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저만치가 인생이다 저만치,//비탈 아래 가는 버스/멀리 환한/복사꽃//꽃 두고/아무렇지 않게 곁에 자는 봉분 하나

시조집 「춤」 (문학수첩, 2013)

홍성란 시인은 충남 부여 출생으로 1989년 중앙시조백일장 장원으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황진이 별곡’, ‘춤’, ‘따뜻한 슬픔’, ‘바람 불어 그리운 날’, ‘바람의 머리카락’, 단시조집 ‘소풍’, 시선집 ‘명자꽃’, ‘백여덟 송이 애기메꽃’과 한국대표명시선100 ‘애인 있어요’, 우리시대 현대시조 100인선 ‘겨울 약속’, 편저로 ‘중앙시조대상 수상작품집’ 등이 있다. 그는 천부적인 시인이다. 개성적인 발화와 새로운 미적 질서 창조에 능하다. 타고난 언어 감각과 이미지 구현 능력으로 자신만의 고유한 음역을 확보해 부단히 창작의 길을 걷고 있다. 법고창신이다. 완벽과 천의무봉은 시를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꿈꾸기 마련이다. 그의 시조는 그러한 진경의 세계를 엿볼 수 있는 모델이 될 만하다.

‘소풍’이라는 제목에서 천상병 시인의 명편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지상의 모든 이들은 지나감의 형적의 길을 걷고 있는 순례자일 뿐이다. 이 세상은 영원히 머무를 곳이 아니라 잠시 살다가 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땅의 삶에 모든 것을 걸 수는 없다. 모름지기 다음 세상에 대한 기대와 열망을 가져야 마땅하다. 그리해 여기서 저만치가 인생이다 저만치, 라는 초장은 의미심장한 울림을 안긴다. 소월의 ‘산유화’에서 효과적으로 쓰인 저만치, 가 두 번 되풀이 되면서 생사의 거리 혹은 미학적 거리를 다시금 상기하게 된다. 비탈 아래로는 버스가 가고 있다. 버스에는 삶에 부대끼곤 하는 많은 사람이 타고 있다. 그들은 지금 소풍 가는 길이다. 그리고 멀리 환한 복사꽃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아마 버스에 탄 이들은 모두 복사꽃을 바라보며 마음이 크게 설레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눈여겨봐야 하는 정경이 있다. 꽃 두고 아무렇지 않게 곁에 자는 봉분 하나다. 봉분은 죽은 자가 잠든 곳이다. 그는 다시 무덤을 젖히고 지상의 햇볕을 쬘 수가 없다. 봉분은 하염없이 잠을 잔다. 곁에 복사꽃이 피어도 다른 반응을 나타내지 못한다. 여기서 다시금 상기할 것은 버스가 지나는 길이다. 그곳은 비탈길이다. 위험한 곳이다. 인생의 의미를 골똘히 성찰케 한다. 그래서 봉분과 버스는 절묘한 대비를 이룬다. 그 사이에 복사꽃이 피어 있다. 산 자는 그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느끼지만 죽은 자와는 전혀 상관없는 정황이다. ‘소풍’은 봄나들이에서 스쳐지나가는 정경을 애틋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중에 순간 포착으로 채어 올린 노래다. 단시조의 맛과 멋이 웅숭깊다. 시조의 새로운 진경이다.

‘들길 따라서’도 ‘소풍’ 못지않은 절창이다. 발길 삐끗, 놓치고 닿는 마음의 벼랑처럼 세상엔 문득 낭떠러지가 숨어 있어 나는 또 얼마나 캄캄한 절벽이었을까, 너에게, 라는 노래는 뺄 것도 더할 것도 없는 완벽에 가까운 탄주를 보인다. 누구에게나 마음의 벼랑은 있게 마련이고 세상엔 낭떠러지가 숨어 있어 너에게 나는 캄캄한 절벽일 적이 적지 않았을 터다. 내가 너에게 절망이듯이 너는 나에게 또한 절망이었기에 서로가 서로의 아픔이면서도 때로 희열이었으리라. 서정적인 제목인 ‘들길 따라서’가 이토록 가슴을 치는 것은 동원된 모든 시어들이 적절히 배치된 점과 남다른 심미안으로 전편을 미려하게 직조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삼월이다. 산수유, 목련, 개나리, 복사꽃, 배꽃이 차례로 피어날 것이다. 단시조 ‘소풍’ 과 ‘들길 따라서’를 음미하며, 꽃단장하고 봄나들이를 나설 일이다. 이정환(시조 시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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