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장하빈

발행일 2021-03-22 13:45:17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섬은 그리움// 사람들은 바다에 배를 띄우고/ 섬과 섬 사이 다리를 놓았다// 그러자/ 섬이 사라졌다/ 세상의 모든 그리움이 사라졌다

「신의 잠꼬대」 (시와반시, 2021)

우리는 손안의 스마트폰으로 세상과 소통하며 바쁜 세상을 살아간다. 두세 줄의 댓글로 서로의 뜻을 교환하고 이모티콘으로 서로의 감정을 표현한다. 잠언시는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딱 맞는 시다. 잠언은 바늘로 찌르듯이 예리한 말을 뜻한다. 보통 가르치고 훈계하는 짧은 경구다. 잠언시는 명상과 성찰을 통해 경계와 교훈을 주는, 말 그대로 잠언 형식의 시다. 짧지만 촌철살인의 날카로움이 있고 잠언이지만 절제미가 압권이다. 시 ‘섬’은 대표적인 잠언시라 할만하다.

섬은 중국어로 ‘다오’, 일본어로 ‘시마’, 영어로 ‘아일랜드’다. 이들 가운데 바다에 홀로 떠있는 섬의 모습과 이미지를 가장 잘 나타내는 언어는 아무래도 우리말 ‘섬’이 최고인 것 같다. 우리가 쓰는 말이라 편드는 것이 아니다. 섬이란 말 속에 섬의 모든 것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고 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 아무리 살펴봐도 섬 이상의 표현을 찾기 힘들다. 섬은 소리와 모양까지 섬을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섬 그 자체가 잠언시라면 과장일까.

파도가 쉼 없이 밀려와서 옆구리를 때린다. 바다 한가운데 지워질 듯 떠있는 섬은 그런 일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호젓한 모습으로 유유자적한다. 거센 바람이 심술 사납게 불어와 한순간에 날려버릴 듯이 위협하지만, 섬은 세파를 이겨내며 살아가는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꿋꿋이 서있다. 끝없이 출렁대는 물결 따라, 사정없이 불어오는 바람 따라 이리저리 날려가거나 떠내려갈 듯도 하건만, 굳건히 제자리를 지키는 불굴의 의지와 용기가 갸륵하고 기특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다에 잠길 듯 떠있는 섬을 보노라면 부질없는 근심이 앞설 뿐만 아니라 보호해주고 싶은 본능마저 꿈틀거린다. 섬은 어린 아들딸처럼 살갑게 가슴에 안겨온다. 단지 감성적인 사람의 낭만적 유희로 돌리기엔 섬에 대한 느낌은 폭넓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섬이 외롭고 고독한 우리네 인생을 닮은 까닭일 수 있다. 사정이 그렇고 보면 문득 자신의 자화상을 보는 것처럼 섬은 야릇한 측은지심을 불러일으킨다.

섬은 외로움의 상징이다. 외로움은 다시 그리움을 낳는다. 섬은 그리움이다. 섬에서 태초의 모습을 찾아내고 고향의 풋풋한 냄새를 맡는다. 그런 까닭에서인지 섬을 보면 무언가가 그리워진다. 생명을 잉태한 아득한 시절을 떠올리며 그동안 잊고 살았던 근원을 생각해본다. 많은 사람이 섬을 찾아다니며 안정과 평온을 얻는 것은 그러한 사정과 닿아있다고 볼 수 있다. 뭉게구름 한 조각이 한가로이 떠가는 가운데 옥빛 바다가 섬을 살포시 품고 있는 풍경이 눈에 선하다. 문득 그리움이 밀려온다.

섬과 섬을 다리로 이어놓으면 섬은 섬이 아니다. 섬과 섬을 다리로 연결해놓으면 섬 본래의 의미와 느낌을 상실한다. 다리로 붙들어 맨 섬은 이미 섬이 아니다. 섬이 사라지면 그리움도 사라진다. 그리움이 없는 섬은 아름다움도 사라진다. 자연은 자연으로 둘 때 비로소 위대하다. 시인이 섬을 찾는 것은 섬의 원초적 매력과 이끌림에 취한 때문일 것이다. 자기만의 섬을 은밀히 간직하고 싶은 것은 섬의 본질에서 유래하는 자연스런 욕망이다.

오철환(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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