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철환

객원논설위원

대통령이 부산을 방문해 가덕도신공항을 독려한 다음날 가덕도신공항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몇 번에 걸친 평가 때마다 꼴찌를 했고 가덕도 입지의 문제점을 귓등으로나마 수차례 들었다. 턱도 없는 일이라 생각했는데 그래도 모험을 감수할 만큼 부산시장이 그렇게 대단한 자린지 처음 알았다. 법과 상식이 무너졌다. 부산, 울산, 경남 등이 잘 되는 일이라면 대구, 경북 등 이웃지역에도 떡고물이 떨어질 건 뻔할 것이고, 국가적으로도 당연히 바람직할 것이다. 행정구역이야 구분돼 있지만 생활이나 경제는 경계가 없기 때문이다.

가덕도신공항은 그 입지선정이나 특별법 제정에 앞서 경제적 타당성분석이나 이용편의성분석, 환경영향평가분석 등이 선행돼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어떤 과정을 거쳐 경제적 효과가 어느 정도 향상되는지, 그 전후방효과는 어떠한지 등이 시뮬레이션이나 산업연관분석 등을 통해 밝혀져야 한다. 시민의 편의성이 지금보다 얼마나 증가하는지, 자연환경을 파괴하거나 생활환경을 해치는 영향은 없는지 등 연구·검토할 사항이 많다. 인천공항의 경우만 봐도 신공항의 필요성 제기부터 개항까지 근 이십년이 걸렸고 타당성조사 및 기본설계만 대략 4년이 소요됐다.

신공항 건설은 충분한 사전 연구·검토가 필수적이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당파적 이해관계로 밀어붙일 사안이 아니다. 지역 간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갈등의 문제가 아니고 경제성 여부에 대한 정책결정 내지 정파 중립적인 의사결정의 차원에서 봐야 한다. 또한 단기적 일회성 민원해결 사안이 아니고 되돌리기 힘든 비가역적이고 장기적인 대역사다. 계속적인 비용지출을 유발하고 장래를 향해 지속적으로 영향을 준다. 신중하고 정밀하게 장기간 연구·검토하는 일이 결코 낭비가 될 수 없는 이유다.

최소한 경제적 측면에서 부산과 인근지역에 활력을 불어넣는다는 연구결과라도 앞세운다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여지도 있다. 허나 무안, 양양, 예천 등의 사례에서 보듯 부산경제를 살리기는커녕 오히려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더 크다. 바다에 헛돈을 얼마나 쏟아 부을지는 논외로 하고, 기반이 약한 외해 해상공항의 유지관리에 예산을 무한정 지원할 정도로 부산시민의 자부심을 충족시켜주는 역할이라도 한다면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찮은 보궐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서 가덕도신공항 카드를 단지 선심성 표 구걸용 선물로 망설임 없이 내놓는 현실이 당혹스럽다 못해 참담하다.

2002월드컵을 치르기 위해 광역단체마다 대규모 축구장을 경쟁적으로 건설했다. 끝나고 나도 경제적 활용가치가 있다고 했지만 이는 지금 대부분 예산 먹는 하마신세로 전락했다. 새만금간척사업, 영암 국제자동차경주장, 여수 세계박람회장, 시화호 등 유사사례는 비일비재하다. 치밀한 연구·검토 없이 우격다짐으로 결정된 정략적 사업들이 표류하면서 국민의 혈세만 낭비되고 있다. 그래도 교훈을 얻지 못하고 또 새로운 실패의 본보기를 더 만들 요량인지 지금도 경쟁적으로 허술한 공약사업을 남발하고 있다. 대규모 해상풍력단지, 한전공대, 공공의대 등 표심을 유혹하는 얄팍한 포퓰리즘은 끝이 없다.

당리당략에 의한 잘못된 사업은 보통 선거공약을 통해 양산된다. 선거에서 승리한 당선인은 다음 선거를 위해 선거공약을 챙기게 마련이다. 공익단체나 언론도 공약이행을 독려한다. 그러다 보니 대통령을 비롯한 선출직은 공약에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당선되고 보자는 심리에서 표만 될 것 같으면 무엇이든지 무분별하게 공약으로 채택하곤 한다. 이러한 현상을 방관하기엔 그 대가가 너무 가혹하다. 시민을 위하는 공약, 국민에게 이득이 되는 공약,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공약 등을 검증해 공인해주는 시스템을 개발·도입하는 일이, 비록 엄청 어렵겠지만, 시급하고 긴요하다. 최종적으로 유권자 몫이기도 하다.

단임 대통령의 경우 차기를 준비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당파적 이해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의리상 당파를 떠날 수 없겠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얽매일 이유는 없다. 단임이라는 의미는 장기집권을 예방하는 의미도 갖지만 당파에서 벗어나라는 함의도 있다. 단임 대통령은 오직 국민만 보고 가면 된다. 1년만 더 하면 집으로 갈 사람이 무리하게 당파에 연연하는 모습은 정말 이해하기 힘들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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