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바람이라/바람은 꿈의 통로//바람이 바람 불러/돌아가는 바람개비//돌아라.

바람개비야/뱅글뱅글 돌아라.//바람은 바람이라/바람은 하늘 바람//소년원 높은 담 밑/화단에 선 바람개비//너와 나/소망 담아서/쉬지 않고 돌아라.

​「매미가 고장 났다고?」 (2019, 푸른책들 앤솔러지)

이정선 시인은 충남 논산에서 태어났으며, 2004년 ‘한울문학’에 수필이 당선되고 2020년 ‘푸른 동시놀이터’에 동시조가 추천완료 돼 등단했다.

‘바람개비’에는 애잔한 아픔이 묻어난다. 바람은 바람이라 바람은 꿈의 통로라고 하다가 바람이 바람 불러 돌아가는 바람개비에 눈길을 준다. 그런 후 역동적 움직임을 요청한다. 돌아라 바람개비야 뱅글뱅글 돌아라, 라고. 연이어 바람은 바람이라 바람은 하늘 바람이라면서 별안간 소년원 높은 담 밑 화단에 선 바람개비라는 특별한 장소를 제시한다. 그러고 보니 ‘바람개비’가 선 곳은 아무나 쉬이 접근할 수 없는 공간인 소년원 높은 담 밑이다. 그래서 화자는 너와 나 소망 담아서 쉬지 않고 돌아라, 라고 읊조린다. 이처럼 ‘바람개비’는 희망을 노래하고 있는 이채로운 작품이다.

또 한 편을 보자. ‘축구공’이다. 학교 운동장에서 일어난 일을 주의 깊게 관찰한 끝에 쓴 시다. 전개 과정이 자연스럽다. 소나기 쏟아지자 비어버린 운동장에 홀로 남은 축구공이 등장한다. 골대 옆에 기대 선 축구공이다. 연방 발로 걷어차이기만 하기에 무척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축구공에게는 기쁨과 보람이 되기도 한다. 그런 축구공이 모처럼 저 혼자 등목을 한다. 빗줄기로 두둑두둑 안마까지도 하는 호사를 누린다. 갑자기 내리고 있는 소나기 덕분이다. 소나기가 그치면 꽁꽁 숨은 아이들이 와, 하고 뛰쳐나오길 기다리는 축구공이기에 저 혼자 달랑 남아도 전혀 외롭지가 않다. 그런 시각으로 축구공과 아이들의 관계를 정답게 노래하고 있다.

단시조 ‘걸어가는 나무’는 숲 속 오솔길 새소리 드맑은 날 ​말없이 걷는데 바람이 말 걸어요, 라고 하면서 한 그루 걸어가는 나무에게 바람이 말 거는 정경을 제시한다. 이렇듯 종장에서 반전이 일어나고 있다. 숲속이기에 그 속을 걸어가고 있는 나도 한 그루 걸어가는 나무라는 인식을 하고 있는 점이다. 그렇기에 바람이 말을 걸었고, 시의 화자는 무언가 대답을 했을 것이다. 이렇듯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정서적인 안정을 찾게 되고, 헤아릴 길 없는 행복을 맛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시편은 소박하지만 소중하다.

동시조는 무척이나 까탈스러운 문학의 한 갈래다. 동심을 잘 녹여야하는 동시에 시조형식을 잘 준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동시의 덕목 중에 앞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단순미 속의 깊이다. 단순하되 깊이를 함유해야 한다. 그 다음으로 동심의 눈높이다. 요즘 아이들의 생활과 생각과 고민거리가 담겨야 한다. 어른의 회고나 추억거리가 동시의 소재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작품들은 지금의 아이들에게 크게 환영받지 못한다. 공감을 얻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정선 시인의 동시조는 오늘의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잘 맞다. 그들의 삶과 관련성이 깊어서 공감을 자아낸다.

사소한 일상에서 포착할 수 있는 의미나 이미지를 놓치지 않고 잡아채어 한 편의 시로 직조할 때 새로운 동시가 탄생한다. 자주 꽃핀 건 자주감자 파보나 마나 자주감자 하얀 꽃핀 건 하얀 감자 파보나 마나 하얀 감자, 라는 권태응의 ‘감자꽃’이 그것을 잘 증명한다.

이정환(시조 시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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