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어느 봄날/ 나의 빈 정원에 환한 햇살로 다가와/ 메마른 가지에 잎을 돋우고 꽃을 피워 주었습니다// 그대를 만나면/ 숲을 거니는 거 같고 나무 향기가 납니다/ 꾸미지 않아도 빛이 나고/ 늘 가지런히 정돈된 정갈한 마음에/ 나도 덩달아 샘물처럼 맑아집니다// 그대를 만나/ 겸손과 배려 인품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았습니다/ 말하지 않고 눈빛만으로 큰 느낌을 줄 수 있다는 걸 배웠습니다// 그대는/ 설익은 나를 영글게 하려 늘 햇살을 주고/ 모난 나를 다듬어 주었습니다/ 오래 오래 그대와 함께 걸으며/ 세상을 이야기하며/ 당신과 같이 곱게 곱게 물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대구문학」 (대구문인협회, 2019. 7)

가인(佳人)은 아름다운 사람이다. 주로 얼굴이나 몸매 따위가 아름다운 여자를 말한다. 가인은 애정을 불러일으키는 이성인 셈이다. 유물론적 입장에서 보면 외모가 아름다우면 성정도 그에 맞춰 따라간다고 볼 수 있다. 예쁜 꽃이나 앙증맞은 강아지를 비롯한 아름다운 것들을 보다보면 잠시나마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이 정화되는 것을 느낀다. 매년 꽃놀이나 단풍놀이 인파가 그치지 않고 절경을 보러 가는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 그게 자연이든지 인공물이든지 가리지 않고 돈과 시간을 들여 찾아다닌다. 인간이 아름다운 것들을 즐기는 모습은 유물론을 쉽게 부정하지 못하는 근거로 작용한다.

사람도 예외일 순 없을 듯하다. 미인은 보는 사람에게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면에서 꽃과 다름없다. 남자든 여자든 잘 생긴 사람을 보노라면 그 순간만이라도 동공이 확장되고 피돌기가 촉진된다. 외적인 비주얼만 보고 호감을 갖는다든가 비호감을 느낀다든가 한다. 연예인은 말할 것도 없고 각종 공직선거에서조차 외모나 인상이 당락에 영향을 미친다. 사정이 그러하다 보니 뷰티산업이 성장산업으로 각광을 받고 성형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는 추세다. 염색이나 모발이식도 그와 유사한 시각에서 해석할 수 있다.

그렇지만 시인에겐 유물론 보단 유심론 쪽으로 마음이 기운다. 가인은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이고 정신이 맑은 사람이다. 굳이 여자일 필요도 없고 이성일 까닭도 없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아름다움이란 것도 마음먹기 나름이다. 마음이 아름다우면 얼굴이나 몸도 예뻐 보인다. 정신이 맑으면 몸가짐도 똑바로 선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는 법이다. 흔히 좋아하고 사랑하면 예뻐진다고 하지 않는가. 싫어하는 마음이 생기거나 밉게 보면 그 얼굴만 나타나도 고개를 돌리고 그 목소리마저 듣기 싫어진다. 몸은 허상이고 마음이 본질이다.

내가 빈 정원이라면 가인은 밝고 따스한 햇살이다. 햇살은 메마른 가지에 새순을 돋우고 꽃을 피운다. 가인을 만나면 숲을 거니는 듯 나무향기가 그윽하다. 마음은 샘물처럼 맑고 정갈해진다. 배려하는 마음가짐으로 마음을 비우고 눈빛만 보고도 서로의 마음을 느낀다. 모난 부분을 다듬어주고 어설픈 영혼을 성숙하게 보듬어 준다. 한평생 가인과 함께 하며 그렇게 한 세상을 살고 싶다. 황혼의 저녁노을을 보면서 나란히 함께 앉아 발갛게 물들이고 싶을 뿐이다. 시인에게 가인은 존경하는 사람이고 사랑하는 사람이다. 강력한 내공이 뿜어내는 아름다움이 온몸을 사로잡는다. 가인을 만나 인생이 행복하다.

오철환(문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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