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명희 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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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희

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

바닷물도 얼어붙었다. 소띠 해, 순하게 생긴 그의 코에도 얼음덩이가 달릴 만큼 엄청난 추위가 이어진다. 이른 아침, 따스하고 향긋한 커피가 생각났다. 드라이브스루로 커피 한 잔을 받았다. 뜨거운 음료를 한 모금씩 마셔가며 출근했다. 일과를 마치고 컵홀더에 꽂힌 커피가 눈에 들어와 목을 축이려 입에 댔다. 묵직한 것이 아직 많이 남은 것 같은데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뚜껑을 열어보니 세상에~! 거품까지 그대로 꽝꽝 얼어있는 것이 아닌가. 건물 바깥도 아니고 사람이 연방 드나드는 지하주차장, 그곳까지 냉동고 한파가 찾아든 모양이다. 이런 강추위를 뚫고서 아픈 몸으로 병원을 찾아오는 이들, 그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무덤덤하게 대한 그들에게 새삼 미안해진다.

평소 말없이 진료 마치면 눈인사만 하고 나가곤 하던 환자 보호자가 오랜만에 밝은 얼굴로 인사를 건넨다. “요즘, 월요일이 기다려져요”라고. 코로나19로 재택근무를 하게 돼 신문을 읽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우연히 나의 글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지면을 펼치며 그 면이 나와서 칼럼이 나오는 요일도 알아차렸다며 새로운 발견인양 얼굴을 발그레 물들이며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책 한 권을 내밀었다. 몇 년 전 제목이 눈에 들어 살까 말까 고민하던 바로 그 책, ‘즐겁게 살자, 고민하지 말고’였다. 그녀도 지루하게 이어지는 코로나19로 집에만 머물며 아이들과 부대끼느라 얼마나 힘에 부쳤겠는가. 그러다 보니 그 책이 눈에 확 들어왔을 것 같다.

누군들 고민하고 살고 싶겠는가. 즐겁게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언젠가는 사람은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손에 쥔 모든 것을 놓고 훌훌 떠나게 되지 않은가. 그러나 그때를 모르는 것이 바로 인간이니 누구든지 전전긍긍하지 말고 마음껏 즐겁게 살자고 전하는 세 자매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주인공들을 힘들게 한 것은 사랑이었고, 극복하게 하는 것 또한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었다. 언젠가 죽을 날을 위해 고민하지 않고 즐겁게 사는 것이 아니라, 그녀들은 지금 ‘내가 아닌 나’로 살게 되면 고민하고, 다른 누구도 아닌 ‘나’로서 살기 위해 분노한다. ‘나인 나’로 살 때가 가장 즐겁다. 그러기 위해 고민하고 언제나 자기 자신을 똑바로 직시하고 또 당당하게 마주한다.

고민 없이 즐겁게 사는 방법, ‘나’를 인정하고 ‘나’로써 사는 것이라는 그녀들에게 한 수 배워본다. 고민이랑 훌훌 날려버리고 인생은 그냥, 즐겁게 사는 거야.

새해 벽두 해외 뉴스를 장식한 것은 즐겁게 살아온 세계 최고령자의 이야기, 일본인 다나카 할머니가 118번째 생일을 맞았다는 뉴스였다. 후쿠오카시 노인요양시설에 거주하는 그 할머니는 1903년에 태어났고 재작년 3월에 116세 66일의 나이로 영국 기네스월드레코드 측으로부터 남녀 통틀어 생존한 세계 최고령자로 공인받았다. 일본 왕을 기준으로 한 시대 구분인 연호로 따지면 메이지(明治)부터 현재의 레이와(令和·나루히토 일왕의 연호)까지 5개 시대에 걸쳐 살고 있다. 장수비결을 묻는 말에 “맛있는 것을 먹고, 공부하는 것”이라고. 목표 수명은 120세라며 앞으로 최소한 2년은 더 살겠다는 의지를 밝혔다고 한다.

평소 체조로 몸을 움직이거나 두 사람이 하는 게임 등으로 소일하는 할머니는 식욕도 왕성해 좋아하는 초콜릿과 콜라를 즐긴다. 손자인 다나카 에이지(61)씨는 교도통신에 “코로나19 때문에 매우 힘든 상황이지만 할머니께선 건강하시다. 매일 즐겁게 지내고 계셔 기쁘다”고 말했다. 후쿠오카의 농가에서 9명의 형제 중 7번째로 태어난 할머니는 19세 때에 결혼해 장남을 낳았다. 1937년 중일전쟁이 시작되면서 남편과 장남이 징집된 후로는 집안 살림을 도맡아 억척스럽게 살았다. 당시 상황에 대해 “남자 몸은 아니지만, 울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몸도 마음도 남자처럼 돼 방아를 찧고 떡메질을 하는 등 뭐든지 할 수 있게 됐다”라고 회상한 적이 있다. 1993년 90세가 된 남편과 사별 후 백내장(90세), 대장암(103세) 수술을 받았지만, 현재 지병은 없다고 한다. 올 5월로 예정된 후쿠오카 지역 성화 봉송 때 휠체어 타고 성화 봉송 주자로 할머니가 나설 예정이라는 보도도 있었다. 태어난 해인 1903년은 제1회 근대 올림픽이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1896년 불과 7년 뒤였고 도쿄에서 처음 올림픽이 개최된 1964년엔 그의 나이 61세였다. 장수에 대한 긍정적인 메시지를 세계인에게 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는 다나카 할머니의 성화 봉송을 추진하려는 눈치다. 할머니의 희망 여명이 성취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어떤 강추위가 몰아쳐도 저 멀리서 봄은 조금씩 다가오고 있을 것이다. 동지 지나면 하늘의 봄이 시작된다지 않은가. 그러니 하루하루 즐겁게 살자, 고민하지 말고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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