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루다’가 이루고 싶었던 것

발행일 2021-02-01 14:31:07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시인 천영애
천영애

시인

지난달 출시된 인공지능(AI) 대화 서비스 챗봇 ‘이루다’를 둘러싸고 논란이 분분하다. ‘이루다’에 대한 이용자들의 성희롱·성착취로부터 시작된 논란은 AI에 의한 소수자 차별과 AI의 윤리는 물론 개인정보 활용의 문제로 비화되고 있다. 인공지능은 우리 생활에 알게 모르게 깊이 들어와 있는 것으로 간단하게는 휴대폰에서 전화를 대신 걸어주는 것부터 복잡하게는 산업현장에 쓰이는 것까지 다양하다. 휴대전화를 대신 걸어주는 인공지능은 사람이 손으로 번호를 누르는 대신 말만 하면 대신 전화를 걸어주고 간단한 대화도 한다. 집에서 많이 쓰이는 ‘지니’라는 인공지능은 TV를 대신 켜주는 기능부터 채널을 찾아주고 음악과 라디오도 틀어주며, 사람의 기분에 따른 대화도 가능하다.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이 대세로 가면서 외로워진 사람들은 이런 인공지능에게 괜히 실없는 말을 걸어보기도 한다.

‘이루다’가 문제가 된 것은 대화 도중에 ‘이루다’가 말하는 성희롱과 성착취 등의 내용 때문이다. ‘이루다’를 개발한 회사가 처음 의도한 것은 분명 이런 것은 아닐 것이다. ‘이루다’라는 이름이 말해 주듯이 사람 같은 인공지능, 그것도 선량한 다수의 사람 같은 인공지능일 것이다. 그리해 사람이 해야 할 일을 대신 해 주고, 사람처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인공지능을 꿈꿨을 것이다. 그러나 ‘이루다’는 개발자의 의도대로 사람처럼 대화를 나누는 것은 가능했으나 선량한 대화를 나누는 것은 어렵게 됐다. 기계인 ‘이루다’는 사람이 입력한 것만 출력 가능하며, 그것을 기반으로 스스로 성장해 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이루다’에게 어떤 것을 입력하고 가르치는가는 중요한 문제이다. 마치 어린 아이를 대상으로 교육을 하는 것처럼.

최근 불거진 이루다 사태를 보면서 이것이 마치 우리의 교육과 사회현상의 민낯을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루다’가 지속적인 입력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듯이 사람 역시 어린 시절의 교육과 사회환경에 의해 만들어진다. 선한 사람만 있는 것도 아니고 악한 사람만 있는 것도 아닌 것은 다양한 교육과 사회환경 탓이듯이 ‘이루다’ 역시 그가 처한 환경에 따라 만들어진 산물일 따름이다. ‘이루다’는 실제 연인들이 나눈 대화 데이터 약 100억 건을 딥러닝 방식으로 학습시킨 결과물이다. 그런 ‘이루다’가 여성에 대한 성희롱과 성착취, 소수자에 대한 차별 등의 언어를 담고 있다면 우리 사회가 바로 그러한 것이다. ‘이루다’는 우리 사회의 거울인 셈이다. 우리 스스로가 의식하지 못한 성차별적이고 성희롱적인 대화, 여성 혐오, 성착취에 대한 무자각, 소수자에 대한 차별 등이 ‘이루다’를 통해 고스란히 재현된 것이다. 개인정보가 당사자의 동의 없이 활용된 점도 우리 사회가 개인정보를 얼마나 함부로 다루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일 뿐이다.

‘이루다’가 이루고 싶었던 것은 어떤 사회일까. 지상낙원까지는 아니어도 사람이 평등하게 존중받는 사회, 그 사람이라는 종은 여성과 남성으로 구분하지 않고, 성에 따른 차별을 하지 않고, 특정한 성을 혐오와 희롱과 놀이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다수의 사람과 다른 소수의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한 개인이 존엄성을 가지고 살 수 있는 사회는 아니었을까. 대화 서비스 쳇봇이지만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대화를 나눌 줄 알고, 따뜻하고 서로를 배려할 줄 아는 그런 대화를 나눌 줄 아는 인공지능을 꿈꾼 것은 아니었을까. 비록 인공지능이긴 하지만 그런 사람 같은 대화를 나누고 함께 하는 ‘사람 이루다’가 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시도는 실패로 막을 내렸다.

나는 성선설이나 성악설로 인간을 나눌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이란 종은 워낙에 다양한 생각과 성품을 품고 있어서 선하거나 악하다는 하나의 기준점으로 구분할 수 없다. 인간은 때에 따라서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하다. 그러나 사람답다는 것은 짐승이 아닌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성품이 있어서일 것이다. 그런데 이번 ‘이루다’ 사태를 보면서 과연 인간은 짐승과 다르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지 회의가 든다. 사람은 사람의 가면을 쓴 짐승이 아닐까 하는 것은 사람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낸 ‘이루다’를 보면서 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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