물놀이장 등에서 안전요원으로 봉사활동을 하면서 다친 선수들이나 응급환자를 처치해줬다.

심폐소생술 교육의 중요성을 더 많이 느끼는 봉사활동들이었다.

올해 천을산에서 신년 해맞이 행사를 하는데 둘째 딸과 함께 안전요원으로 봉사에 참여했을 때를 잊을 수가 없다.

딸과 함께 한 조가 되어 구급함을 매고 안전 근무를 하던 중 구름 속에서 막 해가 떠오르려고 할 시점이었다.

새벽 찬 공기에 기다리고 기다리던 해가 보이기 시작했고 많은 사람들의 ‘와~~’하는 함성 소리와 함께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119~~”, “119~~” “여기요~~” “여기요~~” 하는 다급한 소리를 들려왔다.

사람들의 함성 속에서도 우린 소리 나는 쪽을 보았고, 우리 조 가까운 곳에서 우리를 119라고 부르며 어서 오라고 바쁜 손짓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순간 가슴이 요동쳤고 놀란 가슴을 가라앉힐 틈도 없이 우리조 세 사람은 그쪽을 향해 급히 달려갔다.

해맞이 인파로 발 디딜 틈 없는 곳을 “환자 발생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좀 지나가겠습니다.” 소리치며 사람들을 헤치고 환자가 있는 곳으로 뛰었다.

도착한 그곳에는 여학생 한 명이 쓰러져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는 먼저 환자를 살펴보니 호흡은 있었지만 의식이 없었다.

119에 바로 신고를 하고 다른 회원들과 함께 환자를 들것에 실어 산 아래로 뛰어 내려가 119에 인계를 해드렸다.

다음날 그 환자가 무사하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내가 하고 있는 봉사가 얼마나 중요한 일이고 꼭 필요한 봉사인지 다시 한번 알게 되었다.

함께 봉사에 참여했던 딸이 “엄마, 늘 봉사하러 가시더니 이런 봉사였어요?”, “엄마 봉사단 사람들 대단한데요?” 하면서 딸도 그 상황에 놀랐을 텐데 존경한다고 엄지를 치켜세워 주었다.

딸과 함께한 봉사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면 좋았겠지만, 그날 환자가 발생한 현장에서

엄마가 몸담고 있는 봉사단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자랑스럽다고 칭찬해주니 봉사를 다니길 잘했다는 생각과 왠지 모를 가슴 뿌듯함으로 남아 있다.

심폐소생술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회원들과 두류공원 행사에서 시범 공연을 한 적도 있었다.

며칠 전부터 모여 연습을 하고 무대에 올라 시범 공연을 하는 모습을 본 가족들과 주변 지인들이 멋지고 의미 있는 활동을 한다고 해서 우리 봉사단이 더 자랑스러웠다.

각종 행사에 안전 근무를 참여할 수 있는 자신감도, 누군가의 생명을 지켜준다는 것도 심폐소생술과 응급처치를 배웠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내 주변에 누군가가 나의 도움이 필요한 위급한 상황이면 언제든 도와줄 준비가 되어있어서 행복했다.

특수교육실무원 일을 하다 보니 지나가는 장애인도 그냥 대하지 않게 되었다.

불편함이 없는지 도움이 필요하지는 않은지 관심 있게 살피게 되었다.

우리 봉사단도 작년부터 장애인과 함께하는 봉사가 있었다.

대구시 그룹홈 지원센터에서 그룹홈마다 거주하는 생활인들에게 심폐소생술교육과 응급처치 교육을 실시했다.

장애인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고, 우리들에게 필요한 교육은 그들에게도 필요한 교육인 것은 분명했다.

교육생 인원수에 맞게 애니를 가지고 가서 1대1로 직접 가슴압박을 체험하면서 응급상황 발생 시 신고 요령이나 처치법을 체험하는 봉사활동을 했다.

심폐소생술도 두 번째 해보니 처음보다 능숙해지고 “하나 둘 셋 ~~~스물아홉 서른” 구령도 큰소리로 외치며 자세도 제법 잘 잡으며 재미있어하며 열심히 가슴압박을 했다.

생활인들의 적극적인 모습과 반갑게 맞아주어 퇴근 후에 바쁘게 달려갔지만 피곤함은 싹 사라졌다.

교육 중 재미있는 일도 많았다. 쓰러진 사람에게 심폐소생술은 언제까지 해야 하나요?라는 봉사단 단장님 질문에 “119아저씨 두~~사람 올 때까지~” 꼭 두~~사람이라고 끝까지 강조하며 열심히 대답하는 생활인이 있어 우리에게 한바탕 웃음을 주었다.

교육을 마치고 나면 우리가 가지고 간 교육 장비들을 함께 정리를 도와주시기도 하고, 무거운 짐은 바깥까지 들어주기도 하는 모습에 훈훈함을 느꼈다.

그러면서 “또 만나면 좋겠어요” 하며 그룹홈 생활인들이 따라 나와 인사를 해주는 분들도 있었다.

적극적으로 교육에 참여하는 그들을 보면서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교육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램이었다.

2020년 2월부터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봉사활동이 시작되었다.

코로나19 감염증으로 확진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발생하여 대구가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되었다.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없을 정도로 대구는 거의 죽음의 도시를 방불케 했다.

거리에는 사람들의 인적이 드물었고, 대중교통도 타기 힘들어졌고, 가게 문도 거의 닫고 운영을 하지 않을 때였다.

그때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에서 대구지역에 많은 방역물품과 구호 물품들이 내려왔다.

확진자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그 물품들을 전달할 인력이 부족했다.

평상시에는 봉사 활동하는 봉사자가 많았지만 코로나19 감염증이 확산되는 시기에는 인원이 없었다.

봉사단 회원들 중에서도 선뜻 나서는 이가 없었다.

평상시 봉사를 열심히 하는 사람들 위주로 대구를 살리겠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뭉쳤다.

다시 일어서는 대구시민을 살리기 위해 힘을 모을 수밖에 없었다.

감염의 두려움 속에서도 #힘내자 대구 #힘내자 대한민국을 맘속으로 외치며 함께 했다.

학생들에게 필요한 마스크, 손소독제 등이 여러 차례 대구로 보내올 땐 대구시교육청, 경북도교육청으로 도착하는 구호 물품을 전달했다.

병원으로는 고생하는 의료진들을 위한 구호키트도 전달하고, 취약계층, 저소득층을 위한 물품들도 많이 전달했다.

복지관과 무료급식소도 거의 문을 닫아 무료급식이 시급한 장애인에게 도시락을 배달한 적이 있었다.

그러다 만난 한 분은 척수장애인으로 침대에 누워 생활하시는 분이셨다. 그럼에도 우리가 방문하니 밝게 맞아주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어주셨다.

척수장애로 불편해서 혼자서 움직임이 거의 안 되는데도 대학학위를 취득하기 위해 학업 중에 있는 학생이라고 했다.

그분을 위해 힘찬 응원의 메시지를 남기며 헤어졌고, 그날은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게 하는 하루였다.

1학기엔 휴업으로 학교를 못 나가는 시간이 있었다. 그래서 봉사활동에 전념할 수 있었고, 누구보다 우린 개인위생을 철저히 지키며 활동했지만 그래도 이러다 내가 코로나에 전염되면 어떡하나? 가족들에게 옮기면 어떡하나? 하는 마음에 불안한 나날이었다.

나는 가끔 한 번씩 생각해본다. 만약 내가 특수교육실무원을 하지 않았다면 봉사를 시작했을까?

그런 생각을 할 때면 혼자 미소가 지어진다.

학교에서 내가 매일 만나는 특수반 아이들을 지원하는 일을 하면서 새로운 가치관의 변화가 생겼다.

세상에는 나의 도움이 필요한 곳이 많다는 것을 알았고, 내 신체 건강함에 감사하며 세상에 사랑을 나눠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봉사를 통해 여러 가지 교육과 훈련을 끊임없이 배우며, 그것을 세상에 나눔으로 생명을 살리는 봉사활동에 동참할 수 있어서 스스로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앞으로도 나의 건강이 허락하는 한 열심히 배우고, 우리 특수반 아이들에게 나누고, 또 세상 사람들에게 나누는 멋진 삶을 살고 싶다.

김종윤 기자 kjyun@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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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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