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일반

지금 사자성어 놀음 할 때인가  



박운석
박운석

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

네 글자는 힘이 있다. 사자성어(四字成語) 이야기다. 교훈을 줄 뿐 아니라 유래를 담고 있어 풍자와 비유도 풍부하다. 많은 사람들이 사자성어에 공감하는 것은 이들을 끌어들이는 함축된 깊은 뜻이 있어서다. 옛 이야기에서 나온 이런 종류의 사자성어는 고사성어(故事成語)의 형태로 주로 중국 고전에서 나온 내용이 많다.

촌철살인의 압축이 있어서일까. 정치인들이 특히 사자성어를 많이 사용하는 편이다. 정치 환경은 수시로 변하기 마련. 여기에 자신이 처한 특별한 상황을 적절하게 녹여내어 설명하는 데에는 사자성어만한 게 없어서일 것이다.

막말수준이거나 억지스러운 정치인들의 사자성어를 빼면 지난해 6월 21대 전반기 입법부 수장에 오른 박병석 신임 국회의장의 사자성어 인용을 눈여겨볼 만하다. 박 의장은 ‘군주민수(君舟民水)’를 언급했다. ‘임금은 배, 백성은 물’이라는 말로 그는 “국민은 정치인이라는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뒤집을 수도 있다는 뜻”이라며, “21대 국회는 국민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의 바람대로 국회가 국민 신뢰를 받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지난해 7월 대구시 경제부시장에 취임한 홍의락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줄탁동시(啐啄同時)’를 강조했다. 줄탁동시는 병아리가 알에서 깨어날 때 병아리와 어미 닭이 안팎에서 함께 쪼아야 한다는 뜻이다. 여당 의원이었던 그가 야당 시장과 어떻게 호흡을 맞추며 협치를 해야 할 지를 고민한 흔적이었다.

사자성어는 주로 연말연초에 쏟아져 나와 뉴스를 장식한다. 이때쯤이면 정치권 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 대기업에서도 통과의례처럼 사자성어를 발표한다. 그 중에서도 매년 연말 발표하는 교수신문 선정 사자성어는 권위가 있어 눈여겨 볼만하다. 교수신문은 ‘2020년 한국 사회를 나타내는 사자성어’로 ‘아시타비(我是他非)’를 꼽았다. ‘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는 뜻으로 사자성어 대부분이 중국 고전이나 고사에 기반을 둔 것인데 비해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을 한자로 옮긴 신조어다. 아시타비와 함께 ‘얼굴이 두꺼워 부끄러움이 없다’는 뜻의 ‘후안무치(厚颜無耻)’도 함께 언급됐다. 2020년 한국 사회를 설명하는 두 사자성어는 서로 연관돼 있다. 곱씹어볼 만한 단어다.

연말연초가 한참 지났는데 사자성어가 다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지난 3일 사임을 앞두고 대구고검·지검을 방문한 자리에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라는 말 외에 ‘부패완판(부패를 완전히 판치게 하는 것)’이라는 사자성어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그는 “지금 진행 중인 검수완박은 부패완판”이라며 여권의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설치 추진을 비난하는 작심발언을 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광명시흥 투기 의혹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면서 사자성어를 언급했다. 홍 부총리는 7일 ‘부동산 관련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통해 “‘백척간두 진일보(百尺竿頭 進一步)’의 마음가짐으로 부동산정책 3대 실천사항을 올곧게 이행해 나가겠다”고 했다. 백척간두는 백 자나 되는 높은 장대 위에 올라섰다는 뜻으로 위태로움이 극도에 달함을 말한다. 이미 할 수 있는 일을 다 한 백척간두에서 한 걸음 나아간다는 말로 그만큼 노력하겠다는 말일 게다.

홍 부총리는 연설문에도 사자성어를 많이 넣기로 유명하다. 지난 2월에는 여당이 제시한 4차 재난지원금 지급 범위에 반대 의사를 표명하면서 쓴 ‘지지지지(知止止止)’란 사자성어가 화제가 됐다. ‘그침을 알아 그칠 곳에서 그친다’는 뜻으로 자신의 거취를 깊게 고민한다는 의미로 해석되기도 했다.

어쨌든 아시타비, 검수완박처럼 사자성어에도 신조어가 등장하는 세상이다. 그렇지만 중요한 건 사자성어의 뜻이 아닐 것이다. 백척간두에 서있는 게 부동산뿐이겠는가. 코로나에 지칠 대로 지친 국민들은 ‘누구는 옳고, 누구는 그른지’에 신경 쓸 겨를마저도 없을 터. 그래도, 그들이 아무리 사자성어 놀음을 하며 너와 나를 편 가르는 부추김을 하더라도 거기에 부화뇌동 하는 것만은 경계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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