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얼굴 자랑하려 피는 게 아니구나//남 보기 좋으라고 피는 게 아니구나//봄 와서 몸 더워지니 못 견뎌 피는구나//꽃이든 사람이든 바위든 그 무엇이든//진짜 예쁜 것들은 나대지 않는구나//조용히, 그저 조용히 웃기만 하는구나

「터널을 지나며」(2020, 책만드는집)



홍사성 시인은 강원도 강릉 출생으로 2007년 시와시학 시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내년에 사는 법’, ‘고마운 아침’, ‘터널을 지나며’가 있다. 문학평론가 정효구는 이번 시집 ‘터널을 지나며’의 해설에서 본심에 공명하는 시간, 이라는 제목으로 그의 시 세계를 본심을 보는 마음, 본심을 듣는 마음, 본심을 행하는 시간, 본심을 전하는 시간으로 대별해 살피고 있다. 적절한 의미 부여라는 생각이 든다.

한 권의 시집을 완독하는 일은 어렵다. 그런데 ‘터널을 지나며’를 단숨에 읽었다. 진솔한 시 세계가 강한 자기장을 형성하면서 흥미진진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군데군데 촌철살인과 같은 구절이 나타나서 오래 눈길을 사로잡기도 하고, 무릎을 치게 하는 명구로 말미암아 시 읽는 재미를 더했다. 사람살이와 자연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탐구가 도저한 깊이에 닿아 있어 이따금 깨달음을 얻게 했다. 이와 같은 친밀한 달관의 세계는 누구나 쉽게 도달할 수 없는 경지다. 그리고 기교를 앞세우지 않으면서 기교를 보인다. 이른바 무기교의 기교인 셈이다.

‘예쁜 꽃’은 시집 속에 들어 있는 시조다. 꽃을 보면서 예쁜 얼굴 자랑하려 피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또한 남 보기 좋으라고 피는 게 아니라는 것까지도. 첫째 수 종장은 창의적인 해석으로 봄 와서 몸 더워지니 못 견뎌 피는구나, 라는 대목은 깊은 성찰 없이 얻을 수 없는 구절이다. 특히 몸이 더워져서 못 견디어서 꽃을 피운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어서 꽃이든 사람이든 바위든 그 무엇이든 진짜 예쁜 것들은 나대지 않는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조용히, 그저 조용히 웃기만 하는 꽃을 바라보면서 사람살이를 돌아보고 있다. 자연을 닮는 일, 자연친화적인 삶을 구현하는 일이 인간다운 길, 인간성 회복의 길임을 은연중 환기시킨다. 몸이 더워지면 몸속의 병도 달아난다고 한다. 몸이 더워져서 꽃이 피니 시인은 몸이 더워지면서 더욱 열정적으로 시를 쓰게 되겠다. 눈앞이 곧 봄이지 않는가?

그는 산수유도 꽃망울 터지기 전에는 죽은 삭정이에 불과했고, 봄바람도 볕에 몸 녹이기 전에는 차가운 북풍일 뿐이었으며, 내 가슴도 네가 들어오기 전에는 가을걷이 끝난 벌판이었다, 라고 ‘따뜻함의 힘’에서 진술하다가 어느 날 천지가 이상해졌다고 말하면서 그것은 따뜻한 눈길 느낀 그날부터였음을 진솔하게 토로하고 있다. 우리는 흔히 상대방에 대해 언짢은 일이 있으면 눈총을 쏘아댄다. 아래위로 훑어보면서 그러한 모습을 보일 때 섬뜩해지고 그 자리가 불편해진다. 그런데 미소와 더불어 건네는 따뜻한 눈길은 사람의 마음을 녹이고, 기쁨을 안겨준다. 그것이 곧 따뜻함의 힘이다. 이러한 따뜻함은 팍팍하게 살고 있는 이들에게 위로와 평안을 줄 것이다. 격려를 아끼지 않고 행복감을 안겨주는 고운 눈길로 삶을 가꾸어갈 일이다.

시집 제목인 ‘터널을 지나며’에서 보듯 무수한 터널을 지나치며 우리 모두 살아가고 있다. 누가 터널 속에 오래 머물고 싶을까? 목적지를 위한 통행 수단일 뿐이기에 터널은 머무는 곳이 아니라 속히 통과하는 곳이다. 그는 삶의 깊은 곳곳에서 맞닥뜨리는 시적 정황을 놓치지 않고 작품으로 세밀히 형상화하는 일에 매진 중이다. 꽃 박수를 받고도 남을 일이다.

이정환(시조 시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저작권자 © 대구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