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봉 논설위원

헌정 사상 초유의 혼란이 막 내렸다. 무너진 법치를 법원이 바로잡았다. 검찰개혁은 동력을 상실했다. 윤석열 찍어내기는 실패했다. 힘으로,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밀어붙인 폭주의 결과다. 조국이 무너뜨린 공정과 정의도 망가지긴 했지만 자리를 찾은 느낌이다. 법치는 가까스로 쓰레기통 신세를 면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법원 결정을 존중한다며 논평을 내놓았다. 국민의 불편과 혼란을 초래한 것을 사과했다. 뜨뜻미지근한 사과다. 여권은 검찰의 힘을 더 빼겠다고 악다구니처럼 덤빈다. 수사권 조정안을 개정해 검찰 수사 폐지를 추진하겠단다. ‘문빠’들의 역주행은 브레이크가 없다. 법원의 반란(?)은 사실상의 문 대통령 탄핵이나 다름없다는 정치권의 평가다.

2년 가까이 법원과 검찰 발 뉴스가 나라를 뒤흔들었다. 정상적인 국가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정치 탓이 크다. 근본은 대통령 탓이다.

‘코로나’와 ‘검찰개혁’은 올 한 해를 관통하는 말이다. 모든 것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다. 그 종착점엔 ‘정치’가 있다. 4류 정치가 모두 집어삼켰다. 대한민국의 경제적 성과까지 까먹었다.

-국정 판단 그르치면 나라 망칠 수 있어

성공 신화를 자랑하던 K 방역도 정치가 개입하면서 급전직하했다. 문재인 정부의 자화자찬은 조롱거리가 됐다. 전문가 조언을 외면한 한 박자 늦은 대응이 3차 대유행을 초래했다. K방역에 취한 사이 국민 가슴은 피멍이 든다. 대가는 혹독하다. 확진자는 하루 최고 1천200명을 넘어섰고 사망자는 20명을 오르내린다.

김해 신공항 백지화는 국민 여론을 둘로 갈라놓고 TK와 PK를 진흙탕에 몰아넣었다.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눈먼 정치인들이 벌인 짓이다. 가덕도 신공항과 월성 원전 폐지는 문 대통령 작품이나 진배없다.

경제성을 조작한 월성 원전 폐지와 울산시장 선거 공작, 유재수 비리 비호, 라임·옵티머스 펀드 사기 등은 정권의 아킬레스건이다. 어떻게 해서든 덮어야 했다. 검찰이 칼끝을 대통령 턱밑에 들이댔다. 그러자 수장인 검찰총장의 직무를 정지시키는 기막힌 수가 나왔다.

춘추전국시대 진(秦) 나라와 조(趙) 나라 사이의 장평대전(長平大戰)은 전국 판도를 바꾼 큰 전쟁이었다. 진나라는 장평 승리를 기반으로 천하를 통일했다. 패전국인 조나라는 결국 망했다. 이 전투에서 백기(白起)가 이끄는 진나라 군대는 3년에 걸친 치열한 전투 끝에 승리한다. 백기는 항복한 조나라 군사 40만 명을 생매장했다. 조나라 군왕과 조정은 백기의 반간계에 당했다. 병법 이론에는 밝았지만 전쟁 경험이 없는 백면서생을 대장군으로 임명한 것이 화근이 됐다. 결국 백전노장인 백기의 계책에 빠져 전쟁에 대패했다.

국왕이 판단을 그르치고 장수를 잘못 쓰면 나라까지 망할 수 있다는 묵직한 교훈을 던진다. 부동산 정책 실패와 세금 인상으로 국민은 뿔이 났다. 조국에 이어 추미애까지 나서 법치를 농단했다. 입만 떼면 촛불 정신을 말하는 이들이 정작 촛불 정신을 내팽개쳤다. 오만한 권력이 돼 조자룡 헌 칼 쓰듯 칼을 마구 휘둘렀다. 여당은 입법 독주로 함께 춤췄다. 야당은 눈뜬 장님이 됐다.

-새해엔 코로나에서 해방될 수 있기를

오만과 독선의 법치 파괴는 부메랑이 된다. 정권의 폭주는 제 발등 찍기나 다름없다. 공수처라는 괴물은 현 정권의 비수가 될 소지가 많다. 정권은 벌써 레임덕 조짐이다. 대통령 지지율은 현 정부 들어 최저다. 국민의짐이 된 야당은 가만히 있어도 점수를 따는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고, 민주당에는 민주가 없고, 정의당에는 정의가 없고, 국민의힘에는 힘이 없다’. 시중에 떠도는 우스개다. 플라톤은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국민들은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그래도 한 가지 소득은 있다. ‘싸가지 없는 진보’의 민낯을 봤다.

코로나19에 일상을 고스란히 저당 잡힌 채 경자년이 저문다. 나흘 뒤면 신축년 소띠 해다. 새해에도 마스크를 벗을 기약은 없다. 봄은 멀기만 하다. 방역도 백신도 다 놓쳤다. 그래도 내년엔 코로나에서 해방될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아듀 2020년.



홍석봉 기자 dghong@idaegu.com

저작권자 © 대구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