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일반

죽은 시인의 사회1/ 하종오

용정에서 취재하러 남한에 온/ 조선족 난민의 후손 윤동주 시인이/ 말이 통하지 않아 어찌할 바를 모르는/ 나를 데리고 예멘 청년들을 만났다/ 나는 도저히 알아듣지 못하는 아랍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윤동주 시인을 보면서/ 시를 잘 쓰면 절로 아랍어가 터득되나보다 했다/ 윤동주 시인은 대화내용을/ 바로바로 나에게 통역하였다/ 난민 신청했다가 인도적 체류 허가받은 예멘 청년들 중에는/ 시를 습작하는 시인지망생 하산 씨가 있어/ 시인인 우리를 알아본다고 했다/ 예멘 청년 하산 씨는 시골에서 태어나 자라 도시에서 공부했으며/ 어릴 적부터 시인이 되기를 꿈꾸었노라고 말했다고 했다/ 그런 말을 들은 내가/ 윤동주 시인도 마당에 자두나무가 있고/ 울 밖에는 살구나무가 많고 쪽문을 나가면 우물이 있고/ 대문을 나서면 텃밭이 있는 집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어릴 적부터 시인이 되기를 꿈꿨다고/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예멘 청년 하산 씨가 인도적 체류 허가받은 지금 처지로는/ 시를 습작하기에 난망해 보여/ 요즘은 무슨 꿈을 꾸느냐고/ 윤동주 시인에게 물어봐 달라고 부탁했다/ 윤동주 시인이 내 질문을 전했는지/ 혹은 전하지 않고 다른 질문을 했는지 몰라도/ 몇 마디 중얼거리는데도/ 낯빛이 빛나 보이는 예멘 청년 하산 씨와/ 윤동주 시인이 환하게 웃으면서 악수를 해서/ 나도 따라서 환하게 웃으면서 악수를 했다/ 윤동주 시인은 용정으로 돌아가지 않고/ 남한에 머물면서 예멘 청년들과 자주 만나겠다면서/ 시인지망생 예멘 청년 하산 씨가 한 대답을 나에게 들려주었다/ 한국어를 배우고 싶다./ 한국어로 시를 쓰고 싶다./ 난민이 된 예멘 인들에 대해서 한국어로 시를 쓰고 싶다./ 예멘에서 벌어지고 있는 내전은 보통 예멘 사람들이 벌인 전쟁이 아니라는 걸 보통 한국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 한국어를 가르쳐 달라, 고…

「대륜문학17」 (대륜문학회, 2020)

알카에다와 IS 등 이슬람원리주의자들이 예멘 정부를 공격했다. 그 후 남예멘분리주의자와 사우디아라비아가 개입하게 되고 예멘 내전은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됐다. 수만 명의 민간인이 사망했고 대규모 난민이 발생했다. 우리나라에도 2018년 500여 명의 예멘 난민이 제주도에 들어왔다. 제주도는 관광객 유치를 위해 무비자제도를 실시하고 있는 관계로 누구나 자유로운 입국이 가능한 탓이다.

우리나라가 난민을 받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새삼 이 사건이 여론의 조명을 받은 것은 갑자기 많은 난민이 몰려온 데다 이질적인 문화를 가진 무슬림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인종차별을 극복하고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배타적 순혈주의와 일자리 부족, 범죄 발생가능성 등을 들어 예멘 난민을 받지 말아야 한다는 여론이 우세하다. 내국인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는 현실에서 오지랖 넓은 짓을 하지 말자는 의미로 비친다.

시인은 난민의 후손으로 빼어난 시를 쓴 윤동주 시인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다. 기발한 발상이다. 난민을 보담아 준 덕분에 윤동주 시인이 존재할 수 있었듯이 예멘 난민을 포용해 준다면 예멘 난민의 이야기를 한국어로 쓴 위대한 시인이 탄생할 수 있다. 미국이 유대인을 관용한 덕택에 아인슈타인을 얻었고, 다양한 이민을 지속적으로 허용한 덕분에 스티브잡스, 타이거우즈, 오바마 등을 낳은 이야기가 행간에 숨어있다. 이해득실을 떠나 인도주의 관점이 시인에겐 자연스럽다. 오철환(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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