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코영신)-송(送)코영(迎)신(新)

발행일 2020-12-27 15:23:31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정명희 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
정명희

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

2020년의 해가 저물어간다. 유난히 힘든 해였기에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정말이지 기나긴 터널 속을 걷기만 한 것 같다. 어두운 기억 속에서도 일전에 받은 디지털 연하장이 웃음을 준다. 2020년 0의 자리엔 마스크를 길이로 걸어 둬 ‘2/마스크/2/마스크’의 2020년을, 새해 2021이라는 숫자에서는 2021의 1의 숫자 대신에 백신 주사기를 넣어 번뜩이는 희망을 심어두지 않았겠는가. 손으로 한 자 한 자 정성들여 써서 보내는 손 편지만큼이나 의미 있는 연하장이라서 자꾸 열어보곤 한다. 아무런 근심 걱정도 없이 마주하고 웃으며 손 맞잡을 수 있는 날이 찾아온다면 그 얼마나 좋으랴.

요즘엔 엽서나 연하장을 주고받는 사람이 거의 없다시피 하지만, 인터넷이 등장하기 전에는 새해만 다가오면 연하장을 준비해 어른들께 보내고 친구 지인들과 주고받았다. 한때는 미리 주문해 연하장을 돌리는 재미를 느끼며 한 해를 마무리하기도 했었다. 그런 연하장에 주로 등장하는 문구가 ‘근하신년’, ‘송구영신’이지 않던가. 한학을 오래 독학했던 지인은 송구영신이라는 글자가 나오면 유례를 읊곤 한다. 송구영신은 원래 송고영신(送故迎新)에서 유래된 말이라고 풀이했다. ‘송고영신’은 구관을 보내고 신관을 맞이한다는 뜻이라면서 여기서 말하는 구관은 옛 관리를, 신관은 새 관리를 가리킨다고 덧붙였다. 옛 관리를 보내고 새 관리를 맞이한다는 말이 이후에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한다는 뜻으로 널리 쓰이고 있는 것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새 달력을 받으면 그 앞 장에도 큼지막하게 근하신년이라고 적혀 있곤 했다. 떨리는 손으로 달력 첫 장을 넘기면서 한 해의 첫 달, 좋은 기운을 기대하며 새날을 맞이하기를 기원하기도 했다.

올해에도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은혜를 입은 분께 정성 들여 연하장을 써본다. 근하신년(謹賀新年)이라고. 삼가 새해를 축하한다는 뜻이지 않은가. 겸손하고 조심하는 마음으로 정중하게. 새해를 축하한다는 의미를 담은 새해 인사를 마음을 담아 손으로 꾹꾹 눌러 써서 차곡차곡 책상머리에 둔다. 코로나로 인해 대면 업무가 안 되다 보니 택배니, 우편이니 등등의 배달로 과도한 업무로 허덕일 우편을 담당하는 분들의 노고를 생각하니 우체통에 넣기가 망설여져서. 아마도 올해엔 결국 넣지 못할 것만 같아 마음으로 보내야 할 것 같다.

코로나로 힘들었던 올 한 해를 보내면서는 제발 코로나를 저 멀리 보내고 싶은 마음에 송구영신(送舊迎新) 대신에 송(送)코영(迎)신(新)으로 바꿔 인사하고 싶다는 환자도 있었다. 어른 이 팔순을 맞이하게 돼서 그냥 지나가기가 섭섭했다고 한다. 잠깐 집에 모셔 식사만 했는데 그만 온 식구가 코로나19에 차례로 감염 돼 병실 신세를 져야만 했다. 저녁 식탁에 앉아있었던 시간이 도대체 얼마나 됐다고 그새를 못 참고서 코로나란 그 사악한 녀석은 부모 자식의 정을 시샘하면서 가정의 평화를 깨뜨려버리는가. 어른에 대한 도리를 잠시 다한다는 것이 그만 연로하신 부모님께 고통을 안겨드린 결과가 됐다며 눈물 짓는 이를 보면서 마음이 아팠던 경자년(庚子年) 이었다. 지나간 시간은 아쉬움과 후회가 아니라 진정한 반성과 깨달음으로, 작고 소소한 일상에서도 거리 두기 꼭 하면서도 고마운 사람에게 보내는 감사와 사랑으로 맞는 마무리가 되면 좋으리라.

어찌하든 거리 두기 마스크 쓰기 손 씻기 잘해 코로나19를 어서어서 쫓아 보내고 다가오는 신축년(辛丑年) 새해를 잘 맞이할 수 있기를, 그리해 건강한 모습으로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모두 송구영신, 아니 송(送)코영(迎)신(新)하기를, 세상의 모든 신께 두 손 모아 기원한다.

밝아오는 새해에는 무엇보다 우리 삶이 좀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 더 많은 사람이 웃음 지을 수 있고, 서로를 향한 온정으로 따스함을 나누는 것이 허락되고, 서로를 인정하는 배려의 마음이 가득하기를 소망한다. 좀 어려운 일이 생기더라도 꿋꿋이 참아내고 인내하면서, 나와 남 모두에게 사랑으로 대하고, 또 언제나 희망을 품고서 소망을 이루기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노력할 수 있기를, 그리해 한 해를 잘 살아내고서 다시 끝마무리할 시점이 다가왔을 때 또다시 희망찬 새해를 준비하는 시간이 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잊지 못할 해가 넘어간다. 우리의 한 해, 지난한 시간을 굳건히 견딘 우리, 서로 위로를 건넬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본다. 한 해를 보내며, 또 새해를 맞으며 모두의 시간이 ‘행복’일 수 있기를. ​그대 걸어가는 길에 늘 희망과 보람이 가득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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