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철환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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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환

객원논설위원

우리나라의 현대문학은 대체적으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에 발아됐다고 볼 수 있다. 1894년 갑오경장으로부터 1919년 3·1운동까지가 그 태동기라면 3·1운동 이후는 현대문학이 본격적으로 뿌리내린 시기라 할 수 있다. ‘창조’(1919)에서 출발해 ‘개벽’(1920), ‘폐허’(1920), ‘백조’(1921)를 거쳐 ‘조선문단’(1924)에 이르는 종합문예지의 출현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일제 식민지라는 불행한 역사가 우리 현대문학사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 시기이기도 하다.

그 당시 조선의 엘리트 지식인들이 문학계로 많이 들어왔다. 성리학의 영향으로 인한 문존무비 풍조가 뿌리 깊은 데다 일제의 제도권으로 선뜻 들어가 그 뜻을 펼치기엔 대의명분이 부족했을 법하다. 한편으론 조선인으로서의 민족적 자존심이 작용했고, 다른 한편으론 나라 없는 백성이라는 한계를 문학으로 극복해보고자 하는 의도도 존재했을 것이다. 빼어난 시인들과 시대를 앞서 간 소설가들이 쏟아져 나온 시대적 배경을 곱씹어보노라면 가슴이 먹먹할 뿐이다.

현대문학을 꽃 피운 뛰어난 문인들이 대부분 친일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그들의 주옥같은 작품들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매우 안타깝고 애석하다. 그 야욕이 대륙 침략에서 태평양전쟁으로 치닫자 일제는 영혼까지 끌어다 댔다. 내선일체라는 명분을 내걸고 조선에 황국신민화정책을 실시했다. 문학계에도 그 여파가 미쳤다. 감시와 검열을 통해 표현의 자유를 제약했고, 존경받는 유명 문인을 겁박해 일제를 찬양하고 징병을 고무하는 글을 쓰도록 강제했다. 희망을 잃었거나 심지가 굳세지 못한 수많은 문인들이 일제의 강압에 무릎을 꿇었다.

그 일로 인해 문학사에서 빠질 수도 없고, 빠져서도 안 될 문인들과 그 작품들이 친일의 틀에 갇혀 빛을 보지 못 하고 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문인들이 암울한 역사에 치여 신음하고 있다. 문학작품이 문학성으로 평가받지 못하고 문학외적인 요인으로 인해 묻혀버리는 것은 암울한 역사보다 더 참담한 비극이다. 불굴의 애국심과 투철한 민족정신 그리고 대쪽 같은 지조를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제요건으로 본 모양이다. 심약한 천재나 성마른 현실주의자는 이름이 지워졌다. 영혼이 자유로운 문화예술인에게 고지식한 기준을 들이대는 것은 프로크루스테스와 다르지 않다.

결국 앞서간 문인들을 현창하고 그 작품들을 조명하고자 한다면 적어도 애국의 벽을 넘을 필요가 있다. 일제 때 백화제방 활동한 문인들이라면 친일 스크린을 통과해야만 비로소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유명세를 탄 사람이 그 절망적 상황에서 일제에 협력하지 않고 버텨내기 힘들었을 법하다. 그러다 보니 반일성향이나 민족정신이 담긴 작품은 문학성은 다소 떨어지더라도 필요 이상 과대평가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일제치하에서 두드러진 창작활동을 한 문인 중에 친일과 무관한 사람은 손에 꼽힐 정도로 귀하다. 지난 역사가 제대로 정리되기 전이란 제약 하에 있는 현 시점에서 현창할 만한 문인이 이설 없이 존재한다면 그 희소성만큼이나 희귀한 가치를 지니는 셈이다. 빙허 현진건은 친일에 자유로운 몇 안 되는 문인이다. 동아일보 손기정 선수 일장기 말소사건에서 보듯 항일과 민족정신이 남다른 데다 역사성이나 작품성도 두루 갖추고 있는 점에서 현진건은 우선적으로 기억해야만 할 문인이다.

현진건은 1900년 대구 계산동에서 출생하고 대구노동학교에서 수학했다. 1915년 고향 문우 이상화, 백기만, 이상백 등과 함께 대구에 기반을 둔 최초의 동인지 ‘거화’를 발행했다. 민족정신을 바탕으로 식민지의 참담한 사회상을 사실적으로 그려냄으로써 현대소설을 우리나라에 정착시키고 리얼리즘 문학을 완성했다. 체험의 프리즘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이 곧 소설이라는 사실을 보여준 현진건은 민족주의적 색채가 강한 리얼리즘 문학의 최고봉에 올랐다.

빙허 현진건은 친일에서 자유롭고 문학성과 역사성도 함께 갖춘 데다 대구와의 친연성까지 갖추고 있다. 그런 점에서 현진건은 정부와 대구가 반드시 현창해야할 흔치 않은 위인이다. 현진건문학상의 확충, ‘현진건 거리’와 가칭 ‘운수 좋은 집’(현진건문학관) 조성 등과 같은 사업이 절실하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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