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일반

돌이킬 수 없는 사랑과 헤어날 수 없는 마음에 관하여/권영오



지난밤 까먹은 귤껍질이 말랐다//다 못 먹고 놓아둔 귤은 물렀다//향기와 냄새의 접점, 마름과 무름의 경계

「좋은시조」 (2017, 겨울호)

권영오 시인은 경북 봉화 출생으로 2005년 열린시학 신인상 시조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귀항’과 ‘철학하는 개’가 있다.

시조가 지나치게 단정하거나 단아하면 곧 싫증이 날 수 있다. 자연을 찬미하는 일도 시의 한 몫이 되겠지만, 거기에다가 서정일변도로 기울어져 있기만 하면 갑갑함을 떨칠 수가 없게 된다. 시조문단의 원로인 장순하 선생은 일찍이 탈주정을 주창한 바 있다. 서정성에만 함몰돼 있는 시조문단에 대한 일침이었다. 그 후로 창작의 지형은 많이 바뀌었다. 새로운 역량 있는 신인들이 다수 배출됐기 때문이다. 권영오는 등단 이후부터 탈주정의 세계를 천착하는 일에 매진해온 시인이다. 특히 그의 단시조 작품들은 주목을 요한다. 큰소리로 세상을 향해 꾸짖듯이 일갈을 한다. 웬만한 시조를 보고도 성에 차지 않는 성미다. 내 시조는 이렇다. 나는 시조를 이런 방향으로 쓴다는 듯이 몸으로 부딪치는 시를 쓰기 위해 힘쓴다. 절박한 인생담론을 시 속에 녹이기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는 점에서 신뢰가 간다.

‘돌이킬 수 없는 사랑과 헤어날 수 없는 마음에 관하여’는 단시조이면서 제목이 꽤나 길다. 다분히 의도적이다. 사랑과 마음에 대한 진지한 탐색인데 지난밤 까먹은 귤껍질이 마른 것을 유심히 보면서 다 못 먹고 놓아둔 귤은 물러있는 것을 살핀다. 그러면서 화자는 돌이킬 수 없는 사랑과 헤어날 수 없는 마음에 관해 사유한다. 대체 그것은 내 인생에서 어떤 것이었나 하고 성찰하면서 향기와 냄새의 접점과 마름과 무름의 경계를 생각한다. 미묘하고 미세하다. 충분히 새로운 목소리의 발현이다.

그는 시조의 미래를 걱정하면서 작품에서 제목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다른 이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참신한 긴 제목으로 단시조의 한 전범을 보여주고 있다. 흔히 서정성에 경도되다가 보면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회고조나 추억담을 시화하는 일이 잦다. 물론 이러한 작법도 시에서 필요하다. 하지만 이것은 자칫 퇴행성으로 비쳐져서 결코 미래지향적이지 못하다. 치열한 시대정신과 정신의 위의를 세울 충일한 내면의식의 발현을 통해 새로운 길은 열릴 것이다.

다음 두 편의 단시조에서도 그 점을 읽을 수 있다.

한때는 사나이였을 남자 두엇 누워 있다/탈진한 인생처럼 편안한 꽃밭 위에/그 곁에 구두를 벗고 나도 놓고 싶어라

소주병을 깨듯이 먼 수평에 금이 가고/갈라진 가슴마다 비바람이 새는 동안/사는 거/죽는다는 거/별거는 아니다만

앞은 ‘동대구역’이고 뒤는 ‘부산역’이다. 한때는 사나이였을 남자 두엇이 누워 있는 모습에서 이 시대의 한 단면을 읽는다. 사나이라면 끝까지 사나이여야 마땅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탈진한 인생처럼 편안한 꽃밭 위에, 그 곁에 구두를 벗고 나도 놓고 싶어 하는 화자의 심경에 공감이 간다. 그리고 ‘부산역’에서는 소주병을 깨듯이 먼 수평에 금이 가고 갈라진 가슴마다 비바람이 새는 동안 삶과 죽음이 별것 아닌 것을 자각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역은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다. 우리는 어쩌면 한 역에서 다른 역으로 끊임없이 이동하다가 생의 종착지에 이르게 되는 지도 모른다.

돌이킬 수 없는 사랑과 헤어날 수 없는 마음을 그대로 부둥켜안고….

이정환(시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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