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형 성범죄 의혹으로 공석이 된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을 동시에 새로 뽑는 사상 초유의 보궐선거가 4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문재인 정부 5년 차에 치러지는 이번 보선은 내년 3월 대선의 전초전 성격을 띤다.

또 서울·부산 인구만 해도 약 1천300만 명에 달해 선거 규모가 가히 ‘미니 대선’ 급이다.

수도권 민심을 대표하는 서울 민심의 향방을 확인할 수 있어 여야가 모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더욱이 대구·경북 통합신공항과 경쟁구도를 형성할 가능성이 엿보이는 가덕도신공항 공약을 두고 부산 민심의 향배도 들여다 볼 수 있는 이번 보궐선거에 대해 알아본다.

▲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회의장 벽에 4월 7일 재보궐선거 D-104일 알림판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회의장 벽에 4월 7일 재보궐선거 D-104일 알림판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서울·부산시장 선거 결과에 따른 김종인 비대위원장 재신임 및 정권 창출 명운 갈릴 듯

여야는 서울·부산시의 수장을 새로 뽑는 4·7 재·보궐선거 체제 전환에 가속도를 내고 있다.

이번 선거에 더불어민주당은 문재인 정부의 막판 국정운영 동력이, 국민의힘은 선거 연패로 벼랑으로 내몰린 당의 운명이 걸려 있다.

민주당은 서울 부동산 문제에 대한 대책 마련과 부산 가덕도신공항 특별법 2월 임시국회 내 처리 등 선거준비 모드에 나서는 분위기다.

국민의힘도 당협 재정비에 이어 공천관리위원회 출범 및 첫 회의를 시작으로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 같은 상황 속에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지지율은 역전됐다.

만약 국민의힘이 이번 재·보궐 선거에서 승리한다면 정권 교체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다.

당 안팎에선 재·보선 승리 시 김종인 비대위원장 임기 연장 논의가 이뤄질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국민의힘이 이번 선거에서 2승을 하면 당의 안정적 관리와 대안 부재, 대선까지 남아있는 시간을 명분으로 김종인 체제를 2022년 대선까지 연장하자는 주장도 나올 수 있다는 분석이다.

반면 2016년 총선 이후 전국 단위 선거 4연패의 늪에 빠져 있는 보수 야권으로서는 2021년을 대반전의 해로 만들어내지 못하면 보수정당 간판을 아예 내려야 하는 최악의 상황으로 빠져들 수 있다.

통상 보궐선거는 투표율이 낮다. 결집력이 강한 여당이 동원 투표에 성공한다면 현재의 여론이 설사 야당에 유리해도 승리를 낙관할 수만은 없다.

재·보선이 끝난 후 전당대회를 치러 새로운 대표가 대선을 진두지휘한다는 게 국민의힘 로드맵이다.

주호영(대구 수성갑) 원내대표, 조경태·정진석 의원 등이 당 대표에 도전할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이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2패 혹은 1승1패를 하면 비대위 체제는 바로 해체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당도 사실상 해체 수순으로 접어들 것이란 관측이다.

2016년 총선을 시작으로 전국단위 선거에서 모두 졌는데 과연 대선을 기대해볼 수 있겠느냐는 비관론이 확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경우 야권에선 대선을 앞두고 각 정파와 잠룡들, 그리고 외곽 세력들 간 정계개편과 이합집산이 올해 이슈를 모을 것으로 보인다.

보수진영의 ‘반문재인 연대’가 출범할 수 있을지, 만약 출범하더라도 그 파괴력이 어느 정도일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민주당은 서울시장 수성에 실패하면 차기 대선 승리도 어려워지기 때문에 고심이 깊다.

민주당에선 대선 출마 1년 전 사퇴 규정에 따라 이낙연 대표가 다음달께 직에서 물러날 것이 확실시된다.

이 대표는 4월 재·보선 유세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각오다.

당 내부에선 대표직에서 물러난 이 대표가 중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을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이는 재·보선 결과가 이 대표 차기 대권 도전에도 영향을 미칠 것임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민주당이 서울을 내줄 경우 이낙연 대표 행보도 녹록하진 않을 전망이다.

다수의 선거 경험이 있는 한 국회의원 보좌관은 “민주당 단체장들의 성추행 문제, 부동산과 관련 세금 문제, 청와대의 탈원전 개입 여부, 검찰개혁 같은 집권세력 책임론으로 흐를 공산이 크다”면서도 “집권당으로서 민주당이 강력한 지역 현안 해결 의지를 보여주고 ‘한국판 뉴딜 정책’ 등으로 경제 회복에 올인해 어느 정도 성과를 낸다면 선거 분위기는 달라질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 부산 가덕도와 부산항 신항 일대 모습. 부산시는 김해신공항 대신 가덕신공항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 부산 가덕도와 부산항 신항 일대 모습. 부산시는 김해신공항 대신 가덕신공항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가덕도 신공항, 서울·부산 선거에 약 될까 독 될까

정권마다 뒤집힌 영남권 관문공항이 이번 4월 재·보선에서 또 이슈가 될 전망이다.

민주당은 ‘가덕도 신공항’ 카드를 꺼내 부산은 물론 서울에 거주하는 부산·울산·경남(부울경) 출신 유권자들의 표심을 자극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4년간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다가 정권 말에 접어들어 김해신공항 추진안의 사실상 백지화를 선언한 것을 두고 보궐선거뿐만 아니라 차기 대선까지 염두에 둔 전략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국회의 세종시 이전으로 선거 바로미터인 충청권 민심을 잡고 국민의힘의 지지 기반인 대구·경북(TK), 부울경(PK) 민심을 분열시켜 야당의 힘을 약화시키겠다는 전략이다. 즉 가덕도 신공항 추진을 통해 부산 민심을 되돌리겠다는 것.

민주당 구상대로 가덕도 신공항으로 부산시장 보선을 잡고 TK와 PK 보수진영이 분열된다면 이보다 완벽한 차기 대선 구도는 없다.

민주당 이낙연 대표는 지난해 11월2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부산시에 따르면 가덕도 신공항 건설에 따른 경제적 파급 효과는 생산 유발 효과 88조9천420억 원, 부가가치 유발 효과 37조2천318억 원, 취업 유발 효과 53만6천453명으로 추산된다. 이는 일자리와 관광, 제조업 등의 경쟁력을 높이고 지역 내 소비 활동 활성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보선에서 민주당 출신을 부산시장으로 뽑아달라는 이야기다.

지난달 김영춘 국회 사무총장은 “민주당이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 2월 처리 약속을 확실히 해주면 당락 가능성과 상관없이 무조건 출마하겠다”고 제안하고 나섰다. 김 사무총장은 지난달 28일 사임했다.

최근 부산시장 보궐선거 출마자가 마땅히 없어 인물난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김영춘 추대론이 조심스레 제기되던 와중이다.

김 사무총장이 ‘조건부 출마론’을 들고 나온 것은 그나마 가덕도 신공항 카드 정도는 쥐어줘야 해볼 만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민주당의 특별법 제정 등을 통한 가덕도 신공항 추진 드라이브에 맞서 TK 국민의힘 의원들이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부산시장 보궐선거와 2022년 대선에 미칠 파장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국책 사업 뒤집기를 비판하면서도 부산 민심의 눈치를 봐야하기 때문이다.

이 틈새를 활용해 이낙연 대표는 반발이 극심한 TK에서 요구하는 신공항 특별법 추진을 제안했다. ‘지역 균형 발전의 획기적인 계기’라고 설명했지만 이는 사실상 TK의 민심을 달래기 위한 카드다.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건설에 대한 국비 지원을 특별법으로 보장해 지역 민심을 잡겠다는 계산으로 해석된다.

이에 지역 대선 주자인 무소속 홍준표(대구 수성을) 의원 또한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특별법’을 발의했다. 마찬가지로 통합공항에 대한 국비 지원을 골자로 한다.

이처럼 가덕도 신공항 추진이 보궐선거의 변수로 떠오르면서 정치권은 요동치고 있다.

하지만 선거 영향력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반응도 나온다.

가덕도 신공항 파괴력이 현 정권 심판 여론마저 잠재울 수 있을지 부산시장 보선과 함께 열리는 서울시장 보선에 혹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가덕도 신공항과 특별한 이해관계가 없는 서울시민들, 특히 중도·무당층을 중심으로는 선거를 앞두고 안 그래도 논란이 큰 국가 재정건전성에 타격은 없는지 면밀히 따져볼 가능성이 크다.

가덕도 신공항이 보선과 대선 모두를 잡는 ‘신의 한수’가 아니라 부산시장 선거만 주력하다 서울시장은 물론 대선까지 놓치는 ‘최악의 한수’가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아울러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가덕도 신공항 공약을 부산 시민들이 더 이상 믿지 않는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또 여야 모두 내세우는 공약으로 선거 쟁점이 아니라는 관측도 있다.

지역 출신 한 정치인은 “가덕도 신공항 공약은 ‘양치기 소년’ 효과가 나타나는데다 결국 국민의힘도 가덕도 신공항을 밀 것”이라며 “한쪽은 찬성하고 한쪽은 반대해야 (정당에 대한) 호불호가 갈리는데 결국 둘 다 어정쩡하게 묻어가는 사안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상훈 기자 hksa707@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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