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일반

은유의 꽃/ 이진흥

(1)// 한밤중 머언 하늘 끝에서/ 우주의 비밀처럼 빛나는/ 별이 떨어질 때// 가장 신비한 모습으로 피어나서/ 아름다운 소멸을/ 배웅한다// 스스로의 무게로/ 가지를 떠난 열매가/ 한없는 어둠 속으로 떨어질 때// 가슴을 도려내어/ 완성의 형식을/ 부여한다// 눈부신 빛의 뒤에 숨어서/ 온갖 빛나는 것들을 드러내는/ 어둠처럼// 끊임없이 떨어지는 것들 속에서/ 하강의 질서를 다스리는 것은/ 꽃이여 너의 눈짓이다// (2)// 정확히 초점을 맞추고/ 셔터를 누르고 나면/ 잡힌 것은 애매한 그림자다// 돌아서면/ 아린 몸짓으로 다가오다가/ 손을 주면 이내 사라지고// 잡는 방법을 전혀 포기할 때/ 남몰래 내안에/ 깃을 치는// 너는 한 오리 율동이다/ 내 어린 시혼의/ 현을 튕기는// (3)// 너는/ 우주가 하나로 집중할 때/ 비로소 열리는 눈이다// 보석처럼 맑은 고독의 사슬로/ 일체의 빛을 묶어/ 흔드는 손이다// 온 생을 한 가닥 활줄에 걸어/ 죽음을 겨냥하는 사수의/ 엄격한 포우즈// 중심을 깨뜨리는/ 모순의 얼굴이다// 날카로운 혼란의 춤, 꽃이여

「대구문협대표작선집1」 (대구문인협회, 2013)

시는 인생의 실체다. 인생은 사물과의 관계 속에서 시현되지만, 사물은 진정한 본모습을 쉽게 나타내지 않는다. 인간의 삶은 사람마다 백인백색이고, 눈에 비치는 사물의 모습도 가상이거나 허상이다. 정체성이 다른 고유한 프리즘을 통해 보는 사물은 더더욱 본질이 가려진다. 그렇지만 개인의 경험과 정서가 역사적 환경과 동떨어져 존재하지 않는 까닭에 인간의 삶 속엔 어느 정도 보편성이 녹아있다. 보편적인 시각 속에서 독자적인 정서를 찾아내는 일은 난해한 시에 용이하게 접근하는 한 방편이다.

시인은 인생을 표현하는 예술가이다. 보이는 대로의 모습은 본모습이 아닌 허상일 수 있다. 나타난 현상을 보고 날카로운 심미안으로 숨겨진 본질을 투시해야 하는 시인은 그래서 현상학자여야 한다. 시 ‘은유의 꽃’은 시제가 보여주듯 꽃을 시적 대상으로 끌어왔다. 시인의 주장대로 꽃을 어떤 사물보다도 우월한 ‘시적 대상성’을 가진 존재로 보기 때문일 것이다. 그 논거의 옳고 그름을 떠나 꽃이 시의 소재로 가장 많이 다뤄져 온 사실만 봐도 꽃이 가진 우월한 ‘시적 대상성’을 감히 부인하진 못하리라.

꽃은 다른 도구성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 목적이다. 꽃은 다른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아름답기 때문에 그 모습 자체가 실체다. 꽃의 현상은 미적 대상으로 본질인 셈이다. 시는 대상과 본체를 연결하는 고리로 기능한다. 시인이 꽃을 미적 대상으로 선호하는 것은 자연스런 귀결이다. 시 ‘은유의 꽃’도 이러한 꽃의 ‘시적 대상성’과 ‘대자(對自)·즉자(卽自)의 종합’을 잘 보여준다.

어둠은 원초의 상태이고 별은 스스로 목적이다. 소멸이 아름답고 배웅할 만한 것은 어쩌면 역설이다. 열매는 스스로 떨어짐으로서 목적이 완성된다. 별이 소멸하고 열매가 떨어지는 모습이 아름다운 것은 모순이지만 본질이기도 하다. 의도하는 일이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 나타난다. 초점을 맞추면 그림자만 남는다. 다가가면 사라지고 포기하면 얻어진다. 현상은 내재하는 율동이고 우주의 눈이며 빛의 손이다. 또한 죽음을 겨냥하는 숨 막히는 사수의 몸짓이다. 꽃은 부조리의 얼굴이고 날카로운 혼란의 춤이다. 꽃의 은유는 그 자체 지향점이지만 소멸하는 실체다. 오철환(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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