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일반

/박준우 시시비비/ 미러링(mirroring)의 명·암



어릴 적 놀이 중에 ‘반사 놀이’란 게 있었다. 싫어하거나 좋지 못한 말을 듣게 될 때 ‘반사’란 말을 함으로써 상대방에게 자신이 느낀 싫은 감정을 똑같이 맛보게 하는 것인데,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보이는 이런 행위가 아이들에게는 어느 정도 자기방어 수단으로 효과가 있었던 것 같으니 지금 생각해도 희한한 일이다.

근래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이 반사 놀이와 유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아이들의 반사 놀이와 달리 어른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사 행위는 더 복잡한 이해관계가 그 저변에 깔려 있다는 사실이다. 사회심리학에서는 이를 ‘미러링’(mirroring·따라 하기)이라고도 한다.

여성 대상 범죄가 사회문제로 크게 부각된 적이 있다. 몇 년 전 강남역 살인사건 등 여성을 타깃으로 한 강력 범죄가 거푸 발생하고 당시 온라인상에서는 ‘김치녀’와 같은 비하 표현들과 여성을 증오하는 온갖 메시지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오죽했으며 당시 이를 범주화해 여성혐오란 용어가 널리 사용될 정도였다.

그러자 페미니스트들을 중심으로 한 일부 여성들 사이에서 이에 대응하는 표현으로 남성혐오란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김치남’ ‘한남충’ 등 남성을 비하하는 표현들이 온라인을 중심으로 크게 확산했다. 심지어 남성 혐오를 극단적으로 주장하던, 지금은 폐쇄된 한 인터넷 커뮤니티사이트에서는 이를 ‘미러링 운동’이라며 성 간 대결과 갈등을 부추기기까지 했다.

더 큰 문제는 차별을 부각하고 대립을 조장하는 이런 경향이 젠더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고 시간이 흐를수록 사회 전방위로 점점 더 확산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북한군의 총격으로 숨진 해양수산부 소속 공무원의 피살 사건이 있었다. 그런데 당시 정치권은 사망 경위보다는 사건이 대통령에게 발생 10시간이 지나고서야 보고됐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춰 정쟁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야당에서는 대통령이 10시간 동안 뭘 했는지 초 단위로 밝혀야 한다고 공세를 폈다. 마치 과거 세월호 사고 때 ‘대통령의 7시간’을 초 단위로 공개라고 요구했던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의 공세를 미러링하는 것 같았다. 결과적으로 보면 정치권의 의도는 지지자들에겐 단결하라는 메시지였고, 상대 진영에게는 분열과 흠집 내기 공세일 뿐이었다.

미러링은 그런데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 건 아니다. 따라하기, 즉 미러링이 긍정적이고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경우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얼마 전 한 유명 여자 연예인의 반려견 사망 기사가 뜨자 실시간으로 추모 댓글이 많이 달렸던 적이 있다. 그 기사에 눈길이 간 건 훨씬 오래전 일이지만 이 연예인이 유기견보호소에서 안락사 위기에 처한 그 반려견을 입양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당시 유기동물보호소를 통해 반려견이나 반려묘를 입양하려는 이들이 많이 늘어났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대구에서는 지난해 연말 10년 기부 약속을 지킨 한 시민의 얘기가 전해졌다. 2012년부터 매년 1억 원이 넘는 거액을 꼬박꼬박 기부하면서도 절대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 ‘키다리 아저씨’라 불렸던 그는 지난해에도 늘 그랬듯이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공동모금회를 통해 5천여만 원의 기부금과 메모지가 든 봉투를 전했다고 한다.

그 메모지에는 ‘저와의 약속 10년이 되었군요, 나누는 즐거움과 행복함을 많이 느끼고 배우고 고맙게 생각합니다’라는 글이 씌어 있었고, 직원들이 전한 그의 마지막 말은 ‘난 마중물 역할뿐이다. 혼자만의 노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앞으로 많은 사람이 키다리 행진에 참여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2020년은 코로나 때문에 모두에게 어느 때보다 힘든 한해였다. 그래서 2021년에는 이 모든 게 달라지길 바라는 게 모두의 마음일 것이다. 우선은 역시 백신과 치료제 개발로 바이러스가 퇴치돼 일상이 회복되는 것일 것이다. 또 국민들이 공감하지 못하는 정치권의 싸움질, 그리고 정치권에서 그 토대를 깔아 주고 있는 진보·보수의 편 가름과 그로 인한 혼란상도 달라지길 바라는 목록에 들어갈 것 같다. 그 외에 젠더나 세대 간 갈등도 2021년에는 변화의 모습이 나타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논설위원 겸 특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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