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는 김치일 뿐

발행일 2021-02-02 14:18:59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오철환 객원논설위원
오철환

객원논설위원

중국의 전통적 채소절임요리인 파오차이가 한국으로 전파돼 김치가 됐기 때문에 중국이 김치의 종주국이라는 식으로 중국 최대 인터넷 백과사전에 등재돼 있다. 최근 중국은 파오차이를 국제표준화기구(ISO)에 채소절임음식으로 표준인증을 받은 상태다. 김치는 파오차이의 일종이며 중국에서 전해진 음식이기 때문에 중국 김치가 국제표준으로 등재돼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견강부회다.

이런 움직임에 맞장구를 치듯 유엔주재중국대사가 직접 김치를 담그는 사진을 트위터에 올렸다. 앞치마를 입고 고무장갑을 낀 중국대사가 자기가 담근 김치를 들고 엄지를 척 치켜들었다. 구독자 1천400만 명을 가진 중국 유튜버는 배추를 소금에 절이고 양념을 발라 김치를 담그는 영상을 올리면서 중국음식(#Chinese Food), 중국요리(#Chinese Cuisine)라는 해시태그를 달았다. 김치가 중국음식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동향에 대해 언제나 그러하듯 정부보다 우리나라 누리꾼이 먼저 들고일어났다. 김치는 한국의 고유음식이며 한국의 정체성과도 같은 음식이란 취지의 댓글들을 달았다. 우리 언론도 중국의 억지주장을 반박하는 보도에 나섰다. 이에 농식품부는 김치의 국제표준은 세계식품규격에 등록돼 있는 만큼 유일하다는 반응을 보였고, 세계김치연구소는 김치와 파오차이는 기술적으로 차이가 크다고 태무심이다. 참 한가하고 배부른 소리다.

중국 공산당 중앙정법위원회는 김치 종주국 논란에 대해 ‘한국의 문화적 자신감 부족으로 생긴 피해망상’이라고 불쾌감을 표했다. 중국 유명 유튜버가 한국 누리꾼의 뭇매를 맞고 있다며 김치는 중국 문화의 구우일모에 지나지 않고 이를 최초로 만든 중국은 맞서 싸워야 한다고 대응하고 있다. 중국 누리꾼은 별거 아닌 일로 시비를 건다고 비아냥거렸다. 중국의 변방 속국이었던 작은 나라가 열등감에 사로잡혀 감히 대국에게 대들고 있다는 식이다.

중국의 교묘한 김치 강탈 작전을 동북공정의 연장선상에서 진행되는 프로젝트로 이른바 김치공정이라고 보는 시각이 유력하다. 동북공정은 동북아의 역사를 중국사에 편입시키는 국책사업이다. 속지주의 관점에서 중국 변방의 역사와 문화를 중국화시키려는 야욕이다. 잠복하고 있는 소수민족 독립의 싹을 자르고 동북아의 실효지배력을 강화해 세계패권을 장악하려는 중국몽의 일환이다.

김치를 앗아가려는 무도한 시도를 어처구니없다고 안이하게 대응했다간 큰 코 다친다. 김치가 한국의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이고 세계식품규격(CODEX)에 등록돼 있다고 안심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다. 중국이 몸집을 불려가면서 전 방위적으로 집요하게 압박할 건 뻔하다. 터무니없다든가 순 억지라든가 어불성설이라고 점잖게 반박한다 해 주저앉을 턱이 없다. 중국은 우공이산이란 고사가 상식처럼 수용되고 있는 나라다. 지치지 않고 꾸준히 치고 빠지길 반복할 것이다.

영국 BBC가 우리 편을 들고 있다고 마음 놓지 말아야 한다. 파오차이 표준과 김치는 무관하다고 국제표준화기구(ISO)가 밝혔다고 안도하고 있을 처지가 아니다. 그 정도에서 물러설 것 같았으면 아예 처음부터 시작하지도 않았을 터다. 중국은 장기적으로 틈만 나면 계속 여기저기 찔러볼 것이다. 집적거리다가 빈틈만 보이면 치고 들어온다. 오랜 역사를 통해 늘 그렇게 해왔다. 중화사상이란 중국이 세상의 중심이니 자기 마음대로 하겠다는 자기중심주의에 다름 아니다.

국제관계는 힘으로 짜여 지는 질서 체계다.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부문이 힘 있는 나라를 중심으로 굴러간다. 힘 앞에 명분과 정의가 짓밟히는 현상을 지난 역사 속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를 위시한 대부분 우방이 UN에서 자유중국을 몰아내고 그 대신 중국을 선택했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선 무엇이든 한다는 비정함을 잘 보여준다. 잘못하면 김치 종주국 논란도 중국의 힘에 휘둘릴 수 있다.

빼앗긴 후에 그 소중함을 안다면 이미 늦는다. 유비무환이고 공격이 최선의 방어다. 김치를 빼앗기기 전에 미리 대비를 잘 해둬야 한다. ISO 등 각종 세계기구에 빠짐없이 김치를 등록해두고 세계인을 상대로 ‘김치는 곧 대한민국’이란 홍보를 지속적으로 행하는 수밖에 뾰족한 방법이 없다. 김치를 파오차이라고 번역해주는 일은 정말 바보짓이다. 김치는 그냥 김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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