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명희 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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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희

의사수필가협회 홍보이사

물병에 꽂아 놓은 나뭇가지에 벚꽃이 벙글었다. 그동안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다시 봄꽃들이 피어나 시간을 재촉하면 봄이 가고 여름이 올 것 같다.

일상에 작은 변화를 시도했다. 몇 번씩 응급실 야간 근무를 서기로 한 것이다. 밤에는 선별 진료소 업무도 같이하기에 아무쪼록 별일 없이 지나가기를 바라며 출근했다. 자리하자마자 코로나 검사를 하러 오는 젊은이들이 줄을 지어 늘어선다. 밝은 표정의 앳된 얼굴들이다. 소풍 온 듯이 재잘대는 이들도 많다. 검사하러 밤에 오는 이들은 검사 통보 문자를 받고 오는 이가 많아 메모해둔다. 메모에는 식당, 노래방, 사무실 등에 확진자가 나와서라고 적거나 출국용 검사, 또는 병간호를 위해 필요한 검사가 많았다. 시간을 못 맞추다 보니 밤에 검사하러 온 모양이다. 어느 고깃집에서 식사한 이들이 밤에 검사하러 왔다. 접수하는 직원은 ‘oo숯불 확진자 접촉자’로 메모를 해주더니 밤이 이슥해지자 어느 순간부터 ‘oo 수뿔’로 메모 내용이 바뀌어 있는 것이 아닌가. 졸음도 오고 피곤도 하니 직원이 ‘뿔’이 난 모양이라 생각했다. 맞춤법에 맞게 글자를 일일이 고쳐가며 진료기록을 작성하고 처방을 냈다. 검사에 대한 설명과 검사 결과 나올 때까지 자가 격리해야 함을 일러주면서도 머리에는 의아한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자정이 넘어가는 시각, 잠시 쉬는 틈을 내 이야기를 건넸다. 잠을 못 자니 “숯불이 수뿔로 바뀌는군요” 그러자 바로 답이 왔다. 처음엔 숯불인 줄 알고 그렇게 적었는데 자꾸만 수뿔이라기에 수신한 문자를 보여달라고 했더니 수뿔로 되어있더라나? 검색하니 정말이지 숯불이 아닌 수뿔로 인터넷에 떠 있었다면서. 갑자기 웃음보가 터진다.

한때 떨어진 청바지가 참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나이 차 많이 나는 어린 사촌 동생이 대학 동아리행사에 참가하게 됐다. 설레는 마음으로 이것저것 준비해 머리맡에 놔두고 잠든 딸아이의 청바지를 본 그의 어머니. 너무도 낡고 군데군데 구멍이 나 있어서 마음이 짠하게 아팠다. 그 연세 많은 어머니가 그냥 있었으랴. 잘 보이지도 않는 바늘귀를 꿰어 밤새 하나하나 깁고 메워 구멍 없이 떨어진 곳 없는 청바지로 탈바꿈 시켜 놨다는 이야기. 아침에 일어난 딸의 반응은 어떠했으랴. 몇몇이 모이기만 하면 그 모녀 이야기를 상기하면서 배꼽을 잡곤 했다.

아들이 오늘 배달돼 온 물건을 보더니, 한마디 톡 던진다. ‘혜자스럽네~!’ 무슨 말인가 싶어 빤히 쳐다보니 내게 가르치듯이 그 말의 유래를 읊는다. 편의점 도시락에서 유래했다나? 연예인 김혜자씨와 김창렬씨가 모델인 도시락이 있는 모양이다. 김혜자씨가 모델인 도시락은 가격대비 가성비가 좋았지만, 김창렬씨가 모델인 도시락은 가격은 비싼데 가성비가 덜 좋아 보이는 편이라고. 그래서 편의점을 이용하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가성비를 따질 때 ‘혜자스럽다. 창렬스럽다’라고 하는 말이 생겨난 것 같단다. 아이들 사이에서는 그 말이 그냥 입에 붙어 다니는 모양이다. 새 시대다. 새로운 용어가 넘쳐난다.

‘방만빌리지’도 인기다. 방만한 마을이 아니다. 팬데믹의 장기화로 호텔에서 휴식을 겸해서 근무하는 워크케이션족들이 늘면서 서울 도심 호텔이 만든 장기투숙 프로그램이다. 이 빌리지에는 일도 하고, 휴식도 취하는 비즈니스맨들이 적지 않다. 일과 생활이 모두 가능해 독립적이고 안전한 투숙을 원하는 비즈니스 고객의 필요에 맞는 장기 투숙 프로그램인 방만빌리지는 호텔 이비스가 만든 프로그램 이름이다. 가심·가성비 때문에 한국에 거주하는 내·외국인 비즈니스 고객들이 관심을 둔다고 한다. 점차 호텔 내 하나의 ‘마을’이 돼가려는 모양이다.

“김떡순 튀어라”를 휴대폰에 저장해둔 지인도 있다. 굵은 세로 서체로 쓴 제목 옆에 메뉴가 적힌 분식점. ‘김밥, 떡볶이, 순대. 튀김, 어묵, 라면’ 웃음이 빵 터지지 않는가. 우연히 지나다 발견한 것이 기발한 발상이기에 사진으로 저장해두고 열어보면서 웃어 본다는 분이다. 참 기발한 작명에 더 참신한 웃음이 아니겠는가.

코로나 시대엔 ‘집콕’이 대세인 것 같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좁은 공간을 넘어 상상의 나래를 펴 봄이 어떠할까.

늘 조심조심 지내더라도 항상 열린 마음으로 서로의 안부를 물어가면서 함께 한다면 ‘수뿔’도 어색하지 않으리. 우정은 산길과 같아서 오가지 않으면 길이 없어진다고 하지 않던가.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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