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마음이 소란해서 산문에 들고/오늘은 춥고 배고파서 산문을 나섰다/내일은 적막 그리워 산문을 서성일까

시집 「신의 잠꼬대」(시와반시, 2021)

장하빈 시인은 경북 김천 출생으로 1997년 시와 시학 신인상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비, 혹은 얼룩말’, ‘까치낙관’, ‘총총난필 복사꽃’, ‘신의 잠꼬대’가 있다. 그의 이번 시집 ‘신의 잠꼬대’에는 마흔 편의 짤막한 시가 실려 있다. 선시 혹은 잠언 같은 촌철살인의 시편이 곳곳에서 형형한 눈빛을 쏜다.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는 힘이 느껴진다. 시조 형식에 근접한 시가 꽤 있다. 의식하고 썼든 그렇지 아니하든 시인의 내면에는 시조 가락이 면면히 흐르고 있다는 한 방증이 되겠다.

‘산문’은 어제는 마음이 소란해서 산문에 들고 오늘은 춥고 배고파서 산문을 나섰다, 라고 담담하게 읊조리다가 내일은 적막 그리워 산문을 서성일까, 하고 자신에게 혹은 많은 이들에게 나직하니 질문을 던진다. 마음이 소란스러울 때 산문에 들면 무언가 정돈되는 느낌이 들 것이다. 그렇지만 춥고 배고플 때는 산문을 나서는 것이 옳다. 단순한 추위, 육신의 허기만은 아닐 것이다. 종장에서 산문을 다시 서성거리게 될 자아를 떠올린다. 화자는 적막이 그리웠기 때문이다. 한 그릇의 따뜻한 밥도 소중하지만 사람은 빵으로만 살 수가 없는 존재가 아닌가? 적막이 그립다는 것은 시가 그립다는 것일 수도 있고, 혼자만의 골방을 확보하고 싶은 마음의 표현일 수도 있겠다. 산문을 서성일까, 라는 결구는 중의적으로 읽히기도 하는 점이 이 작품의 또 다른 매력일 것이다. 산문 속을 서성이는 것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이즈음 여행과 산책을 통한 명상적 시 쓰기에 몰입하고 있는 시인은 시조 가락이 내재된 여러 편의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장미’에서 나는 장미와 사랑을 꿈꾸어요, 뱀이나 여우라는 이름으로 불리어도 향기로우니까, 라고 말하다가 장미를 사랑하면 가시도 꾹꾹 삼킬 수 있을 테니까, 라고 노래하고 있다. 가운데 부분에서 약간 호흡이 길지만 시조 가락을 그대로 타고 있다. 셰익스피어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몬테규가의 이름을 버리라며 줄리엣이 로미오에게 한 대사의 변용을 중간에 삽입해 울림을 더하고 있는 작품이다. 가시도 꾹꾹 삼킬 수 있는 사랑에 대해 깊이 고뇌하게 한다. ‘먼지의 반란’에서도 볕드는 아침마다 먼지가 궐기한다, 라고 운을 뗀 뒤 밤새 쥐죽은 듯 방구석에 숨죽이고 있다가 일제히 반란을 일으키는 것 잠자던 영혼이 부활하는 순간인가, 하고 묻는다. 결구가 다소 길어졌지만 3장의 구조를 갖추고 있다. 먼지의 반란을 두고 잠자던 영혼의 부활로 바라본 시각이 새롭다. ‘섬’이라는 시에서 섬은 그리움 사람들은 바다에 배를 띄우고 섬과 섬 사이 다리를 놓았다, 라고 진술하다가 그러자 섬이 사라졌다 세상의 모든 그리움이 사라졌다, 라고 노래한다. 인공이 가미되는 순간 모든 그리움이 사라지고만 정황을 어떻게 봐야 할까?

시인의 일상이 되고 있는 존재의 근원과 같은 곳이 시의 산실 팔공산 다락헌 부근의 오실지라는 작은 못이다. 문득 가실지라는 말이 떠오른다. 오실지는 한 여인의 이름 같기도 하다. ‘오실지’라는 두 줄의 시는 초장과 중장 중 한 장을 생략한 양장시조 형태를 보인다. 그대라는 바다에 가닿지 못한 슬픈 꿈 나 홀로 하늘만 가득 퍼 담는 독항아리, 로 오실지를 이윽히 바라보고 있다.

명상의 현장에서 깊은 사색 끝에 얻은 주옥편이 이번 시집 ‘신의 잠꼬대’다. 영혼을 위무하는 곡진한 치유의 시편이기도 하다.

이정환(시조 시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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