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욱

에녹 원장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우는 꾀가 많고 영악한 동물로 그려지는 것이 다반사다. 이솝우화 ‘까마귀와 여우’는 여우의 특성을 잘 그려내고 있다. 먹음직한 먹이를 입에 문 까마귀를 본 여우는 숱한 감언이설로 먹이를 차지하고자 시도한다. 어떤 새에게서도 볼 수없는 몸매와 위엄을 갖췄다며 칭찬하며 제대로 된 목소리만 있다면 진정한 ‘새들의 왕’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까마귀를 추켜세운다. 이 말을 들은 까마귀는 자신의 목소리에 이상이 없음을 과시하고자 우렁찬 목소리로 울음소리를 낸다. 먹이는 나무 아래로 떨어지고 잽싸게 먹이를 가로 챈 여우는 ‘아아, 까마귀야! 만일 거기에 판단력만 갖췄다면 너는 새들의 왕으로서 부족함이 없을 텐데’라고 말하고 사라진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여우의 재치와 술수가 두드러지는 이야기다. 더불어 목적을 이루고서도 상대방의 어리석음을 짚어주고 떠나는 여우의 비정함도 드러난다.

중국 ‘전국책’과 ‘초책’에서 유래하는 ‘호가호위’란 말이 있다. 초나라 선왕시절, 재상 초해율은 북방의 모든 나라가 두려워하는 대상이었다. 이에 선왕이 연유를 묻자 누구 하나 제대로 대답을 못 하고 있는 가운데 강일이라는 신하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호랑이가 모든 짐승들을 잡아 먹이로 하다가 하루는 여우를 잡았다. 여우가 죽지 않으려고 말하길 ‘그대는 감히 나를 먹지 못할 것이다. 천제께서 나를 온갖 짐승의 우두머리로 삼았으니, 지금 나를 먹으면 천제의 명을 거스르는 것이 된다. 나를 믿지 못하겠다면 내가 앞장설 테니 내 뒤를 따라와 봐라. 나를 보고 감히 달아나지 않는 짐승이 있는가 보아라.’ 호랑이는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여우와 함께 갔다. 이를 본 짐승들은 모두 달아나기에 바빴고 호랑이는 모든 짐승들이 자신이 아닌 여우를 두려워한다고 여겼다.

신하 강일은 여우의 우화를 통해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려 자신의 안위를 도모하듯 재상 소해율이 왕의 권력을 빌려 허세를 부리는 것을 빗대고자 한 것이다.

서울과 부산시장 보궐선거 그리고 1여 년 후로 다가온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수많은 정치인들이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다. 현직 장관을 비롯해 전직 총리 그리고 정당대표로 지낸 인물들로 화려한 경력과 이력을 지니고 있다. 이들에게 필연적으로 따르는 ‘친문과 반문 그리고 친박과 비박’이냐는 계파 정치의 논쟁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힘 있는 자의 ‘뒷배’가 있어야만 출마와 더불어 당락을 예측할 수 있는 구조이기에 우리나라 정치 현실은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이 통용되지 않는 역학구조가 도사리고 있다. 무소속이 되는 순간 계파에 따른 공격이 진행되기에 소속 정당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은 당연한 일이다. 신진 정치인이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기가 힘든 것 또한 사실이다. 정당 정치를 표방한 역기능적 계파 정치는 새로운 인물 모색에 너무나 인색할 수밖에 없다.

최근 한 여론조사기관이 발표한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대선출마 가상 여론조사의 결과가 참으로 이채롭다. 현직 공직자로서 본인 스스로 출마에 대한 어떤 의지도 밝힌 바 없지만 여권 선두 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이낙연 더불어 민주당 대표를 크게 앞서고 있다. 윤 총장의 차기 대선출마 여부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는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는 답변이 45.9%로 ‘출마할 것’이라는 응답인 33.9%보다 훨씬 높았다. 특히 더불어 민주당 지지층에서 불출마라고 응답한 비율이 57.3%, 출마할 것이라고 응답한 국민의 힘 지지층이 52.3%라는 점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국정농단 사건과 전직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 낸 핵심적 인물들 중 한사람이기에 그러하다. 촛불집회와 국정농단에 대한 법집행은 현재 문재인 대통령의 집권과 더불어민주당의 180석이라는 압도적 의석 획득의 주춧돌이라는 점은 의문의 여지없다. 그러함에도 윤 총장에 대한 찬반의 결과가 반대적 결과로 나타난 것은 한국 정치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야권 후보로서 윤 총장이 여론조사의 대상이 된다는 점은 한국 정치에 깊이 뿌리내린 ‘계파 정치’의 일그러진 모습이라 아니할 수 없다. ‘내 편이 아니면 언제든 내칠 수 있다’라는 전략 전술의 또 다른 모습이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의 현주소는 원하는 먹이를 위해 감언이설과 모략을 숨기지 않은 ‘여우들의 세상’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권력에 빌붙지 않는 ‘권력자에 대한 심판자’로서의 모습에 국민들이 환호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린 시절 부르던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란 동요 속 ‘잠잔다’라는 거짓말에 속지 않고 다가올 여우들의 위협을 국민들이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일부 지지층과 일개인의 권력자에 아부하는 여우들이 안타깝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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