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한 겨울에도 노란 참외를 맛본다||한국인의 영원한 ‘최애 성주참외’는 농민과 자연의

▲ 배태훈 대표가 올해 첫 수확(1월15일)한 참외를 무게별로 선별 후 상자에 포장작업을 하고 있다.
▲ 배태훈 대표가 올해 첫 수확(1월15일)한 참외를 무게별로 선별 후 상자에 포장작업을 하고 있다.
2천500년 전의 공자가 오늘날 환생한다면 어떻게 될까.

많이 혼란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공자는 논어 ‘향당’편에서 음식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했다.

자신의 식생활을 그대로 옮긴 듯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그 중에 ‘실임불식 불시불식(失飪不食 不時不食)’이라는 구절이 있다.

‘잘 익지 않은 것과 제철 음식이 아니면 먹지 않는다’는 말이다.

제철 음식이 좋다는 말일 것이다.

지금은 어떤가.

이제 제철음식이란 의미는 많이 옅어졌다.

재배와 저장 및 유통 기술의 발달로 음식의 철이 없어져 가는 시대가 된 것이다.

사시사철, 어디서나 원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

봄철 과일이었던 딸기는 겨울 과일로 바꿨고, 여름 과일이던 참외는 봄철 과일로 변했다. 심지어 한 겨울에도 나온다.

참외의 고장인 성주에서는 1월이면 참외가 나온다.

참외 조기재배로 소득을 높이는 청년 강소농을 만났다.

‘태훈이네 성주꿀참외’ 농장를 운영하는 배태훈(35) 대표의 농사 이야기다. 배 대표는 2014년 귀농해 부모님과 함께 2만3천여 ㎡의 참외를 재배하고 있다.

▲ 배태훈 대표가 어머니와 함께 올해 첫 수확(1월15일)한 참외를 무게별로 선별 후 상자에 포장작업을 하고 있다.
▲ 배태훈 대표가 어머니와 함께 올해 첫 수확(1월15일)한 참외를 무게별로 선별 후 상자에 포장작업을 하고 있다.
◆청년의 자연스러운 귀농

배 대표는 참외의 고장인 성주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학창시절 잠시 대구에서 지냈지만 항상 고향과 함께 했었다.

농촌은 자연스러운 생활의 일부였다.

주말과 방학에는 언제나 부모님의 일을 도왔다.

주변에서 꼬마 농사꾼이라는 말을 할 정도였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참외거적을 벗기고 참외 접을 붙였다.

참외를 수확하고 날랐다.

누가 시켜서 한 것이 아니라 좋아서 했다.

농사꾼의 DNA를 타고 난 듯 적성에 맞았다.

대학에서 식품공학을 공부하고 식품회사에 취업해 6개월 간 일했다.

그때 아버지의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

어머니 혼자서 감당하기는 농장의 규모가 너무 컸다.

주말마다 농사일을 도왔으나 직장일과 농사일을 병행하기는 버거웠다. 그래서 귀농을 결정했다.

농장이 있고, 참외 기술자인 아버지가 계시니 걱정할 일이 없었다.

참외가 고소득 작목이라 수입에 대한 걱정도 적었다.

배 대표의 귀농은 거창한 계획을 세우고 들어온 귀농이 아니라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뤄진 귀농이었다. 아침에 외출했다가 저녁에 귀가하듯이, 주말에 고향집에 다니러 오듯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남들보다는 좋은 조건을 물려받은 승계농이지만 여기에 안주하지는 않았다.

자신만의 농사철학과 목표를 위해 달려가는 청년농부로 변신하고 있었다.

▲ 배태훈 대표가 참외 하우스에서 야간 보온용으로 덮었던 비닐를 벗기고 있다. 1월에는 통상적으로 오전 10시 전후에 벗긴다.
▲ 배태훈 대표가 참외 하우스에서 야간 보온용으로 덮었던 비닐를 벗기고 있다. 1월에는 통상적으로 오전 10시 전후에 벗긴다.
◆조기재배의 승부수

일하는 중에도 전화가 쉬지 않고 울렸다.

가락시장에서부터 과일가게, 지인들이 참외를 보내 달라는 전화였다.

그는 “첫 수확이 알려지면서 주문은 늘어났지만, 아직은 수확량이 충분하지 않아 다 보내지 못하고, 주문 순서에 따라 보낸다”고 설명했다.

배 대표는 지난 1월15일 참외를 첫 수확했다.

지난해 11월 시설하우스 29동에 모종을 심은 뒤 두 달 만이다. 10㎏짜리 80상자를 수확했다.

상자 당 평균 13만 원에 판매됐다.

본격적인 수확기인 3~4월과 비교하면 제법 비싼 가격이다.

배 대표는 2014년부터 조기재배를 시작했다.

소득 단절기인 겨울철에 소득을 확보할 수 있고,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조기재배의 비결은 온도관리다.

조기재배로 1월에 수확을 하지만 가온시설이 없다.

단순히 보온덮개를 이용해 온도를 관리한다.

보온덮개의 두께와 개폐시간을 통해 조절한다. 해 뜨는 시간에 맞춰 보온덮개를 먼저 벗기고 오전 10시께 비닐을 벗긴다.

오후 4~5시 다시 덮지만 그날그날 날씨에 따라 다르다.

하우스 내부 온도가 너무 낮으면 착과율이 떨어지고 높으면 웃자라기 때문에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조기재배는 1월에 수확을 시작해 7월까지 생산이 절정에 이르지만 추석 전후까지 계속 수확한다.

▲ 배태훈 대표가 수확한 참외를 하우스에 설치된 운반기를 이용해 운반하고 있다.
▲ 배태훈 대표가 수확한 참외를 하우스에 설치된 운반기를 이용해 운반하고 있다.
◆황토로 땅심 팍팍!!

모든 작물에 있어서 토양관리는 가장 중요한 요건 중의 하나다.

건강한 땅에서 좋은 농산물이 생산되고, 생산량도 늘어난다.

토양관리는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농부의 숙제다.

배 대표도 유기질 공급과 토양소독에 정성을 쏟는다.

지력 증진을 위해서는 직접 제조한 퇴비를 사용한다.

메추리 분변에 수피(나무껍질)를 혼합해 1년 동안 완전히 부숙시켜 사용한다.

화학비료를 최소화 하면서도 양질의 유기질을 공급하기 위한 것이다.

연작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토양소독도 빠트리지 않는다.

참외 수확이 끝나면 넝쿨을 뽑아 가운데로 모으고 바닥 전체를 비닐로 덮어 측창을 내려 하우스를 완전 밀봉한다.

온도를 높여 선충이나 흰가루병 등 각종 병해충을 박멸하기 위해서다.

이때 하우스 내부 온도는 60℃를 웃돈다.

약제가 아닌 태양열로 소독하는 것.

또 하우스에 물을 가둬 토양에 축적된 염류성분을 제거한다. 매년 하우스 한 동에 2t의 황토를 뿌려주는 것도 특별한 관리법이다.

이는 신선한 황토로 토양의 활력을 높여주는 비결이자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노하우다. 이런 노력 덕분에 당도가 높고 아삭한 식감을 가진 고품질의 참외가 나온다고 한다.

▲ 하우스 내에서 노랗게 익어가고 있는 참외.
▲ 하우스 내에서 노랗게 익어가고 있는 참외.
◆최애 성주참외는 농민과 자연의 합작품

1928년 발행된 ‘별건곤(잡지)’ 제14호에 실린 ‘참외로맨스’에 ‘참외는 평민적인 과일이고 여름철 명물이다’라는 내용이 있다.

다른 과일들은 군것질감에 불과하지만 참외는 군것질감이면서 요깃감이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먹거리로서 참외의 가치를 평가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에는 성환참외와 무등산참외, 평양참외가 명물이라고 했다.

평안도 벽동지역에서 불리던 아리랑에 ‘시집을 못가면 못가지 참외 안 먹고는 못가겠네’라고 하는 구절이 전해질 만큼 벽동참외의 인기가 대단했을 것으로 보인다.

불과 100여 년 전의 일이다.

그럼 당시에는 거론되지 않았던 성주가 어떻게 참외의 고장이 됐을까.

전국 참외면적의 70% 이상이 성주에서 재배된다.

단일 작목이 이정도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사례는 없다. 지난해 3천848곳의 농가가 3천422㏊의 면적에서 18만6천500여 t의 참외를 생산했다.

전체농가의 62%가 참외를 재배한다. 올해 생산 목표액이 6천억 원이다. 성주군 농업 조수익 목표가 1조 원인 것을 감안하면 참외는 제1의 성장 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성주는 참외 재배의 최적지라고 한다.

낙동강의 풍부한 수자원과 비옥한 토양, 풍부한 일조량 등 참외 재배에 필요한 모든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여기에 농민들의 노력이 더해졌다. 1940년대부터 참외 재배기술을 축적해 왔다.

품종개량과 육묘기술, 전용비료 개발, 방제기술, 꿀벌 수정 등을 통하여 품질을 끌어 올렸다. 보온덮개 자동개폐기와 자동세척선별기, 운반기 보급 등을 통하여 노동력을 절감했다.

노동력 절감은 재배면적 확대와 소득 증가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

성주참외의 명성은 자연환경과 농민들이 힘을 모은 합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는 그 누구도 넘보기 힘든 참외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 수확한 참외가 세척 및 선별 작업을 기다리고 있다.
▲ 수확한 참외가 세척 및 선별 작업을 기다리고 있다.
◆규모 확대와 스마트팜 도입

배 대표는 “참외 재배는 힘은 많이 들지만 고수익 작물이다”며 “규모 확대를 통해 보다 안정된 고소득 농가로 정착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현재는 2만3천㎡를 재배하지만 4만㎡로 확대 할 계획이다.

규모 확대에 따라 늘어나는 노동력에 대처하고자 1차적으로는 농장 근로자를 채용해 노동력을 흡수하기로 했다.

이어 점진적으로 스마트팜 시설을 갖춰 적은 노동력으로 고소득을 올리는 방향으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또 공판장 출하와 농장 직거래 위주의 판매에서 벗어나 전자상거래를 확대함으로써 제값을 받는 농산물의 위치를 다져 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조만간 결혼을 하면 본인은 생산에 치중하고 아내는 전자상거래와 스토리텔링을 통한 농장 홍보를 전담할 계획이다.

가족 간에 역할분담을 통해 시너지효과를 높이겠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농부를 단순히 농사를 짓는 것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킨 사업의 개념을 도입해 농촌과 농지를 고수익을 창출하고 부를 축적하는 산업현장으로 전환시켜 나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와 함께 안전한 먹거리를 공급하는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지키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겠다는 꿈을 가진 청년농부의 모습이 든든해 보였다.

▲ 참외하우스 내부 모습.
▲ 참외하우스 내부 모습.
글·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민간전문위원)



이동률 leedr@idaegu.com
저작권자 © 대구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