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철환 객원논설위원
▲ 오철환 객원논설위원
오철환

객원논설위원

자승자박은 글자 그대로 ‘자신의 밧줄로 자신을 묶는다’는 의미다. 반고의 ‘한서’에 나오는 ‘자박’에서 그 유래를 찾는다. 항복의 표시로 자신의 몸을 묶고 용서를 구하는 상황에서 쓰였다. 지금은 이 사자성어가 쓰이는 상황이 바뀌었다. 자신의 언행이나 자신이 판 함정 또는 자신이 만든 규범에 의해 자신이 당하는 상황에서 이 말이 어울린다. 자업자득이나 작법자폐와 거의 동의어로 쓰인다.

법가사상을 대표하는 진나라 상앙의 고사가 자승자박의 사례로 인구에 회자된다. 상앙은 철권통치 수단으로 거열형이란 형벌을 창안했는데 정작 본인도 거열형으로 몸이 찢기고 만다. 서양의 사례도 많지만 프랑스대혁명 당시 공포정치를 했던 로베스피에르의 경우가 가장 극적이다. 루이 16세와 당통을 비롯한 수많은 정적들을 기요틴으로 처형했던 로베스피에르는 테오미도르의 반란으로 실각한 후 그 자신도 수많은 사람을 처형했던 기요틴에 올라가 처형됐다.

우리나라 국회선진화법도 자승자박의 좋은 본보기다. 국회선진화법에는 패스트트랙, 필리버스터, 예산안의 본회의 자동부의, 폭력을 동반한 회의방해 금지 등이 포함된다. 물리적 충돌보다 정당 간 대화와 타협을 통한 선진 국회를 만들자는 선한 취지로 만들었지만 도입 취지와 달리 다수당의 독단적 전횡을 조장하고 소수당의 손발을 묶는 도구로 전용되고 있다. 국회가 스스로 자기 몸을 묶은 꼴이다.

패스트트랙은 효율적인 국회 운영이라는 명분을 달고 있지만 날치기 도구로 그 막강한 위력을 보여줬다. 우격다짐으로 통과시킨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야당과 협의 없이 출범시킨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긁어 부스럼’ 꼴이 된 검·경수사권 조정 등이 그 결과물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비례대표용 정당으로 유명무실해졌고, 공수처는 권력의 수호천사로 전락될 낌새가 엿보이며, 검·경수사권 조정은 심각한 갈등만 부추기고 있다.

국회선진화법의 반전은 가히 자승자박의 백미다. 법안을 발의한 정당이 그 법으로 인해 피해를 당하고 있다. 국회선진화법을 발의한 정당은 당시 여당이었던 ‘국민의힘’ 전신인 새누리당이었고, 그 피해를 보고 있는 정당도 현재 제1야당인 ‘국민의힘’이다. 여당의 과반의석 확보가 어렵다고 보고 야당의 국회 장악을 막으려는 의도로 국회선진화법을 발의했지만 결과적으로 스스로 손발을 묶은 불행만 자초했다.

공수처가 집권당의 밀어붙이기로 우여곡절 끝에 출범했다. 중립적인 수사는 공수처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으로 인사의 공정성에 달려있다. 그 공정성이 절차적으로 담보되지 않은 상황이 우려스럽다. 공정성이 무너지면 공수처는 그 존재이유를 상실한다. 처장과 수사관들의 선임에 임명권자와 집권당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은 불속의 화약이다. 처장과 차장이 수사경험이 없는 법관 출신이라는 점도 전문성을 의심케 한다. 전문성이 떨어지면 공수처는 허수아비가 될 수 있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선의로 시작한 제도가 제 역할을 못하거나 거꾸로 기능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시행 초기에 그 선의가 의도한 대로 성과를 거두었다고 하더라도 끝까지 지켜진 경우는 드물다. 좋은 취지대로 제도가 기능할 수 있도록 애초에 견제와 균형 장치를 세심하고 정밀하게 마련해 둘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제도는 사람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질 것이다. 운용의 묘를 기대하기엔 인간이 너무 간악하다. 태생적으로 공수처는 누구도 제어하기 힘든 권력기관이다. 권력 남용 위험은 늘 가까이에 상존하고 부패로 이어질 개연성은 운명이다. 간혹 있으나마나한 기관으로 전락할 수도 있긴 하다.

공수처는 권력의 해바라기가 되기 십상이다. 집권세력을 지키고 야당을 겁박하는 기구로 안성맞춤이다. 임명권자가 그렇게 만들어 갈 것이다. 그만큼 부패의 대가는 커지고 고위직의 역동성은 죽는다. 공수처가 자승자박의 사례로 뭇 사람의 입에 오르내릴 가능성이 크다. 마르고 닳도록 집권하고 싶겠지만 현실은 냉정하다. 권력은 늘 예상보다 수명이 짧다. 집권세력이 바뀌면 공수가 교체된다. 세상이 바뀌면 자기편이라 믿었던 우군에게 발등 찍힌다. 그럴 리가 없다고 할 터이다. 잘못 될 수 있는 일은 결국 잘못 되게 마련이다. 공수처가 자승자박이 될 사실을 혜량한다면 좀 더 겸손해질 일이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저작권자 © 대구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