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일반

어떤 명함/ 정희경



달리는 오토바이가 명함을 휙휙 던진다//비스듬히 내리는 때 이른 진눈깨비//급전이 필요하십니까 즉시 대출 싼 이자//불 꺼진 치킨집 앞 수북한 고지서처럼//폐업 처분 가격 인하 가속력 칼금처럼//가장의 낡은 구두에 추적이는 누런 낙엽

「해바라기를 두고 내렸다」(책만드는집, 2020)

정희경 시인은 대구 출생으로 2010년 서정과 현실 신인상 시조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지슬리’, ‘빛들의 저녁시간’, ‘해바라기를 두고 내렸다’ 등과 시조평론집 ‘시조, 소통과 공존을 위하여’ 등이 있다. 치열한 시 정신으로 창작을 하면서 날카로운 평필로 좋은 시조 알리기에 매진 중이다. 이렇게 시조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자 하는 노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세상은 급변하고 있고, 예기치 못한 일들이 파도가 몰려오듯이 들이닥치고 있다. 이러한 때에 시조가 할 수 있는 일을 궁구해야 한다. 시조로 시대를 견인해야 한다. 인간성 상실의 시대에 정신의 위의를 세우는데 시조만한 문학 갈래가 없기 때문이다.

‘어떤 명함’은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는 작품이다. 달리는 오토바이가 명함을 휙휙 던지는 장면을 비근하게 본다. 얼마나 효력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러한 일을 하는 이들이 많다. 비스듬히 내리는 때 이른 진눈깨비가 흩날리고 있는 날이기에 을씨년스럽다. 명함은 목청껏 소리 높여 말하고 있다. 급전이 필요하십니까, 라고 물으면서 즉시 대출이고 아주 싼 이자이니 갖다 쓰라고 한다. 흡사 불 꺼진 치킨집 앞 수북한 고지서처럼, 폐업 처분 가격 인하 가속력 칼금처럼 명함은 곳곳에 날아가 박힌다. 화자는 그 장면을 바라보면서 가장의 낡은 구두에 추적이는 누런 낙엽이라고 의미 부여를 한다. 명함을 부지런히 뿌리며 달려가는 그 사람도 한 가정의 가장일 것이다. 그는 낡은 구두를 신었고, 삶에 늘 쫓기며 산다. 그런 구두에 추적이는 누런 낙엽과도 같은 것이 명함이다. 명함은 분명히 그 사람에게는 목숨 줄과도 같은 것이건만….

시인의 이러한 현실 직시는 소중하다. 이렇듯 시조가 시대 상황, 시대정신을 부지런히 받아들이고 그것을 육화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 이 일은 시조를 쓰는 시인에게 주어진 책무이기 때문이다. 자연을 예찬하고 내면세계를 탐구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당대의 아픔을 형상화하는 일에 결코 소홀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그런 뜻에서 ‘어떤 명함’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또 다른 작품 ‘박태기나무’를 보자. 곡진한 아픔이 배어 있다. 울 할매 어제 흘린 밥풀때기 몇 조각이 꽃대 따윈 필요 없어 나무 몸에 붙어 핀다, 라고 진술하고 있다. 그래서 아범아 밥이 참 곱제 식기 전에 마이 무라, 라고 말한다. 모두가 밥심으로 살았는데 살아서 견뎠는데 어무이 이제 이게 어무이 밥줄이라요, 라고 하면서 자식이 애를 태운다. 어머니가 링거 줄을 자꾸 뜯어버리기 때문이다. 요양병원 98호에서의 일이다. 사실 수십 년 전만해도 쌀밥이 귀했다. 보리밥이라도 실컷 먹어 봤으면 하던 시대가 1960년대였다. 홈런타자였던 김봉연 선수가 어떻게 홈런왕을 차지하게 되었는가 하고 아나운서가 물었을 때 밥의 힘이었다고 대답했던 것을 또렷이 기억한다. 그때 명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매는 밥을 제대로 드시지를 못한다. 해서 링거에 의지하고 있다. 그게 밥줄이나 마찬가지다.

위기의 시대라고 말하지만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늘 위태로운 일들이 있었다. 자존을 견지하며, 좋은 시조로 세상을 밝혀나가는 일에 전념한다면 우리 사회가 더욱 윤택해지리라 믿는다.

이정환(시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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